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험악한 세월 (창세기 47장)

남수연 2026. 5. 29. 22:56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은 하나님 명령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땅으로 이주하죠.

야곱에 이르러 칠십 명 정도의 가족으로 불어납니다.

삼사 대면 그 정도의 가족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칠십 명의 가족들이 그 넓은 가나안땅을 차지한다는 건 아직 불가능이죠.

오히려 악명 높은 가나안 문화에 흡수되기가 더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형들의 시기로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이 총리가 되죠.

그리고 기근으로 위기에 빠진 야곱의 가족들이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4백 년 애굽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4백 년 뒤 이 70명의 인구는 이백만 명 정도로 불어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자손의 축복이 일차적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고 자손은 별과 같이 많아질거라는 언약은 훨씬 뒤 예수님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죠.

우리가 창세기 사람들을 묵상하며 대체 이 사람들로 뭐가 되려나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죄로 얽힌 인생 속에서도 기가 막히게 그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 상황이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아도 걱정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들로만이 아니라 구겨지고 구부러진 것들로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앞장에서 부터 요셉은 상당히 치밀하게 가족들의 애굽 이주를 준비합니다.

아무리 총리라 하지만 애굽에서의 지위가 탄탄한 것은 아닙니다.

권력자들 사이에서 요셉은 왕의 총애를 받아 한순간 높은 지위에 오른 이방인 포로입니다.

포로였던 다니엘이 바벨론 궁중에서 얼마나 많은 정치적 대적들에게 시달렸는지 알잖아요?

사자굴에까지 들어갔었죠.

요셉이 가족들을 데려온 것은 자칫 자기 세력을 키우려는 의심을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셉은 불필요한 오해에 철저히 대비해 이주를 준비합니다.

먼저 가족들이 정착할 곳을 고센땅, 라암세스로 정합니다.

고센땅은 애굽의 중심지인 비옥한 나일강 삼각주에서 좀 떨어진 곳입니다.

당시 왕궁도 거기에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도 이 삼각주 끝에 있습니다.

요셉은 가족들을 애굽의 중심부로 끌어 들이지 않고 변두리 고센 땅에 정착시킨 것이죠.

현재 카이로에서 고센 유적지까지는 80킬로 정도 거리입니다.

요셉의 근무처 왕궁에서부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인 것이죠.

또 신앙적으로 중심부와 떨어뜨려, 애굽 문화로부터 하나님신앙을 보존하며 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고센땅은 가나안땅 경계에서 가깝습니다.

나중에 가나안땅으로 돌아갈 것을 고려했다는 것이죠.

가족들을 고센땅에 정착시킨 것을 보면 요셉의 지혜를 엿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여러 상황에서 계속 무언가를 계획하고 결정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비둘기처럼 순결하되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올바른 계획과 선택을 잘하며 살기 위해서는 요셉과 같은 지혜를 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잠언246,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잠언205,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요셉이 어디서 이런 지혜와 지략을 얻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할 때 명철과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가 여러 분야의 뛰어난 발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산업연구원이 올 우리나라 수출액이 세계4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세계4위라니 말이 됩니까?

반도체 분야의 호황이 수출을 주도한 것이죠.

이차전지, 방위산업,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민족이 이렇게 뛰어나게 되었나요?

본래 뛰어난 민족은 아니었잖아요?

그랬다면 과거에도 그런 두각을 보였어야죠.

우리 민족이 똑똑해진 것은 분명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이 되면서부터였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방송인 송은0씨가 이성0씨 채널에 나와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송은0씨가 그렇게 지혜로운 사람이었나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송은0씨가 성경을 그렇게 열심히 읽는다고 하더군요.

하나님이 너무 궁금해서 읽고,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듣기 위해 매일 성경을 읽는다고 합니다.

자폐로 정상 생활이 어려웠던 아들을 둔 집사님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시킨 것은 성경필사였습니다.

아들은 지금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했더군요.

누가 봐도 자폐로 보이지 않을 만큼 말과 생각이 올바랐습니다.

말씀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든 총명해진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날로 명석해지는 우리 성도님들에게서 그걸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요셉과 같은 지혜를 얻게 되길 축복드립니다.

 

요셉이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해서 그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왕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잠언 169절에서도 말씀하죠.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인생에 계획이 있다면 그 걸음을 인도해주시길 꼭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사람과 하는 일은 변수와 변덕으로 언제든 무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야곱과 형들을 바로에게 소개할 것도 철저히 준비합니다.

형들에게 바로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도 가르쳐 줍니다.

바로 앞에서 말 한마디도 신중해야 했다는 것이죠.

요셉은 감옥에 있을 때, 하루 아침에 죄수가 된 두 장관을 수종 들었었잖아요?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을 감옥에서 만난 내용 아시잖아요?

요셉은 형들 중에서 다섯 명만 뽑아서 바로를 알현하게 합니다.

열한 명이 우르르 갔다면 필시 경계심과 위력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형들은 바로의 질문에 요셉이 가르쳐 준 대로 대답을 합니다.

우리 가족은 단지 기근을 피해 거류하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거류한다는 것은 정착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걸 말합니다.

또 소떼와 양떼를 몰고 왔다고 밝힙니다.

애굽에 신세 지지 않을 거라는 뜻이죠.

저는 성도들이 세상에 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리 동생 덕을 보려는 마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귀신같이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조직이나 누군가의 덕을 보려는 마음은 성도로서 부끄러운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덕을 보고 세상을 섬겨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야곱이 얼마나 당당한지를 보십시오.

야곱이 천하를 호령하는 바로 앞에서 절대 주눅 든 늙은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바로를 축복하잖아요?

7,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세상에서는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축복하죠.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복은 성도들을 통해서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나이가 몇이냐고 묻는 바로에게 이렇게 대답하죠.

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 야곱은 조상들과 자기의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여기저기 집 없이 방랑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서11장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야곱은 돌아갈 본향을 믿었기에 이땅을 나그네 길이라 생각했다는 것이죠.

땅거미가 어둑하게 내리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귀소본능이 나옵니다.

마치 고향을 떠나온 사람처럼 인간의 마음엔 그런 향수가 있잖아요?

세상 사람들은 떠나온 본향을 모르고 정체 모르는 향수만 갖고 사는 것이죠.

성도들은 본향이 있다는 걸 압니다.

인생의 날이 저물면 우리가 다 돌아갈 본향이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성0씨가 송은0씨에게 천국에 가서 예수님 보면 어떨 것 같냐고 질문을 하더군요.

송은0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난 그냥 아무 말도 못하고 울 것 같아

그 말속에 참 많은 게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진짜라는 기쁨의 눈물, 나를 구원하신 것에 대한 감사의 눈물, 그리고 이생에서 힘들게 살아온 모든 것을 벗어난 안도의 눈물, 그런 것이겠죠.

저는 죽음의 순간, 힘겨운 육신을 벗어나는 그 순간, 엄청난 환희 속에서 하나님께 돌아갈 것 같습니다.

훌훌 벗어던지고 큰 기쁨과 환희로 우리는 본향으로 가게 됨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2)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야곱의 생애를 계속 묵상해 왔으니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다 아실 것입니다.

치열했던 장자권 싸움,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간 사연.

외삼촌집에서 산 고된 20년 세월.

외삼촌의 계략으로 꿈꾸었던 결혼생활은 꼬이고 꼬여서 지옥 그 자체였죠.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 그리고 가장 아꼈던 요셉의 죽음을 경험하며 야곱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입니다.

제가 오은영박사의 프로그램을 하나 보고 인생이 참 험악하다는 걸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세 살, 한 살, 두 아들을 둔 젊은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벚꽃 길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니 인생의 행복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말, 아내가 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검사 결과 위암 말기에다 암이 복부에 전이되어 대장 80%가 괴사 된 상태였습니다.

아무 증상도 없었다고 합니다.

의사는 3개월 정도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휴직계를 내고 낮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밤에는 아내 곁을 지켰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얼마나 끔찍이도 사랑하고 아끼는지 투병하는 117일 동안 한번도 떨어지지 않고 아내 곁을 지켰습니다.

아내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괴사 된 대장을 잘라 냈지만 상태가 안 좋아 개복한 복부를 덮을 수가 없었습니다.

속이 다 드러난 배를 덮지 못하고 매일 드레싱만 하고 거즈로 막아 놓았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말기암의 통증은 마약성 진통제도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두 부부가 암과 치열하게 싸우고 버텨보았지만 결국 31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 험악한 인생 아닙니까?

우리 인생도 돌아보면 정말 험악하던 시절들이 있었죠.

건강의 문제로, 가정불화로, 자녀의 문제로, 가난으로, 삶의 좌절감으로.

그런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는 왜 이렇게 밝고 당당합니까?

야곱도 그 험악한 세월을 생각하면 아주 초라하고 힘없는 늙은이가 되었어야 하겠죠.

그러나 야곱은 최강의 권력자인 바로를 당당하게 축복합니다.

야곱이 굽신거리며 우리 요셉 총리 좀 잘 부탁한다, 실수 좀 해도 너그럽게 봐 달라그런 소리 안 했습니다.

세상 사람이나 성도들이나 비슷하게 힘든 세월을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연단 속에서 보낸 세월은 아무리 험악해도 성도들을 더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또 복의 사람으로 성숙시키는 것입니다.

그동안 묵상했던 창세기는 야곱도, 요셉도, 다른 형제들도, 그렇게 단단해진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며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2026년5월27일 주는나의산성교회 수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