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씨 뿌리는 비유 - 누가복음8장4절-15절

남수연 2011. 7. 11. 08:35

상대방이 알지 못하는 것을 설명할 때는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사물을 비유로 설명하면 쉽게 이해시킬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 중에 비유설교가 많은 것 잘 아시죠?

우리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하늘나라와 깨닫기 힘든 영적인 원리들을 설명해 주실 때 주님은 정말 탁월한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잃은 양의 비유, 돌아온 탕자 비유, 포도나무 비유 이런 것들이 모두 영적인 깊은 진리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신 설교들입니다.

그런데 비유는 쉽게 설명하는 용도로만 쓰여지진 않았습니다.

때로 비유는 그 의도를 살짝 가림으로 사람들이 가벼이 생각하는 것들을 깊이 볼 수 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비유들은 너무 의미가 깊어 해석이 정확히 안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처럼 속 뜻이 감추어져 어떤 사람들에게는 깨닫지 못하게 되는 비유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의도하심 따라 다양한 비유를 통해 청중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몰려 든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을 하셨다고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오늘 본문의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데 씨가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 흩어졌습니다.

그 당시 농사법이 요즘처럼 모종을 심는 게 아니라 씨를 직파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겠죠.

주님이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씨들은 길 가에 떨어졌고 어떤 것들은 돌 밭에 떨어졌고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에 떨어졌고 그 나머지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

길 가에 떨어진 것은 새가 날라 와 냉큼 먹어버렸고 돌 틈에 떨어진 것은 싹이 났다가 흙이 깊지 않아 곧 말라 죽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싹이 났지만 가시덤불이 더 빨리 자라서 기운을 막으니 결실하지 못했다.

그리고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백배나 결실하였다.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듣고 깨달아라

예수님의 오늘 설교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농부에게 씨가 얼마나 귀합니까? 농삿군은 죽어도 종자보따리를 베고 죽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복음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씨앗인 것입니다.

이 씨앗이 떨어져 열매를 맺어야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의도가 뭐겠습니까?

뿌린 씨가 열매를 잘 맺기를 바라는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핵심은 간단히 말해 말씀이 결실할 수 있는 좋은 땅이 되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들은 비유의 말씀을 듣고 풍성한 결실을 하려면 좋은 땅이 되라는 것이죠.

예수님의 이 설교에 모인 청중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제가 오늘 본문 말씀을 한 남학생에게 보여주고 이 내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도 다니지 않는 남학생이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어떤 가르침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방해되는 걸 제거해서 좋은 열매를 맺으라는 거 같은 데요.

바로 이거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보통의 사람들은 이 학생과 같이 내 마음의 밭을 잘 관리해야 주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겠구나.

그것도 100배나 결실한다니 참 수지맞는 일이네 가서 그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이렇게 깨닫고 돌아가면 오늘 설교는 끝입니다.

예수님께서 해석까지 다 해주셨으니 거기에 더 붙일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에겐 오히려 이 쉬운 비유 설교가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을 읽으며 약간 이상한 주님의 태도를 느끼셨죠?

마치 사람들이 설교의 뜻을 깨닫는 걸 원치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오늘 청중들 가운데 있는 배타적 무리들을 의식하신 말씀입니다.

무리 가운데 주님의 말씀에서 허점을 찾으려 모여든 서기관, 제사장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설교를 듣고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니, 무슨 설교가 이렇게 시시 해? 역사도 없고, 율법도 없고, 철학도 없고,

갈릴리 목수 출신이라더니 역시 배운 게 없구만.

오늘 설교의 그 쉬운 핵심인 좋은 마음 밭을 가져야 백배의 결실을 할 수 있다는 하늘나라의 비밀이 이미 그들에겐 가려져버린 것입니다.

이런 그들의 마음을 주님은 정확히 판단하시고 과연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라고  지적하십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마가복음4장 15절입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실상은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부로 감추시는 게 아니라 그들이 일부로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자기의 부족함을 고치려는 게 아니라 자기 원대로 살려고 하니 말씀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신 첫 번 째 길가 밭입니다.

오늘 농부가 뿌린 씨앗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길 위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생명의 씨를 품기에는 땅이 너무 딱딱하죠.

결국 그 씨는 사람들에게 밟히다 새가 와서 낼름 집어 먹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뜻을 예수님께서 12절에 이렇게 해석해 주십니다.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말씀을 전하는 곳에 마귀가 있다는 얘기죠.

그리고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뺏어가 버린다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복음 13장 2절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마귀는 사람에 마음에 생각을 넣기도 하고 말씀을 뺏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라고 다 자기 것이 아니니 분별해야 할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부분을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 마귀가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뺏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귀가 뺏아가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을 때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성령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아무리 지혜롭고 학식이 많고 종교와 철학에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성경말씀을 스스로 깨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태어난 본래의 마음 밭이 길가와 같기 때문입니다.

죄로 어두워 진리를 구별하지 못하고 많은 지식과 경험들이 엉겨 붙어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인의 마음은 구원받지 못하는 길 가 밭과 같습니다.

내 0이 넘치나이다라는 유명한 소설의 저자 정0희 권사님이 있습니다.

불신자인 그는 기독학교인 이화여대에 입학했습니다.

왠지 기독교에 거부감이 들고 싫었지만 의무적으로 성경 과목을 이수해야 했고 가난한 형편에 장학금을 타기 위해선 성경을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성경책을 폈는 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가 없었다고 합니다.

책이란 게 죽 읽다보면 줄거리가 잡히고 사상이 잡히고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사람을 설득할 목적도 없고 이해를 돕기 위해 자상한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정말 불친절한 책 처럼 보입니다.

문학과 철학적 사고에 자신 있던 그에게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일 뿐이었다고 합니다.

교수들이 나중에 작가가 되려면 베스트셀러인 성경을 꼭 읽어야만 한다는 소리에 오기가 생겼습니다.

성경 없이 사람들이 깜짝 놀랄 글을 써 보이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쓴 글이 파0상이란 소설입니다.

내용은 수녀가 전쟁의 참상을 보고 하나님은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파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소설이 그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떡 당선이 된 것입니다.

정권사님이 보아라, 성경이 무슨 필요냐란 오만한 생각을 갖지 않았겠습니까?

믿음 없고 교만해 깨닫지 못하니 성경을 읽는 족속 사탄이 말씀을 뺏어갔던 것입니다.

세상에선 최초 여류작가가 당선 되었다고 떠들썩했습니다.

각종 매스컴에서 여왕 모시듯 떠 받들고 문화사절로 각국 원수들을 접견하며 화려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의 마음은 점점 단단한 길 가 밭이 되고 구원은 멀어져만 갔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가지 밭의 비유는 인간에게 정해진 구원을 말씀하려는 것은 아닌 줄 압니다.

말씀을 듣는 현재의 우리 심령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주님이 원하시는 건 죄인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복음을 받아들여 결실하라는 것인 줄 믿습니다.

돌짝 밭 같고 가시덤불 같던 우리 마음도 변해서 이렇게 폭신한 흙으로 덮힌 좋은 마음 밭이 되어 지금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의 은사와 기도운동을 주도한 분 중 이0석 목사님이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얼산 기도원 원장으로 사역하다 돌아가신 유명한 부흥사이시죠.

전쟁에서 한 다리를 잃고 몇 번이나 죽으려다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명동 백곰이란 별명으로 상이용사들의 두목이 되어 깡패의 삶을 살게 됩니다.

어느날 한강 백사장에서 부흥집회를 하던 이성봉목사님의 집회를 둘러엎으러 갔다가 듣게 된 설교말씀에 감동을 받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삼각산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천정이 날아가 뻥 뚤리고 하늘에서 불덩이가 내려오는 성령 체험을 하고 방언과 신유의 은사를 받게 됩니다.

차0근 감독이 병원에서 포기한 무릎 부상을 이목사님께 안수 받고 나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워낙 깡패 출신이라 거룩한 목회는 포기하고 뚝배기 목회를 하다 보니 성격 대로 욕 반 설교 반 이었습니다.

그래도 7,80년 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한얼산 기도원에 올라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개 아니면 다 방언 받는다는 한얼산 기도원은 집회만 참여해도 90%이상이 방언의 은사와 성령체험을 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집회가 끝나면 수 천명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수해서 성령을 받게 하는 데 고무다리를 끌고 다니다 보니 연결 된 부분에서 피가 배어났다고 합니다.

그의 설교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으니 길가 같던 마음 밭도 하나님의 은혜로 얼마든지 변해서 이렇게 많은 열매를 거두는 것을 봅니다.

그 도도한 여류작가 정0희 권사가 결국 어떻게 은혜를 받았는지 아십니까?

바로 이0석 목사가 쓴 소 책자, 제목도 희안한 와장창 중창 주장창을 읽다가 갑자기 통곡이 나며 회개가 터졌습니다.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아 몇 시간을 통곡하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와장창 중창 주장창은 심령이 찢어지고 회개가 터져나오는 소리라고 이0석 목사님이 만든 말인데 이 말을 할 때마다 기도원에선 폭소가 터져나왔답니다.

깡패 출신의 목사가 쓴 이야기로 문학계의 지성이라 손꼽히던 여류작가를 회개하게 하시니 하나님의 유머라고 해야 할까요?

정0희 권사는 후에 교통사고를 당해 십이지장이 파열되어 죽음을 앞 둔 위기를 당합니다.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배 속에 가득한 피를 비닐주머니에 받아냈습니다.

며칠을 계속 흘러나오는 비닐주머니 속 물과 피를 바라보다 갑자기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는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주님이 나를 위해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는 게 깨달아지며 은혜가 몰려왔습니다.

이젠 살아나면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결단하고 주님께 기도하는 순간 눈 앞에 예수님이 서계시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내 0이 넘치나이다는 이런 그의 자전적 간증 소설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하나님 앞에 돌아왔는지 모릅니다.

길 가와 같아 깨닫지 못하던 그의 마음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하여 좋은 밭이 됐고 백배의 결실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잠언3장23절은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 마음이 아무리 좋은 밭이라 해도  잘 지켜야 할 줄 믿습니다.

틸리케라는 신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소한 하루에 15분가량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 자기를 갈아엎는 고통을 가지지 못하면, 그리고 하나님의 씨가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서 애쓰지 않으면 그러한 사람의 마음은 조만간에 길바닥이 되어 버린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결실할 수 있는 좋은 밭이 되기 위해 아무리 바빠도 매일 시간을 내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도님들의 심령이 늘 부드럽고 좋은 밭이 되어 영적 육적인 결실이 풍성하리라 믿습니다. 아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다른 종류의 밭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마음이 항상 옥토이겠습니까?

때로 길가이고 때로 돌짝 밭이고 때로 가시떨기 밭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연약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결실의 장애들을 살펴보고 그것을 거둬내면 언제든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고 열매 맺게 되리라 믿습니다.


씨앗이 결실하지 못한 두 번째 밭은 돌 밭입니다.

13절에 보면 주님께서 그 마음을 이렇게 해석해 주십니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주님은 지금 몰려 든 사람들의 마음이 돌 밭이라는 걸 아셨습니다.

단지 기적과 능력을 보며 뭔가 될 것 같은 흥분 속에서 여기 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열광하며 따라 온 사람들 중 대다수가 곧 주님을 버릴 것을 아셨습니다.

수 천명 씩 무리 지어 예수님을 추종하고 환호하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될 때 주님의 죽음을 방조하고 등을 돌렸습니다.

전도를 받고 뭔가 마음이 움직여 교회에 좀 나오다 어려움이 닥치면 시험에 들어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돌 밭 위에 떨어졌기에 뿌리 내리지 못한 믿음입니다.

이런 마음 밭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바위를 깨뜨리고 돌을 골라내야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 돌밭의 마음을 가리켜 “찢어지지 않는 마음, 회개하지 않는 가슴”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죄를 깊이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단 맛이 없으면 뱉어 버리는 것입니다.

시련의 쓴 맛을 견뎌내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 죄를 회개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매일 인생의 쓴 잔을 마시면서도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 것은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확신하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에선 돌 밭의 씨앗은 해가 돋은 후 물기가 부족해 타서 말라버렸다고 기록합니다.

뜨거운 태양에 타는 듯한 고난이 오기 전 마음을 찢는 회개로 바위를 깨고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시길 축원드립니다.

생수 되신 우리 주님을 향해 깊은 뿌리를 내리는 우리 모두에게  시절을 따라 풍성한 열매가 맺힐 것을 확신합니다. 아멘.


세 번 째 밭은 가시떨기가 무성한 밭입니다.

가시떨기가 무성한 밭에 떨어진 씨는 흙에 뿌리를 내리지만 더 신속하게 자라는 가시나무 기운에 막혀 제대로 성장하지를 못하게 되죠.

그러니 결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가득 차 있다면 말씀을 들어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염려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고 죄입니다.

염려는 말씀과 기도로 물리쳐야 합니다.

염려가 습관이 되면 신앙의 좋은 열매들을 보지 못합니다.

마음의 평안과 기쁨과 담대함 같은 믿음의 열매가 없으면 교회는 나오나 여전히 심령은 곤고하고 문제에 끌려 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또 돈을 지나치게 생각하는 마음도 믿음의 결실을 방해한다고 오늘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  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으신다는 약속을 믿고 살아야지 돈을 의지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향락을 지나치게 즐기는 사람들도 결국 말씀의 열매를 맺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디모데전서 5장 6절은 심지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염려와 돈과 향락을 성령님의 지혜로 잘 관리하셔서 믿음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네 번 째 밭은 씨앗이 결실 한 아주 좋은 땅입니다.

부드러운 흙과 습기가 적당해서 씨가 떨어졌을 때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먹고 성장해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5절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결실하기 위해서는 착하고 좋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에 있다고 하면서 불의한 일을 도모하고 선한 양심을 버린다면 좋은 열매를 바랄 수 없는 일이죠.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듣고 읽고 배우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들은 말씀대로 지키고 인내할 때 결실하는 인생이 된다고 하십니다.

열매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순식간에 결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씨, 좋은 땅, 좋은 돌봄이 있을 때 점차 단계를 지나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네 가지 밭 중 어느 밭이 되느냐는  밭이 할 일이 아니라 농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좋은 밭은 물론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호세아 10장 12절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우리 마음 밭을 기경하는 것은 우리 몫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래되어 딱딱해진 마음을 갈아 엎어 부드럽게 하고 돌을 골라내어 좋은 땅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 이라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는 생명이 있어 반드시 성장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고 복음의 씨를 받았다면 반드시 싹이 나고 이삭이 맺히고 충실한 곡식을 거두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서로를 볼 때 그 믿음이 성장하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밭을 옥토가 되게 하시고 매일 말씀의 씨앗을 뿌리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성도님들이 시험가운데 인내하고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봉사를 기뻐하는 마음은 우리가 좋은 밭이라는 증거인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은 우리 삶이 백 배의 열매를 맺을 것을 기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통 큰 재벌 하나님인 줄 다 아시죠?

영적인 풍성한 열매는 우리의 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영성이 깊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보면 반드시 이 땅에 소산도 풍성하게 열매 맺는 것을 봅니다.

영의 열매가 많고 믿음이 좋아질수록 고난이 많고 이 땅의 열매는 적어진다고 절대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성경의 원리는 우리의 영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인 줄 믿습니다.

혹시 깊고 경건한 영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육체의 고난과 결핍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서도 고통을 뛰어넘는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오히려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때로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영적 열매를 거두기 위해 물질의 열매를 기꺼이 내려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레녹스라는 명품 도자기회사가 있습니다.

1918년 이후 백악관의 공식도자기 회사입니다.

아주 섬세하고 맑은 문양에 나비가 그려진 그릇들로 여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미국 최고급 식기 회사인 레녹스 사장이었던 리처드 스텐스는 1998년 국제 구호 단체 월드비전의 회장이 됩니다.

월드비전 회장이 되겠다는 건, 6,000평짜리 대지에 방 10개짜리 집에서 가족과 단란하게 사는, '성공한' 인생을 내려놓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처음 월드비전 회장을 제의받았을 때 "왜 나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을 위해 최선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반문했습니다.

그러나 우연이라고 할 수 없게 같은 시기에 많은 사람들을 통해 월드비전 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정말 만나는 사람마다 입만 열면 자기에게 월드비전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레녹스는 영국도자기회사와 합병할 계획을 갖고 있었고 그에게는 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500억의 지분이 배당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연석으로 꾸며진 2백년 된 그의 농장 앞에 이삿짐차가 들어옵니다.

더 가치 있는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그는 육신의 열매를 과감하게 내려 놓았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해바라기를 그린 화가 반 고흐를 아실 것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 씨뿌리는 사람이란 그림이 있습니다.

태양이 작렬하며 농부의 몸을 채찍질하는 것 같은 한 낮에 한 사람이 페허 처럼 짓밟힌 거친 땅에 씨를 뿌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씨를 뿌리는 농부의 걸음은 우리 주님의 걸음 처럼 확고해 보입니다.

길 가 처럼 단단하고 수많은 자갈이 굴러다니는 게 우리 마음입니다.

왠 염려는 또 그렇게 많은지 하룻 새 무성하게 자라 저녁 되면 우리 마음을 컴컴하게 뒤덮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열매를 기다리며 오늘도 씨를 뿌리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열매 맺게 하시려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으신 줄 믿습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 밭을 갈아 엎는 다면, 돌을 집어 내고, 가시덤불을 들추어 내고 좋은 땅이 되게 한다면 아름답고 탐스런 열매가 백배나 열릴 것이다.

들을 귀 있는 너희들은 들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