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요한복음16장7절-15절)

남수연 2012. 5. 30. 17:38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번 째 위격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 성령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성령님에 대해 배우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성령님의 하시는 일은 굉장히 많고 성령님에 대해 이해하려면 성경을 통해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택한 자를 거듭나게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은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부모님을 통해 육신에 속한 생명으로 한 번 태어납니다.

그러나 영으로는 죽은 상태이기에 하나님과 신령한 세계를 알지 못하고 죄의 본성을 따라 살 뿐입니다.

두 번 째 태어나는 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 일어납니다.

성령이 우리 영을 살리셔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영이 되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많은 인종이 살고, 사는 모습도 제각각이지만 인간은 단 두 부류로 나뉘어 있는 셈이죠.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과 아직 자연인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 자연인 상태에 있는 사람은 영적인 일을 알지도 못하고 분간도 못합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님도 모를 뿐 아니라 인간의 기원도 목적도 종착지도 모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 사실에 대해 다 아시잖습니까?

할렐루야,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완전히 다른 두 인종이 현재 지구상에 섞여 살고 있는 것이죠.

때가 되면 완전히 다른 두 장소로 영원히 나뉘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구원받을 백성들을 거듭나게 하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태신자를 정하고 기도하고 있는 데 성령께서 그 분들 마음과 환경 속에서 지금 일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신다는 게 이해가 되십니까?

고린도전서 3장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무 엄청난 사실이라 우리 이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일입니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는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 데 1년이 걸리죠?

그 거리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어마 어마한 궤도를 돌아 1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시속 10만6천 킬로로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1초에 30킬로를 달리니 마포까지 가고 총알의 8배의 속도입니다.

이 무거운 땅덩어리가 가공할 속도로 달려가는 게 느껴지십니까?

게다가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돌죠.

자전 속도는 시속 1260킬로입니다.

KTX보다 4배 빨리 스스로 뺑뺑이를 돌며 태양주위를 겁나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어지러우시죠?

인간은 이렇게 빠른 속도와 굉음을 감지하지 못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우주를 창조하신 광대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이 작은 뇌로 어떻게 깨닫고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이고 은혜입니다.

성령께서 매일 우리를 주시하고 계시는 게 느껴진다면 죄성을 가진 우리에겐 기쁨이기 보단 아직은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되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 잘 아시기에 오직 탄식하며 기도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많은 은사들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에 기록 된 내용을 중심으로 성령님에 대해 배우길 원합니다.

 

먼저 본문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저녁을 방금 제자들과 함께 드셨습니다.

요한사도는 이 다락방에서 하신 주님의 말씀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끔찍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고통보다 제자들이 당할 정신적 충격을 더 염려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되었음을 말씀하자 제자들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예수님은 충격에 싸인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같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실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본문의 앞에서 성령이 너희 안에 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완성 된 구원의 길로 사람을 인도하는 일은 영이신 성령하나님이 맡으십니다.

인간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원히 인간의 몸으로 계십니다.

온 세계와 민족을 상대로 사역하시기엔 제약이 있으실 수 밖에 없죠.

그러므로 예수님은 맡은 일을 완수하시고 하나님께로 올라가시고 그 다음은 성령께서 오셔서 주도적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영을 받는다는 게 두려운 일이죠.

게다가 이스라엘은 신접한 사람을 죽이도록 율법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순절에 강림하실 성령님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셔야 했습니다.

성령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사람에 부어질 것이 구약성경에도 이미 예언이 되어있습니다.

요엘서에 보면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 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예언되어 있죠.

유대인의 정서를 잘 알기에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강림으로 방언을 말하며 예루살렘이 소동할 때 이 요엘서 말씀을 들어 성령의 정통성을 변증한 것입니다.

성령받기를 두려워하지 마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8절에 성령께서 오셔서 하실 일이 책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리스는 성령께서 마치 검사와 같이 세상을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위로가 필요한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사랑과 은혜를 말씀하면 좋았을 텐 데 하필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하실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이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장밋빛이 아니라는 뜻이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처절하게 죽으셔야만 구원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의 하나님인 성령님이 오셔서 하실 일도 구원을 위해 치열하게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구원 과정에는 영적인 격렬한 전투가 있고 우리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전도해보셔서 알겠지만 한 사람이 하나님께 나오는 일이 얼마나 힘듭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느 누구도 수월하게 구원 받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여러 경로를 통해 성령께서 치밀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도록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9절과 10절을 보시면 성령께서 오셔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이 세 가지 문제인 죄, 의, 심판은 성령께서 책망하고 도전하지 않으시면 절대로 인간 스스로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책망하실 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근본적인 인간의 죄입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영화롭게도 하지 않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처럼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책망할 수 있는 것은 성령 밖에 없으십니다.

밖에 나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당신은 죄인이라고 말해보십시오.

우리를 비웃는 정도가 아니라 인격을 모독했다고 화를 벌컥 낼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해 책망하면 세상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충만을 받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명설교를 합니다.

너희가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말에 유대인들이 이렇게 반응을 보이죠.

2장37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이 때 베드로가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말하자 그 날 믿은 사람이 삼천 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성령에 충만한 스데반이 베드로와 비슷한 설교를 했습니다.

듣는 사람이 똑같이 마음에 찔렸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번엔 이를 갈며 돌을 던져 스데반을 죽입니다.

성령께서 책망하실 때 주께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죄를 책망하시면 속히 회개하고 마음과 행동을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 증거는 죄에 민감해지고 말씀대로 바르게 살려는 마음이 점점 증진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마음의 깨달음이 여전히 없다면 좀 더 신앙에 집중하는 생활로 믿음을 회복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 마음의 결단을 기뻐하시며 우리 믿음을 확실히 붙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다음은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죄인인 사람이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세상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착한 일 많이 하면 되고 다른 종교를 통해 마음의 수양을 하면 되지 왜 굳이 예수님만 길이냐고 묻는다면 성령께서 함께 있지 않으신 증거입니다.

성령이 깨닫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는 것을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주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시면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로마서5장19절이 말씀하시죠.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예수님이 죄 없는 분으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하셨다는 것을 오직 성령님만 깨닫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오직 두 부류밖에 없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여기는 의인과 의인이라고 여기는 죄인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늘 부족함을 느끼며 죄인의 마음으로 사는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게 된 사람임을 믿습니다.

 

또 성령께서는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합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세상이 알겠습니까?

물론 세상 사람들도 지구의 수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끊임없이 우주를 향해 새로운 터전을 물색하는 것도 그런 불안한 마음이 저변에 작용하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릴 것이라고 이사야34장4절에서 예언합니다.

베드로후서3장10절에서 베드로사도는 예언합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성령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이미 세상의 임금인 사탄이 심판을 받은 것 처럼 세상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에 속해서 불의한 것을 즐기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은혜를 비웃는 세상 사람들에게 심판이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책망하십니다.

야고보서 4장4을 통해서 이렇게 책망하시지 않습니까?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눈에는 이 아름다운 세상도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있고 심판의 날이 임하는 걸 압니다.

이 세상은 공중권세를 잡고 만민을 미혹하게 하는 사탄의 세력 아래 있습니다.

왜 사탄과 함께 멸망할 세상을 자꾸 바라봅니까?

우리의 눈은 항상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있는 줄 믿습니다.

걱정하는 제자들을 향해 좀 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지마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가서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돌아와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

주님이 준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세상에 비할 수 없는 아름답고 황홀한 곳입니다.

저는 휴가 때 멋진 여행지를 기대하듯 천국이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올 여름 휴가를 천국에서 보내자면 다들 싫어하시겠죠?

심판받을 세상 것이 너무 아까워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처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성령의 책망을 받고 돌이켜 회개하고 축복의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성도가 된 자녀들에게 13절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13절에 보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리라.

예수님과 3년 반을 함께 다니며 모든 사역을 눈으로 보고 배운 제자들이지만 여전히 주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든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해 설명하고 깨닫게 하려고 애를 쓰시는 데 지금 이 순간에도 제자들은 어리둥절한 상태입니다.

12절을 보면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지시죠?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은 데 지금은 감당하지 못하니 애가 타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다 이해한다면 지금처럼 불안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거란 말씀이죠.

비기독교인과 죄와 구원 얘기를 나누는 게 얼마나 곤혹스럽습니까?

전혀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 된 영적인 세계에 대해 조금씩 이해가 되고 깨달아지는 것은 완전히 성령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성령이 가르쳐주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둠과 무지와 혼란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길이 혼탁하고 안개가 가린 듯이 분명치가 않다면 성령께서 진리를 깨우쳐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실 때 성경 말씀을 통해 일하십니다.

성령께서 절대 스스로의 아이디어로 말하지 않고 예수님의 것을 알려주신다고 말씀하시죠?

이미 기록 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는 것이 정말 얼마나 큰 기쁨인지 깨달아 본 사람만이 압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영적인 세계가 열릴 때 막혔던 우리 영혼이 뻥 뚫립니다.

앞을 가렸던 장막이 시원하게 열릴 때 느끼는 그 감격 때문에 말씀을 더욱 사모하는 것이죠.

인도네시아 아래 파푸아뉴기니란 나라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코라 부족이 있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선교사부부가 있습니다.

아직도 식인풍습이 남아있는 곳이라 심방을 갔을 때도 밤에 내오는 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미 교인들이 선교사가 죽은 뒤 다리 한 쪽씩 다 맡아놓았다고 합니다.

선교 당시 이 부족들이 잔혹하게 다른 부족을 죽인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얼굴에 온갖 문신을 그리고 부적과 주술로 치장한 그 부족에 선교사가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외모를 보면 정말 사람 같지 않은 기괴한 모습의 미개인들에게 과연 복음이 들어갈 것 같지 않더군요.

저도 전도하러 다니다 얼굴이 험상궂은 사람은 슬쩍 피해가게 됩니다.

그런 부족에게 선교사 부부가 매일 성경말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는 지 밥 먹는 것도 잊고 선교사의 말씀을 들으러 모였습니다.

한 임신한 여인은 임산부가 남자들 곁에 가까이 오면 부정하다고 죽이는 풍습에도 불구하고 바나나나무 잎으로 온 몸을 가리고 문 곁에 숨어서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 내용을 가르칠 때 부족 전체가 슬퍼하며 침통해졌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당신의 모든 죄를 이렇게 다 갚으셨다는 말씀을 전하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3백명의 벌거벗은 부족들이 일제히 가슴에서 터져나오 듯 이따오, 이따오, 진리다 진리다를 외치며 뛰기 시작했습니다.

추장이나 추장어머니나 남자나 여자나 다 어깨동무를 하고 두 시간이 넘게 춤을 추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진리를 발견하고 깨달아진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무리 미개한 인종이라도 말씀이 있고 성령이 계시면 진리를 깨닫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을 때 주시는 이 기쁨과 충만함을 이 세상 어디서 느끼겠습니까?

어떤 아나운서의 트위터를 보니 친구들 모임이라 나갔더니 시끌벅적 모여서 밥 먹고 70%는 골프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돈 이야기, 옷 이야기, 화장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런 만남에서 돌아오면 남는 게 뭐가 있습니까?

다 자기 자랑하고 자기 만족을 얻어 가려고 들 나온 것이지 나를 생각해서 시간 내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기서 얻은 정보가 뭐 대단하고 그 만남에서 얻은 기쁨과 만족과 위로가 얼마나 갑니까?

이 세상에서 즐기고 탐닉하는 것과는 비교될 수도 없는 기쁨과 감격이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고 진리를 깨닫는 즐거움 속에 있는 줄 믿습니다.

세상과의 교제를 끊을 수는 없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교제가 온전하면 세상과의 교제에도 의미가 달라지고 세상의 작은 일에도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영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이 땅에서도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진리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성경을 읽어도 들어도 절대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인격을 느낄 수 도 없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계속 많은 군중 앞에서 기탄없이 유창하게 복음을 전하죠.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가 구약성경의 내용을 정확하게 인용해서 예수님이 바로 예언되었던 그 메시야라는 것을 변증합니다.

듣는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 저 사람이 학문이 없는 무식한 뱃사람인 줄 알았는 데 저런 지혜가 어디서 났냐고 놀랍니다.

그가 인용한 수많은 성경의 내용들을 어디서 알았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삼년 반 동안 듣고 배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지런히 구약성경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전엔 전혀 그 의미를 몰랐었죠.

성령이 오셔서 조명해 주시자 베드로에게 놀라운 통찰력이 생기고 그동안 배웠던 성경을 줄줄이 꿰어서 진리를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믿음은 요동하고 영적으로는 늘 미지의 세계에 있고 내 주변에 일어나는 세상 일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뜻을 알려주실 필요가 있을 때 이미 기록 된 말씀을 통해 인도하십니다.

김우0 변호사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 부터 수천 번이나 되뇌었던 주기도문을 어느 날 외우다 갑자기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성령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청와대기0선교회장인 주0준회장은 기도 중에 고린도전서3장16절의 말씀이 들렸다고 합니다.

"0준아, 네가 나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나 하나님의 성령이 네 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을 듣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회개의 기도가 흘러나오고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도록 성경을 배우고 익히는 일에 열심을 가지시길 축원드립니다. 아멘.

다음 14절에 보면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높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베일에 싸인 하나님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령님의 존재와 인격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도 오직 예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증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면 그건 성령의 사역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기적적인 현상과 성령님 자체나 인도하는 사역자에게만 관심을 집중시킨다면 그것은 성령의 사역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 이래 성령께서 대규모로 역사하실 때 나타난 현상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도덕적인 삶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사람들이 성령의 권능과 기적에만 열광하는 것은 절대 성령의 뜻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연합과 완전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죠?

예수님의 사역에서 보면 항상 나는 아버지의 뜻대로만 행한다고 하셨습니다.기적을 일으키고 난 뒤 항상 하나님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지 예수님 스스로가 영광을 취하신 적이 한번도 없으셨습니다.

성령께서도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역을 하시지 절대 성령 자신이 영광을 취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또 계시록에서 성부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할 권세를 모두 예수님께 위양하십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신의 재능과 모든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모든 풍성한 은혜와 복으로 기쁘게 해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버지가 주시는 복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것을 아시기에 마음껏 축복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돈이든 지혜든 건강이든 명예든 받으면 즉시 그것으로 우리 자신을 높이고 잘난 척을 할 지 다 아시기 때문이죠.

남보다 조금만 더 가진 게 있고 나은 게 있으면 은근히 자랑하고 자신을 높이는 게 바로 인간입니다.

그것은 곧 사탄이 빠진 교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죄이기에 준비가 안된 우리에게는 절대 허용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축복에는 반드시 원리가 있음을 아시죠?

먼저 영혼이 잘되고 강건해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이 옵니다.

그래야 복을 복되게 사용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진짜 복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책망하시면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날마다 하나님을 향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때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기적에 열광하기 쉽습니다.

금가루가 내리고 보석이 떨어지고 무지개가 현장에 나타나는 그런 기적에만 몰두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믿음을 쌓으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모든 축복의 약속도 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있습니다.

오늘은 성령님에 대해 일부분을 살펴보았지만 우리 삶에 모든 능력과 좋은 은사들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 삶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세상을 넉넉히 이기고 어떤 고난과 문제도 성령의 지혜로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기도하십시오.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보혜사성령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말씀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