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너의 길에 함께 하리라 (출애굽기23장20절-33절)

남수연 2013. 12. 16. 18:03

오늘 말씀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체결하시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애굽을 탈출해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해 진군합니다.

그리고 석달만에 지금 시내산 아래에 도열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속에서 시내산 위에 강림하셔서 이스라엘민족과 계약을 맺고 계십니다.

이 광경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의 모습이 두렵고도 경이롭지만 한편 다른 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코흘리개들 모아놓고 연설을 하고 있는 교장선생님의 모습 같은 것이 떠오르기도 한다면 불경스러운 것일까요?

어쨌든 저는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노예출신의 볼품없는 한 민족을 앞에 놓고 강림하셔서 이런 저런 언약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왠지 웃음이 납니다.

그 제시하신 조건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결국 선택은 받았지만 오리지널 죄인인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본심을 깨닫고 지키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시는 언약을 생각하면 웃음 뒤에 왠지 아련한 눈물이 비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와 사랑은 불붙는 시내산 처럼 강렬하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은 그저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게 하지 말라며 모세를 앞세우고 뒷걸음질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왜 이렇게 인간에게 언약을 맺자고 하시는 것일까요?

성경에 보니 언약이란 단어가 318번 나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은 인간에게 언약하자고 하시고 그 언약하신 것을 결국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언약을 맺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소중한 것을 뺏기지 않고 소유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계약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사랑하는 피조물인 인간을 다시 소유하시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흘러가고 새 세대가 오면 또 그 언약을 상기시키시며 하나님은 죄인에 대한 구원의 의지를 또 드러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또 언약은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연약한 우리들이 주님의 구원에 대해 안심하고 확신케 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생각하신대로 이루시면 되기에 굳이 언약이 필요치 않으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이 없이 그냥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를 안심시키고 우리의 구원을 확고하게 보장해주시는 배려입니다.

물론 인류를 대표한 아담과의 최초의 언약은 파기되었습니다.

아담은 순종의 언약을 파기했고 죄가 세상에 들어와 모든 것을 망쳐 놓았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깊은 심연이 생기고 관계가 단절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을 벗어난 인간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질주하며 살고 있는 것이죠.

죄 가운데 태어나 본성을 따라 죄를 짓고 죄의 결과가 주는 불행 속에서 지구의 생을 마감합니다.

이것을 솔로몬이 전도서9장3절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악이 가득한 미친 마음을 품고 살다 죽은 다음 끝이 아니라 죽은 자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천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벌에 처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고 여전히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시 부모 자식하자고 손을 내미신 게 오늘 언약식의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도 어떤 프로인지 가출청소년 찾아주는 것이 있었죠.

미국에서도 그런 프로가 있다고 합니다.

가출한 자식을 찾아내서 부모와 영상으로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몇 년 만에 딸을 찾은 엄마는 화면에 딸이 나오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애절하게 딸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가출 자식들은 시큰둥한 얼굴로 뭐하러 자기를 찾냐며 그냥 각자 살자고 한다고 합니다.

이게 인간을 찾으시는 하나님아버지와 집나간 인간 자식들의 모습입니다.

집나간 죄인들은 하나님께 오히려 화가 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이 언약식의 갑의 입장이 아닌 것 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이 열심히 설득하고 얼러서 어떻게든 언약을 맺으시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언약을 맺자고 하신 줄 믿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과 언약들 맺으셨습니까?

우리는 시내산 아래서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6장28절에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 피흘려 죽으실 때 이 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속죄의 피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게 하시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들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그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똑같고 그 뜻은 결코 다르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언약을 다시한번 생각하며 힘든 환경과 싸우다 지친 마음에 새 힘을 얻게 되길 소원합니다.

본문이 좀 길지만 주제를 하나님이 언약을 위해 하실 일과 가나안 땅에서 누릴 축복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것은 사자를 보내주셔서 직접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어떻게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실지 차근 차근 설명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의사들이 옛날과 많이 다르더군요.

제가 발톱에 문제가 있어서 전문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인터넷에서 사진을 보여주며 병명은 무엇인지, 치료방법은 무엇인지, 무슨 검사를 거쳐서 자기가 앞으로 얼마간을 치료할 것인지 치료 과정을 다 알려주었습니다.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격다짐으로 이스라엘을 끌고 가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격다짐으로 우리를 불러내서 무조건 믿으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믿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의심 없이 남을 잘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시고 단서를 붙이십니다.

만일 나를 따르려면.

잘 생각해보고 결정을 하라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어떤 조건을 제시하십니까?

우선 가나안 정복 전쟁을 내가 다 할테니 걱정 말라는 것입니다.

벽돌만 만들고 노역만 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이 무슨 전쟁을 하겠습니까?

무기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직접 내려오셔서 모든 전쟁을 싸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전술까지 27절, 28절에서 다 일러주시잖아요?

하나님의 위엄을 그들에게 보내서 두려움이 엄습해 도망가게 하시겠다.

왕 벌을 보내서 민족들을 쫒아내겠다.

그들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과 전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왜 하나님이 직접 이 가나안입국의 과정에 함께 하셔야 합니까?

왜냐하면 가나안에 이르는 길은 그들에게 초행길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불뱀이 출몰하고 어디에 물샘이 있고 어디에 장막 칠 곳이 있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르기에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길도 다 초행길 아닙니까?

어느 갈래의 길을 선택해야 할지, 분명히 길이라 생각하고 가다보면 수렁이 나오고 가시밭이 나오는 게 인생길입니다.

그래서 당황한 사람들은 '가지 않은 길' 이런 시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날 아침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네

그리고 마지막에 한숨을 쉬며 말하죠.

그 길로 인해 내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그 때 그 사람을 선택해서 결혼을 했더라면.

그 직장을 결정했더라면.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엔 후회가 없는 줄 믿습니다.

후회가 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정확한 시점에 길을 지정해 주시고 인도해주셨는지 돌아보면 정말 짜릿한 전율이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셔서 지금도 우리와 밀착 동행해주시잖습니까?

시편107장 30절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보이지 않는 앞 길 때문에 걱정과 염려가 엄습할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을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앞날은 누구에게나 불투명합니다.

인생은 한마디로 논할 수 없고 죄와 결속된 세상의 문제들은 처리하고 해결하기에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말이 좋다는 것을 약속받았다면 믿고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런 약속을 하나님께 직접 받은 이스라엘은 광야를 행군할 때 어려움이 닥치면 현실에 불만하고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모든 난관마다 끝까지 의심을 멈추지 않았던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선하심이 아니라 그들이 믿었던 나쁜 결과대로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답답한 현실에 성질내지 마시고 예수님의 도움을 기도하고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알 수 없어 내가 고민하다 우연히 선택한 길인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 그 결정에 역사하셨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앞으로의 이 미지의 인생길에 예수님이 항상 동행하심을 믿고 담대하시길 축원드립니다.

또 하나님의 사자가 함께 하시는 이유는 가나안 여정엔 대적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원수들은 우리 힘으로 막아내기엔 역부족인 강한 군대들입니다.

22절에 보면 내가 너의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너의 대적에게 대적이 되주시겠다고 말씀하죠.

어떻게 창조주하나님께서 일개 부족들의 상대가 돼서 싸우시겠다는 것입니까?

이건 어린 아들과 싸우는 친구 녀석하고 아버지가 맞장을 뜨겠다는 것처럼 어색해 보이지 않습니까?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이 상대해주셔야 할 만큼 원수와 대적의 세력이 막강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나안 전쟁은 단지 인간 자연사 속의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과정에 극렬하게 방해하는 마귀의 세력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은 우리가 다 몰라서 그렇지 우리의 구원을 방해하려는 악한 세력들의 작전은 교묘하고 끈질깁니다.

그냥 일어나는 가정의 불화 같지만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주고받게 하는 마귀의 단골 수법에 걸려든 것입니다.

끊이지 않는 병마와 시끄러운 환경들도 마귀가 부지런히 일한 결과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전쟁이 눈에 보이는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풀려고 아무리 애써도 잘 되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 장애물이 여전히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 마귀의 세력들은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물리쳐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악한 세력들의 시험에 넘어져 혹독한 현실의 고통을 맛보기도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대적하고 물리칠 부분들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그들을 위해 싸우시지만 이스라엘이 손 놓고 가만있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여리고 성을 일곱바퀴 돌라는 전략을 받으면 그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전쟁에서 근본적으로 마귀의 세력들이 우리를 파멸시키지 못하도록 분명히 하나님께서 막아주십니다.

요한일서5장18절에서 말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싸개 안에 안전하게 보장되어 지켜집니다.

다만 악한 자가 부추기는 죄의 유혹에는 우리가 대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승리를 함께 받은 자녀들입니다.

요한일서 5장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세상은 마귀를 알지도 못하고 이기지도 못하지만 우리는 알고 또 이깁니다.

매순간 우리 앞의 시험과 죄의 본성들로 유혹하는 악한 세력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마귀가 감히 내 삶을 흔들지 못하게 견고한 자신을 세우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겠다는 이 말씀을 추상적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실제적인 전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엄을 앞서 보내시고 또 왕벌을 보내 쫒아내게도 하십니다.

모든 적절한 방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물리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두 말씀은 실제로 가나안 정복의 역사 속에 다 이루어진 일의 예시입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가나안의 부족들에게 임하며 그들이 크게 두려워 간담이 녹았다고 여호수아서는 기록합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하게 된 것이죠.

또 여호수아24장12절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 칼로나 너희 활로나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실제 전쟁에서 왕벌떼를 보내셔서 두 왕을 쫒아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각자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곤핍한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을 알맞게 지도하고 계십니다.

29절을 보면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께서 대적을 쫒으시되 한꺼번에 정벌하면 땅이 황폐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해칠지 모르니 천천히 쫒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구는 아직 적은 데 땅만 먼저 차지하면 땅에 들짐승이 번성하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에게 가장 최상의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그런데 그게 또 우리와 얼마나 생각이 다르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내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이 한꺼번에 다 제거되고 모든 일이 단번에 해결되길 바랍니다.

그래야 마음이 안심이 되지 여전히 내 앞에 문제가 미진하게 남아있어 조금씩 해결해 주시는 건 싫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실 때 단번에 환경과 문제와 일들이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암시하시는 것입니다.

이유도 밝히셨죠.

들짐승이 번성해서 오히려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단숨에 우리의 기도가 이뤄지고 환경이 개선되고 문제거리가 사라지면 얼마나 홀가분하고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그런 인생의 고민거리가 다 사라지면 그 자리에 더 악한 세력이 들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는 절대 인생의 위기가 아닙니다.

문제와 거친 환경은 우리를 예수님 발아래 나가 거기서 자꾸 머물 수밖에 없게 하니 달리 생각하면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삶에 안정이 찾아오고 문제거리가 떠난 자리에 악한 본성과 권태와 우울과 교만과 다른 죄를 부추기는 마귀의 세력이 들어오기가 쉽습니다.

전쟁 시에는 정신병자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생사가 걸린 전쟁 때는 잡다한 고민과 번뇌가 다 사치입니다.

그냥 살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것이죠.

우리도 아이들 키우며 정신없이 살 때는 부부싸움을 해도 당장 닥친 일들을 해결해내느라 그런대로 참고 살아집니다.

그런데 한숨 돌릴 때가 되면 문제가 심각하게 발전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에 허무도 몰려오고 내 불행과 연민에 빠져 우울증 같은 병도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우리의 고질적인 환경과 문제를 단숨에 뒤바꿔주지 않으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셨다면 반드시 해결해 주십니다.

다만 문제들이 천천히 해결되고 항상 뒤끝이 좀 남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다스릴 영역만큼 서서히 허락하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 삶의 어떤 문제이든 하나님께 맡기고 해결하시는 손길을 신뢰하며 인내하시길 바랍니다.

성도에게 허락하신 모든 환경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믿고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2. 다음은 가나안땅에서 누리게 하실 혜택과 축복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25절 부터이죠.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병을 제할 것이다.

두려움과 전쟁 중에 낙태되는 일이 없고 불임자가 없어 민족을 번성케 할 것이다.

모든 백성들이 안전하게 자기의 생명의 수를 다 누리게 할 것이다.

인간이 소망하는 가장 기본적인 복들을 보장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구약의 복과 신약의 복은 다릅니다.

구약시대의 복은 철저히 현세에서 우리가 누릴 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복은 영적인 복이고 천국을 누리는 복을 말씀합니다.

영적인 복이 좋으십니까?

이 땅에서 누릴 복이 더 좋으십니까?

신약의 복은 구약의 복을 능가하고 뛰어넘는 완전한 복입니다.

그들에게 단지 가나안땅의 양식을 약속하셨다면 우리에겐 영원한 생명의 양식 예수님의 몸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가나안의 샘물을 약속하셨다면 우리에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흐르게 하시는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장수의 복을 주셨다면 우리에겐 영생하는 복을 주셨잖습니까?

또 그들에게 병을 제하여 주셨다면 우리에겐 더 깊은 사망의 병을 치유해 영원한 부활의 몸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구약시대 복과 신약시대 복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구약성도들에겐 성령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복을 이해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도들이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양식과 돈과 무병장수 이런 것을 최고의 복으로 아는 구약성도들과 같습니다.

영적인 축복은 사실 느끼지도 못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구약시대같은 육적인 복이 아닌 영적인 복을 누리는 신약시대입니다.

구약시대처럼 육적인 복도 없는 데 영적인 복도 누리지 못하는 거듭나지 않은 성도들이 가장 곤란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속죄하고 부활승천 하신 다음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다 성령을 받고 거듭나야 합니다.

간구하는 사람에겐 주시겠다는 것이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지난 주에 회개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죠.

우리가 죄의 본성을 따라 살던 삶을 돌이켜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를 믿고 성령받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내 인생의 핸들을 예수님께 넘겨드리겠다는 진실된 마음이 동반해야 참 회개가 됩니다.

우리 교회는 새신자분들이 많아서 이런 영적인 과정들을 잘 이해하시고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났는지를 확신하기까지 자신을 살피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으면 알아서 기도하고, 알아서 성경보고, 알아서 전도하고, 성령께서 그렇게 되게 우리를 지도해주십니다.

그래야 오늘 본문에서 약속하신 구약시대의 복인 양식과 물의 복, 무병장수의 복을 뛰어넘는 성령이 함께 하시는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환경을 능가하는 담대함과 안정감, 마음의 평강과 기쁨 속에 매일 일용할 것들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의 손길을 느끼며 이 땅에서 천국을 구가하며 살게 되는 은혜를 모두가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하신 모든 것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여호와의 사자의 목소리를 잘 따라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성도로서 떳떳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우리 심령에 자신감이 생기고 쉽게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요동치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셨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는 삶은 우리가 제일 안전하고 평안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인생의 경영 메뉴얼입니다.

왜냐하면 창조하신 분이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고 깨달은 말씀을 힘써 지킬 때 믿음도 놀랍게 성숙해 갈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그러면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시고 병을 제하시고 자손이 번성케 하시고 모든 수명을 누리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 자체가 축복의 땅이라 모든 것이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나안땅이라 해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할 때 양식이 떨어지고 물이 고갈되고 병든 자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축복의 땅이 되게 하고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 기쁨과 능력가운데 넓은 지경을 다스리고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잘 순종해야 함을 잘 기억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감사하십시오.

예수님의 말씀대로 잘 지켜 순종할 때 매일이 평안하고 복되며 기쁨으로 천국을 향한 여정을 힘차게 걸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2013년12월15일 주일설교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