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모래 위의 집, 반석 위의 집 (마태복음7장21절-29절)

남수연 2026. 3. 12. 21:53

 

https://youtu.be/hUM8dlLRCD0

 

 

오늘 말씀은 산상수훈의 결론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천국을 보여주시고 천국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누군가는 천국 문 앞에서 좌절을 당한다는 것이죠.

천국 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생각해 보라시는 것입니다.

제가 구독하는 올리버쌤 채널이 있습니다.

지난 주 아내와 아이 둘을 데리고 미네소타주로 새집을 계약하러 가는 에피소드가 추가로 올라왔습니다.

올리버쌤은 미국인이고 한국인 아내는 아직 시민권은 없고 영주권만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미네소타 공항에 이민단속국 요원들이 쫙 깔렸다는 소식을 본 거예요.

올리버쌤이 혹시라도 아내가 검문 대상이 될까 봐 아내의 영주권을 넣은 안주머니를 몇 번이나 확인하는 걸 보았습니다.

영주권만으로는 안심할 수가 없는 것이죠.

불안으로 부부가 완전 사색이 되었더군요.

미국 시민인 게 참 대단한가 보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천국 시민권은 안전할까요?

천국은 속지 않습니다.

속아서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본문 말씀은 목사들이 설교하기에 곤혹스러운 면이 많습니다.

말씀에 비춰볼 때 사역자로서 떳떳할 수 없기 때문이죠.

또 믿음을 가져 보겠다고 나온 성도들 중에 혹시라도 낙담하는 성도들이라도 있을까 염려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의도로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으로 하신 말씀이니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하고 귀한 교훈을 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순서대로 세 파트로 나눠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누구를 믿고 따를 것이냐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예수님께서 왜 갑자기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하라고 하시는 걸까요?

사람들이 이미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진리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바로잡아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먼저 알고 믿은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유대교 신앙 속에서 살았습니다.

뿌리 깊은 유대교 신앙이 복음과 부딪칠 게 뻔한 것이죠.

예수님이 우려하신 대로 유대인들이 결국은 복음을 받지 않잖아요?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조심하라고 하신 거짓 선지자들은 누구일까요?

제사장, 바리새인 같은 전문 종교인입니다.

그들은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인 유대교를 이끌고 있었죠.

이들이 가르치던 유대교는 성경이 가르치신 하나님 신앙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실 길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유대교는 스스로 그 길을 벗어난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야의 대속을 통한 인류의 구원을 예언하고 가르치셨잖아요?

이스라엘이 만일 선지자들의 말을 잘 듣고 순종했다면 그들의 신앙은 지금의 유대교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야인 예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가 구약의 참 선지자를 따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인간의 죄성을 화나게 합니다.

신앙생활에 나태한 친구에게 이제 그만 쉬고 교회에 나오라고 하면 화냅니다.

그래서 진실을 말씀하는 예수님도 그렇게 싫어하고 배척했던 것이죠.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이 더 인기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기 때문이죠.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책망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시죠.

누가복음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는 죽이고 거짓 선지자들을 쭉 따라온 것이 유대교의 역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참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구원의 길을 계속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아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전해 주신 것이죠.

그 말씀이 바로 히브리서1장 말씀입니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민족이지만 선지자도 예수님도 믿지 않은 게 가슴아픈 불행입니다.

그들처럼 각 시대의 사람들도 자신들이 신봉하는 것 때문에 복음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복음을 막아서는 종교의 위력은 세상 종말 때까지 더 확대될 것입니다.

지금 전쟁이 터진 이란만 보아도 36년간이나 이슬람종교의 독재 아래서 살고 있었잖아요?

디모데후서에 보면 마지막 때엔 사람들이 더 종교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지금도 하다못해 무속이라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사람들의 영혼을 갈취하는 종교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이비 이단의 교주들은 정말 사람의 영혼에 빨대를 꽂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때에도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자들은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넘어오는지를 잘 압니다.

때로는 공포감으로, 때로는 감언이설로, 때로는 거짓 평화로, 화려한 언변과 신비한 기적으로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것이죠.

예수님은 우리에게 해로운 사역자들을 분별하는 기준을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인간의 열매는 좋은 게 별로 없죠.

이번에 사망한 이슬람 신정정치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경우 147조 이상의 재산을 축적했다는 보도가 나왔죠.

사람은 그런 열매 밖에는 맺지 못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종교인이라 해도 사람으로서의 최선만 나와도 다행이죠.

산상수훈을 깊이 묵상하면 절대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산상수훈의 모델을 찾으려면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사도는 우리가 본래 돌감람나무였지만 참감람나무에 접붙여 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참 감람열매를 맺는 것이죠.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셨잖아요?

선지자든, 사역자든, 제자든, 성도든, 모두 통일되게 예수님을 닮은 열매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열매인지 확인하라시는 것이죠.

온유하지 않으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처럼 자비하지 않으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이지만 비슷하게 닮아가야 합니다.

이번에 기윤실에서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 국민 70%가 목사를 믿지 못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신자들 중에서도 세 명 중 한 명은 담임 목사를 불신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목사들로서는 부끄럽고 곤혹스러운 일이죠.

이런 시대에 성도들 스스로가 판단 능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로부터 전해 온 믿음을 가르치고 있는지 잘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목사이든, 성도들이든, 자신을 돌아보고 산상수훈의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어가도록 노력하길 소망합니다.

 

2. 그 다음은 교회 안에 들어 온 신자들 중에도 위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것은 구원받을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춘 말씀이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기 전에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에서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 있다는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 사람들 자신도 그 결말에 당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자신들의 천국 시민권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들이 예수님을 부인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이름을 내건 여러 가지 사역과 신앙활동을 열심히 했다고도 하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을 모르신다 너희가 불법을 행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모르신다는 말은 처음부터 관계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뭐가 잘못 된 것일까요?

그 잘못은 그들이 하는 말 속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우신 게 아니라 스스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고 하죠.

성도 노릇을 했다는 것이죠.

그렇게 허락받지 않은 선지자의 지위를 이용해 사람들의 신망을 받고, 존경을 받고, 종교적인 이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서 종교적인 활동 외에는 아버지의 뜻을 행했다는 증거를 얻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종교활동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은 것을 불신앙의 증거라고 하십니다.

오늘 주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듣던 청중들은 분명히 주님 말씀에 놀랐다고 합니다.

말씀의 권위를 느꼈고 옳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듣고 잊어버리는 우리들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킨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에 내 인격이 순복하는 걸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통해 나를 다스리심을 인정하는 관계가 형성된 걸 의미합니다.

왕은 법률로 백성들을 다스리잖아요?

예수님의 말씀이 내게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이것은 물론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는 경우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할 만큼 잘 알았잖아요?

그런데 그의 인격으로 예수님께 순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용만 했다는 것이죠.

사람도 이용만 하려는 관계라면 영원히 함께 하고 싶겠습니까?

원수를 사랑하고, 비판하지 말고, 그런 말씀들을 우리가 완벽하게 지켜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정말 나의 주인이라면 명령을 의식해야 정상이죠.

지난 주 말씀을 듣고 내 입에서 누구를 비난하는 말이 나올 때 어땠습니까?

아마도 자제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비판이 튀어나왔다면 그때라도 이건 아닌 데,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는 데.

이 정도라도 생각이 되야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조금씩이라도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분명히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예배와 봉사와 모든 신앙 활동은 너무 귀한 헌신입니다.

그것과 함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있다면 그것은 확실한 천국 시민권을 가졌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3. 우리가 말씀대로 살았느냐 아니냐의 결과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비유로 보여주십니다.

쫒겨 나느냐, 무너지느냐, 결국 구원에 실패했다는 것이죠.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모래 위의 집, 생각만 해도 위태롭죠.

반석 위의 집, 벌써 마음이 든든하죠.

우리가 이땅에서 세우는 집이 이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별은 다른 게 아닙니다.

말씀대로 행하느냐 아니냐라는 것이죠.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삶의 목적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성도들은 행위만이 아니라 당연히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것이 전제되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지만 삶의 목적도 행위도 말씀과는 먼 사람입니다.

이런 신자들은 먼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서 구멍이 있을 게 분명합니다.

두 사람 모두 하루하루의 삶을 모아 일생의 집을 짓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일터에서 일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일지 모릅니다.

그 차이는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몰아칠 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는 것은 성도가 살아가는 기본 방식입니다.

전에 믿음과 행함은 굿파트너라고 말씀드렸죠.

믿음과 행함이 함께 일하면 어떤 환난도 견디는 가장 든든한 인생의 집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또 두 건축자는 세상에 태어나서 각자의 인생의 집을 짓는 모든 사람이라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복음을 믿고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말씀대로 순종하는 인생을 쌓아가는 사람입니다.

비와 창수와 바람이라는 삼중 환난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며 따른 사람은 심판의 날 주님의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고생했구나, 집 참 잘 지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판과 환난에서 내 집을 지탱해 주시는 반석이 없습니다.

그냥 맨 땅에 자기 인생을 짓는 것이죠.

마지막 심판에서도 그렇지만, 이 땅에서도 큰 고난이 닥치면 그렇게 세운 인생의 집은 큰 위기를 만납니다.

천장이 뜯겨 나가고 벽이 흔들거리고 홍수가 쓸고 가면 무너집니다.

세상의 것으로만 인생의 집을 세웠는 데, 세상이 배신하면 무엇을 의지해서 그 집이 견디겠습니까?

패션디자이너인 고앙드레김에게 입양한 외동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옛날에 앙드레김 패션쇼에 아주 귀엽게 생긴 아들이 함께 나온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앙드레김이 이 외동아들을 무척 사랑하고 소중히 키웠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죠.

앙드레김이 대장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중0씨가 패션 사업을 물려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은 준비가 안된 상태였습니다.

힘들게 사업을 끌고 가다 큰 위기를 만납니다.

사업이란 게 언제든 위기가 올 수 있잖아요?

자금 압박과 사업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려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 날 밤 사옥의 옥상에 올라갔는 데 극단적인 감정이 몰려왔습니다.

그럴 때 위험하잖아요?

그 아슬아슬했던 순간에 마음 속에서 어떤 음성이 세 번 들려왔습니다.

내게로 오너라 내게로 오너라 내게로 오너라

그것을 듣는 순간 너무나 분명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시네. 교회로 가야겠다.

그 다음날 부터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가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간증을 들으며 내게는 왜 그런 음성을 들려주지 않으시지,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지난 한 주도 우리 영에 무수히 많은 무언의 음성을 들려주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랬기에 어느 순간, 내가 벌떡 일어난 것입니다.

어느 순간 불현듯 지혜가 떠올랐고 어느 순간 뉘우치는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결단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김중0대표는 그렇게 죽음까지 내몰린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결국 인생의 위기에서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데 이분이 얼마나 말씀대로 살려는지가 간증 속에 잘 나타나더군요.

그야말로 이제 반석 위에 인생과 사업체를 세우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실제 예수님 믿으니 마음이 평안해지고 위태했던 사업도 잘 풀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모래 위의 집이나 반석 위에 집이나 비와 창수와 바람을 만납니다.

세상의 환난과 종말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사람은 그 풍파에서 버티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제가 새로 구독하는 한 외과의사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이분은 모태신앙인 데 하나님에 대해 반신반의하면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책을 워낙 많이 읽는 분이라 배울 점이 많습니다.

또 믿음에 확신이 없는 분들이 어떤 의식을 갖고 사는지 감을 잃지 않으려고 가끔 챙겨봅니다.

이 분이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암 진단을 했던 한 목사님이 있는 데, 좀 상황이 안 좋았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암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적잖이 놀랐다는 것이죠.

외과 의사가 암 선고를 많이 했을 거 아니예요?

그런데 그 목사님은 정말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의연하고 평온하게 암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속으로 절망하면서 겉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진짜 위기 앞에서는 완벽하게 위장할 수 없다는 걸 이 분이 얼마나 많이 봐 왔겠습니까?

우리에게도 때로 비와 창수와 바람이 인생을 뒤흔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집중하고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온 성도라면 반드시 그 위기를 버티고 견고히 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칭찬받는 아름다운 믿음의 집을 세우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은 오늘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치시며 아주 중요한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 잊어버릴 거잖아요?

자꾸 말씀을 소처럼 되새기고 그걸 지키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지키라시는 것은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주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을 벗겨 주시고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를 평안하고 복되게 합니다.

신앙적으로 좀 타이트한 생활이 재미없고 힘들기만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의외로 사람들이 금욕과 같이 절제하는 생활을 할 때 만족과 행복을 주는 세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많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라톤 같은 고강도 운동을 하고 나면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아까 말씀드렸던 그 외과의사가 그랬습니다.

억지로 사순절 성경필사를 하고 나면 분명히 만족감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 세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 때 진리를 잘 배우고 올바른 믿음을 따라가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관계를 분명히 하고 말씀대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것만이 세상의 환난 중에도,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도 우리의 인생 집이 무너지지 않음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이 산상수훈 말씀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를 집약하신 것입니다.

자주 성경을 펼쳐서 잘 행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충성되게 말씀대로 실천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