마태복음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6장24절-34절)

남수연 2026. 2. 26. 00:33

https://youtu.be/wDdY0AW9J4A

 

요즘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천국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처럼 천국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은 지난 주 천국은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스스로 원수가 된 우리를 사랑하셨잖아요?

그렇기에 천국 자녀들은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과 염려하지 않는 것과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요?

사람이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사람은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이 아무리 완전해도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처럼 내일이 불확실한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엔 내 개인적인 일만 염려만 했죠.

지금은 세상을 너무 잘 알아서 그것도 다 염려입니다.

기후문제, 식량문제도 걱정거리잖아요?

요즘 AI와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죠.

실제로 여러 직업들에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선 ai를 만든 개발자들이 대거 해고당한다니 아이러니죠.

전에 ai 상담사가 도입될 때 한 시중은행에서 이백사십 명 콜센터 직원들이 한꺼번에 해고된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사람이 끝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지 순위표도 나오더군요.

굴을 까는 작업은 사람 손이 아니면 안될 것 같죠?

그런데 그것도 로봇이 수압 기계를 사용해 척척 해 내는 공장이 있습니다.

사람 140명이 하는 작업을 로봇 혼자서 해냅니다.

작업량이 하루 10톤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젠 인공지능과 일자리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게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더 두려운 것은 인공지능의 능력이 아닙니다.

누가 이 기술을 장악하고 국제 사회를 움직이냐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몇 년 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두렵죠.

예수님 당시엔 지금처럼 머리가 복잡하게 염려하진 않았을지 모릅니다.

서민들은 하루 먹고 사는 염려였을 것입니다.

주님은 먼 미래의 성도들이 더 많은 염려 속에 살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머리에서 풀이 자라는 잔디 인형이 있죠.

물만 주면 머리 위에 잔디가 쑥 자랍니다.

현대인은 하루를 지내는 동안도 머리 속에서 염려가 수북히 자라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통해 염려를 좀 내려놓고 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1. 예수님 말씀에서 염려하지 말아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염려하지 말라고 해서 염려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예수님은 이런 이유로 염려를 금하셨습니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우리가 염려하는 생활 문제를 더 본질적인 목숨과 비교하시죠.

여기서 목숨이라는 말은 코 끝에 숨이 아니라 영원히 멸절되지 않는 영혼을 가리킵니다.

목숨과 몸은 나의 본체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도 몸과 영혼으로 삽니다.

그렇다면 목숨과 음식 중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당연히 목숨이죠.

당연한 걸 왜 예수님이 비교하십니까?

그 당연한 게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떨어진 빵을 걱정하지만 내 영혼이 굶는 건 생각하지 않잖아요?

집값이 오르고 임대료가 오르니 어떡하나 걱정이지만 천국의 영원한 집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죠.

이런 염려가 나를 위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이땅에서 잠시 우리를 보위하는 것들입니다.

그 염려가 지나쳐 본질적인 것보다 물질을 더 중히 여기는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죠.

지난 한 주간 일하는 시간 빼고 나머지 시간을 어디에 썼나를 보면 수긍이 될 것입니다.

요즘은 몰라도 아무 상관 없는 정보가 사람들의 시간과 정신을 빨아들입니다.

마치 그 정보를 놓치면 큰 손해인 것 같이 유혹해 정신없이 클릭하게 하죠.

미디어를 너무 소비하는 것도 세속화되는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람은 이것저것을 다 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안됩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점점 세속과 물질만능주의에 치우치게 되는 것이죠.

물질이 풍요한 게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창고에 가득 쌓았던 부자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그 예비한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또 성령께서 이렇게 시편39편에 노래하게 하셨습니다.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물질과 생활 문제로 걱정하지 않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진짜고 영원한지 이렇게 말씀을 통해 계속 상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삶의 방향과 목적을 영원한 것에 단단히 매야 합니다.

물질과 상황과 환경은 수시로 변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물질에 목적을 두면 항상 걱정하고 염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과 내 구원과 천국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선이 거기에 고정되면 환경이 어떻든 덜 요동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큰 어려움도 의연하게 넘기고 이겨나가는 것이 그래서입니다.

염려에 빠지지 않으려면 주님 말씀대로 영원한 것을 항상 바라보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예수님은 세 가지 예를 들어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를 다루십니다.

공중 나는 새, 마음대로 늘릴 수 없는 키, 들에 핀 백합입니다.

이것은 염려하지 말라는 비슷한 권고를 반복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보통 염려하는 문제를 뚫어 보시고 그에 대한 해답을 유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도 성경 본문 그대로 간단히 말씀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무리들이 많이 모였으니 잘 이해하도록 부가 설명도 하셨을 것입니다.

1)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사람의 기본적인 염려는 어떻게 먹고 살 것이냐에서 옵니다.

어려운 경제상황, 은퇴자들의 가난한 노후 같은 얘기를 들으면 과연 내 밥그릇은 안전한가 염려가 되죠.

주님은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고 하십니다.

그냥 낭만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많은 새들이 어떻게 먹고 삽니까?

하나님이 먹고 살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날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기만 하면 벌레든, 곡식이든, 물려주신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지금도 이렇게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비둘기가 그렇게 많아도 굶어 죽은 사체는 못 보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자녀들을 돌보지 않으시겠냐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면 돈을 벌고 먹고 살게 시스템을 갖춰 놓으셨습니다.

먹고 살 것을 지나치게 염려한다면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동안도 내 힘으로 살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그렇게 대단치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나마 내 힘으로 여기까지 오진 않았잖아요?

나는 힘껏 살았을 뿐이지 삶의 방향을 하나님이 잡아주고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노력한 그대로 지금의 내가 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마치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인생을 끌고 가려는 둣이 걱정하냐는 것이죠.

염려의 근본인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오직 하나님을 실제하시는 진정한 보호자로 인식할 때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2)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사람들이 자기 능력치를 초과한 것까지 괜히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염려합니까?

내가 원치 않는 상황을 만나고,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키는 태생대로 자라는 데, 걱정한다고 바꾸지 못하죠.

그러니 염려하나 마나 소용없다는 걸 가르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안되는 유전적인 문제지만, 하나님 안에 있다는 걸 말씀하는 것입니다.

살면서 만나는 어떤 문제들은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아내가 그만 뇌종양에 걸려 사십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음엔 교회 사역에 바빠 아내의 뇌종양 증상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증세가 악화 되고서야 병원에 가 뇌종양 진단을 받게 됩니다.

상태가 위중해서 바로 수술을 받았지만 예후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후 집과 병원을 오가며 오랜 투병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아내가 식물인간처럼 눕게 됐지만 돌봐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결국 교회를 사임하고 아내 간병에 매달립니다.

그렇게 투병하던 아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 둘을 키워야 하는 데 경력 단절로 사역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택배 일을 시작합니다.

목사가 사역을 못하고 물건 배달을 하니 마음이 비참했죠.

주일이면 여러 교회를 전전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울분이 터져 중간에 뛰쳐 나온 적도 많았습니다.

하나님 목사 일을 못할 바엔 왜 저를 신학공부 시키셨습니까?’

그렇게 하나님께 고래고래 소리치며 막말로 원망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겪는 동안 그래도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아내의 일을 겪지 않았다면 자기는 꽤 괜찮은 목사로 알았을 거라는 겁니다.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살림을 하고, 아이들 밥을 챙길 때 자기 속에서 솟구치는 울분과 악한 마음과 죄가 다 드러나더라는 것입니다.

잘 나가는 동기 목사들과 비교하며 내가 뭐가 부족해 이렇게 두시냐.

열등감과 교만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치졸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내가 병중에 세상을 떠나고 그런 고난이 없었다면 자기가 그런 죄인인 줄도 모르고 목회하다 인생을 마쳤을 거라고 하더군요.

어떤 문제들은 염려한다고 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키가 얼마큼 클지를 하나님이 아시듯이 피하지 못한 환난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도 우리를 돌보시고 유익하게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이든, 환경이든 그걸 감당하며 점점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드러납니다.

미움, 실망, 분노, 교만, 그런 나를 보며 내가 진짜 악한 죄인이라는 걸 핑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죄의 뿌리는 깊이 박혀서 양심이나 도덕적인 책망 정도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죄는 고난의 풀무를 지나지 않으면 절대로 정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최악의 고난이라면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우리에게 최고의 복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죄를 깨달아야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게 되거든요.

물론 모든 문제가 다 그대로 감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간절한 기도 중에 기적적인 응답도 우리가 경험하잖아요?

전에 새롭게 하소서에 나온 한 목사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가 찾아와 사람도 못 알아보고 언어도 다 잊었다고 합니다.

평소 열심히 전도하시던 분인 데 그래도 전도할 때 하시던 성경구절들을 물어보면 그대로 외우시더랍니다.

그런데 손주들이 할머니 완쾌를 위해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적이 찾아옵니다.

어머니 알츠하이머가 완전히 나은 것입니다.

영상으로 시청자들에게 안부 인사를 하는 데 완전 정상이더군요.

팔십대 나이에 비해 훨씬 건강하고 총명해 보였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라도 우선 기도 하십시오.

그리고 그 또한 하나님이 다루심을 믿고 담대하시길 축복드립니다.

 

3)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들꽃과 금실로 짠 왕복과 어떻게 비교가 되겠습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더 잘 살고 화려하게 살고 싶은 데서 오는 염려를 다루시는 말씀입니다.

부자들이 호화롭게 사는 걸 보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느껴지죠.

요즘 같은 주식 불장엔 왜 삼전 바닥일 때 조금이라도 사 두지 않았을까 괜히 능력도 없으면서 속상합니다.

부동산 불패일 때도 그랬는 데 이번에도 또 낙오잖아요?

사실은 그런 건 고사하고 마트 가서 가격표부터 살피는 게 창피하죠.

그러나 그렇게 사는 우리 삶이 하나님 안에 있다면 불의한 풍요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유명인들의 어처구니 없는 성문제가 터질 때 우리는 의아하죠.

요즘 미국 억만장자 성범죄자 엡스타인 사건이 일파만파라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 엮여 성스캔들이 터진 재벌과 정치인들 보면 그렇죠.

아니, 뭐가 부족해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털어보니 그 화려함 뒤에 썩은 것들이 줄줄이 나오잖아요?

우리 삶이 가난하고 소박해도 하나님 뜻 안에서 살아가니 들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캐나다에서 유학했던 분이 돈이 없어 고생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런 일화를 이야기 합니다.

어느 날 아기 기저귀가 다 떨어졌는 데 돈이 없는 거예요.

인근 마트에서는 세 묶음에 삼십 불 하는 기저귀만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중에 십 불 밖에 없었습니다.

기저귀 살 돈이 들어오길 간절히 기도했지만 마지막 기저귀가 떨어질 때까지 돈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다녀오다 마트 앞을 지나는 데 왠지 가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얼른 들어가 보라고 했더니 아내는 십 불로는 안 된다고 망설였습니다.

남편의 재촉에 아내는 마트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기저귀 세 묶음을 들고 활짝 웃으며 뛰어 왔습니다.

그 기저귀를 십 불에 세일하고 있었다는 거에요.

그 이야기를 하던 분의 얼굴이 당시로 돌아간 듯 환해지더군요.

유학생활 중에서 이 분들에겐 그때가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던 것이죠.

박사학위를 받던 순간이 아닌 것입니다.

누가 은혜로 사는 들꽃 같은 인생이 초라하다고 하겠습니까?

하루 피었다 지는 꽃처럼 하루를 겨우 살아간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를 그 누구보다도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아시기에 그 공급을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염려를 더 하고 더 노력해서 하나님 뜻보다 더 좋은 일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갈망하는 것을 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죠.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본래 의도보다 더 훌륭하고 가치 있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그 가운데서 최선을 준비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염려를 줄이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우리는 염려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염려하며 우리 인생을 꾸려 왔잖아요?

주님은 우리가 염려 대신 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의 삶의 목적은 단지 염려를 이기는 게 아닙니다.

걱정에 끌려다니며 사는 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세우고 전파하는 데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곧 염려를 물리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대한 염려는 너무나 집요해서 배운 대로 알고도 못 이깁니다.

염려를 이기려면 하나님나라의 믿음이 더 커지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믿음에 굳게 서서 말씀대로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의가 무엇인지 그동안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잖아요?

팔복의 심령으로 살아가는 것, 세상에는 소금과 빛이 되는 것,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복을 빌어주는 것, 하나님의 자비하심처럼 자비한 것, 하나님의 온전하심처럼 온전한 것.

이것을 우리가 먼저, 그리고 늘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하나님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걱정에 빠져 들 때 하나님께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것이죠.

근심으로 우울해질 때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결핍을 바라보며 속상하기 보다 현재 남은 것을 헤아려 감사하는 것입니다.

더 주님을 위해 봉사할 게 없는지, 더 이웃을 섬길 수 있는 게 없는지, 그걸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더 우선적으로 믿음의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 염려도 잊게 됩니다.

염려하는 문제를 이길 힘도 더 생깁니다.

우리 영원한 미래는 이미 완벽하고 복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대로 주님의 나라를 앞세우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내일도 염려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장차 우리가 가게 될 곳이고, 이 땅에서는 성도들의 마음에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 전체를 천국으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원치도 않잖아요?

그렇기에 죄악으로 오염된 이 땅에서 죄인의 몸으로 사는 동안은 고통과 괴로움을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매일 감당할 문제들을 우리 앞에 조금씩 배열해 놓으십니다.

그걸 미리 다 땡겨서 무겁게 지지 말라시는 것입니다.

내일 걸 미리 염려하며 한 짐을 졌다고 내일 그 문제가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나 내일 일은 내일 가서 염려하라시는 게 아닙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라는 시간과 상황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일의 짐을 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신다는 것이죠.

이것은 물론 미래에 대해 아무 것도 대비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매일을 성령님의 인도 안에서 살다보면 그 또한 지혜를 주시고 준비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염려할 일들은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계속 튀어나옵니다.

그것을 다급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는 게 쓸데없는 것이죠.

노후를 어떻게 살아갈지, 자녀들이 취업을 잘 하게 될지, 내 건강문제는 어떻게 될지 염려가 많으시죠.

예수님께서 이런 염려하지 말라고 세 가지 내용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 염려를 이기려면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영원히 살아남을 내 영혼과 믿음의 삶이 어떤 현실 문제보다 더 막중함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내가 염려의 것의 정체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공중의 새, 내 마음대로 안 되는 키, 들꽃입니다.

공중의 새처럼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생계를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해진 키를 염려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되길 바라서 생기는 염려입니다.

내 소원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인도하십니다.

들꽃의 염려는 세상에서 좀 뛰어나고 싶고 잘 보이고 싶은 데서 오는 염려입니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도 들꽃 같은 우리 삶도 하나님은 귀히 여기십니다.

셋째, 세상 염려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의를 따라 믿음에 굳게 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염려는 기도로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무언가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나와 우리 자녀들과 우리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우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