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새생명전도축제설교 -천국은 이와 같으니(마태복음13장44절-46절)

남수연 2014. 10. 16. 15:05

오늘 우리교회 새가족초청예배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정말 환영합니다.

큰 맘 먹고 이렇게 참석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오늘 걸음이 헛되지 않은 특별한 날이 되게 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모든 게 서먹하고 낯설겠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큰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오늘 힘들게 교회 문 안으로 들어오셨으니 신앙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수많은 교양강좌 같은 내용을 여기서 또 들을 필요는 없으실 것입니다.

오늘 함께 생각해 볼 성경말씀을 우리가 읽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설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마태라는 사람이 이 설교를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말씀도 이해가 되겠죠?

예수님은 2천년 전 이스라엘에서 실제 사셨던 분이십니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 나오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 브리태니커 인명사전에 나오는 실제 인물이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 죽었던 예수님이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이 지구역사의 마지막에 다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선악간에 심판하시겠다는 것을 다 믿습니다.

좀 생소하게 들리시겠지만 성경말씀을 알면 알수록, 또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건 절대로 부정할 수가 없는 진리라는 게 점점 더 확실해지기에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간디나 석가나 이순신장군 같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진실 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믿을 수 있을 만큼 진실 된 사람을 고르라면 단연코 예수님이 뽑힐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고, 왼 뺨을 때리는 자에게 오른 뺨도 내주라 하셨고, 하나님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고, 죄인과 가난한 자와 슬프고 억울한 자들을 이해하셨고 병든 자를 기적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억울한 죄목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실 때도 주님을 죽음으로 내 몬 사람들을 위해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지구상의 삼분의 일이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믿을 만한 분이십니다.

오늘 그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이 설교도 믿을만한 말씀입니다.

이 말슴을 함께 생각해 볼 때 깨닫게 되는 은혜가 임하시길 소원합니다.

깨달아져야 믿을 수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 끄덕 되면 이해가 되고 깨달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두 가지의 비유를 들어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진지하게 생각할 것은 천국에 대해서입니다.이 말씀은 천국이 있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꼽으라면 그것은 ‘천국’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실 사명을 위해 일하실 때, 첫 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였습니다.

예수님은 땅 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천국을 가르쳐주시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왜 이 좋은 가을에 아리따운 단풍구경도 안가고, 주일마다 고리타분해 보이게 예배당에 와서 앉아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 이유는 거두절미하고 한마디로 죽어서 천국에 가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죠.

그냥 정신 수양이나 하고 심신을 단련할 거면 저는 교회 안 나옵니다.

죽어서 천국을 간다는 말이 너무 진부하고 비현실적으로 들립니까?

우리는 길어야 백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천년만년 살 것 같이 죽음과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 아무 관심 없이 살아가는 게 더 비현실적인거 아닌가요?

평범한 일상에서 어느날 상상도 못하던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곁에 다가왔을 때 사람들은 그제사 죽음이 우리 삶에서 멀지 않은 데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죠.

미국엔 마을마다 입구 큰 길 가에 공원묘지가 조성된 곳을 많이 보았습니다.

동네 한 쪽에 죽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묻혀있고, 아버지 어머니, 형제, 가족들이 누워있는 것을 매일 보면서 삶과 죽음이 이렇게 가깝다는 것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렇게 나도 저 곳에 누울 것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진지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게 낫다고 말씀합니다.

죽음에 대한 재미있는 통계들이 있더군요.

목욕탕 욕조에서 미끄러져 죽는 사람이 매년 34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침대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은 미국에서만도 매년 450명이라고 합니다.

일년에 만명이 번개나 벼락을 맞아 죽는다고 합니다.

문자메시지 주고받다 죽는 사람이 매년 6천명, 해마다 13명 정도가 자판기에 깔려서 죽는다고 합니다.

죽음은 저 멀리 총성이 오가는 전쟁터에나 있고 노인 병실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일상적인 삶 속에 함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어제 밥 먹고 웃으며 헤어진 친구의 부음을 오늘 아침 들을 수 있는 것이 죽음의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러니 죽음 뒤에 우리가 곧 직면하게 될 세상에 대해 어떻게 대비 없이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죽으면 다 끝이지 무슨 죽음 뒤에 세상이 있냐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 영국의 사우샘프턴 대학의 샘 파니아 박사 연구팀이 4년 동안 영국, 미국 등지 병원15곳의 심장마비 환자 2천60명을 조사한 결과를 일간지에 보도했습니다.

심장마비로 죽었다 극적으로 소생한 사람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안 자기에게 자아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의학적으로는 몸의 모든 기능이 분명히 정지되었는데 자기가 죽은 게 아니라 분명히 존재하더라는 것입니다.

한 남성은 영혼이 신체를 벗어나 방구석에서 자신이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심장마비로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 중 13%가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연구진들은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진통제나 뇌의 충격으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결론을 발표했습니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매일 직면하는 의학계에서 오히려 영혼은 죽지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죠.

육체를 벗어난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죽은 뒤에 영원히 살 더 확실하고 완벽한 세계인 천국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오신 예수님 말고 누가 죽음 뒤의 삶과 천국을 정확하게 알겠습니까?

그걸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우리에게 천국으로 따라 오라고 주님은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했던 천국을 어떻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요한계시록을 보면 요한사도가 계시와 환상을 통해 본 천국의 모습이 일부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미지가 그다지 머리 속에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빨간 색을 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걸 말로 설명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꽃과 따사로운 공기와 하나님의 영광이 북극의 오로라처럼 황홀하게 비추는 곳인지를 설명하지 않고 천국을 값어치로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돈으로 따지는 게 제일 실감난다는 걸 아셨기 때문인가 봅니다.

천국은 얼만큼 값지고 귀하고 영광스러운 곳일까요?

예수님이 본문에서 두 가지 예화를 들어서 설명하고 계십니다.

첫번째 비유는 천국이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남의 밭에서 일하다 땅에 묻혀있던 보물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옛날엔 땅에 항아리 같은 것을 묻어두고 현금을 보관하던 사람들이 있었죠.

재작년에 김제 마늘밭에서 100억이 넘는 5만원권 다발을 굴착기로 파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해서 벌어들인 돈이었다죠.

어쨌든 땅 파고 돈을 묻어두는 게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땅을 파고 돈이나 보물을 묻어두는 이야기는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누군가 묻어 놓은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보물을 더 깊숙이 묻어두고 기쁨에 벅차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있는 재산을 다 처분하고, 모자라는 것은 대출을 받아서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그 밭의 등기를 넘겨받는 순간 이 사람이 숨이 넘어가지나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가 좀 이상한 것 아니냐, 이렇게 남의 밭의 보물을 빼돌리는 비양심적인 행동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랴 생각하시는 분이 혹 계실지 모르겟습니다.

이 사람의 행동에는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것입니다.

전쟁이 많고, 급작스런 죽음이 많던 당시에는 주인을 잃고 기약 없이 땅에 묻혀있는 보물이 꽤 있었기에 여기에 따른 법이 있었습니다.

김용0 전 대법관이 쓴 ‘판결 마지막 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당시 로마법에 잊혀진 보물은 발견한 사람의 것이라는 조항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현재 누군가 보관하기 위해 감춰둔 걸 파가면 당연히 도둑이죠.

오늘 이 사람이 발견한 보물은 분명히 잊혀진 보물에 속합니다.

땅주인도 모르는 것이기에 남에게 소작을 준 것이고 나중에 땅을 팔아버린 것이죠.

그러나 만일 그냥 파간다면 주인이 눈치채고 자기의 소유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이 밭을 사는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 이야기는 당시 누가 들어도 합법적으로 보물을 취득했다고 이해할 수 있는 예화입니다.

물론 이 비유의 핵심은 그런 걸 설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예화를 통해 우리에게 천국에 대해 어떤 점을 가르쳐주시려는 것일까요?

우선 천국은 감춰져있는 보물처럼 세상에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천국은 감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다 천국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태어나고 자란다는 것이죠.

모태 신앙이라 해서 태어나면서부터 천국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던 어느 시점에서, 이 사람처럼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혹은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 천국이라는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렇게 해서 천국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온 어느 날, 우연히 천국이라는 보물을 발견한 것이죠.

모든 사람에게 천국이 보이지 않는 것은 감춰져있기 때문입니다.

감춰져 있는 것이지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감추어져 있던 천국은 오늘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이젠 우리 앞에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앞에 있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오셔서 창세전부터 감춰진 것을 비유로 다 드러내셨다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천국은 더 이상 감춰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천국이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이젠 감춰진 천국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눈에 보이는 보물이 된 것입니다.

이 보물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남은 것입니다.

그 다음 이 예화는 천국을 발견한 사람의 행동에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누구든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집착하던 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쫓는다면 거기 무언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세상 것에 집착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라 생각하며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을 발견하고 보니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판다할지라도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따릅니다.

물론 오늘 비유의 소작인이 자기 세간을 다 판다고 해서 그 돈으로 그 엄청난 보물을 살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살 수 있는 것은 보물이 아니라 보물이 묻혀있는 밭을 사는 것일 뿐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가진 모든 귀한 것을 다 판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정말 천국이 있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소작인이 생전 만져보지도 못한 보물을 얻기 위해 허름한 세간살이를 아낌없이 팔았듯이 우리가 신봉하던 세상적인 가치들을 다 바꿔서라도 반드시 천국을 선택한다는 말씀입니다.

애착을 갖는 것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천국을 발견한 사람은 절대로 천국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과거에 즐기던 일들도 천국의 기쁨을 위해 기꺼이 반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진짜 있는 가의 증인들이 바로 먼저 믿음을 가진 우리들입니다.

왜 오늘 예화의 주인공이 자기가 가진 모든 세간살이를 다 팔고 한 칸 집까지 팔았을까요?

밭에 감추인 보물이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거나 이거나 똔똔이면 뭐하러 정든 세간살이를 처분하겠습니까?

누군가 가산을 다 팔아서 투자한다면 거긴 반드시 뭔가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우리가 너무나 익숙한 세상살이를 밀치고 신앙을 우선으로 선택했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뭔가에 현혹돼서 교회에 나와 삶을 허비하고 있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는 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한 천국의 소망과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은혜는 세상의 값으로 따질 수 없이 크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로 세상에서 누리는 어떤 즐거움과 만족과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지를 오늘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은혜가 있으시길 축복드립니다.

두번째 예화는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진주 상인이 좋은 진주를 찾아 전국을 누비고 다니다 진짜 고가의 최고급진주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 상인도 자기가 가진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샀다고 합니다.

이 예화는 앞 이야기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앞에서는 우연찮게 발견한 보물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번에는 상인이 찾고 또 찾아다니다 값진 진주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끝없이 진짜를 찾아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뭔가 채워지지 않는 알 수 없는 게 있지 않습니까?정말 이거면 다 되었다라는 것을 찾기 전까지 사람들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젠 더 이상 찾을 게 없다고 만족하기 전까지 사람은 끝없이 찾아다닙니다. 젊은 세대는 늘상 스마트폰과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만족스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즐거움은 결국 중독으로 이끕니다.

해도 해도 감질만 나고, 조금 더 하면 다 채워질 것 같은 그런 취미들이 결국 헤어날 수 없는 중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정보중독증에 걸렸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보가 끊어지면 마치 마약환자나 알콜중독자들처럼 금단현상이 나타나죠.

끝없이 무언가를 사서 채우려고 하는 쇼핑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신랑이 고기 구워 먹는 불판만 10종류가 넘게 홈쇼핑에서 구입했다는 거예요.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하면 틀림없이 택배라고 합니다.

그만큼 인생이 외롭고 허무하다는 절규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삼만원 이하의 소액 제품들만 죄책감 없이 구매했는데 나중에 보니 카드대금이 180만원이나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쇼핑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불안할 때, 특히 쇼핑을 한다고 합니다.

911테러가 있던 당시에 미국사람들의 소비성향이 급속하게 상승했다고 합니다.

테러에 대한 심리적인 불안감을 다른 뭔가를 사서 채우려고 했다는 것이죠.

죽음을 앞 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똑같이 기대하지 않은 돈이 주어졌을 때 누가 더 기뻐할 것 같습니까?

연구결과에 의하면 죽음을 앞 둔 사람이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을 돈으로 채우려고 한다는 것이죠.

왜 사람들은 이렇게 만족하지 못할까요?

세상에는 아무 것도 부족함 없이 우리를 채워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무언가를 찾고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아닐까요?

이제 더 필요한 건 없다, 이젠 찾았다, 이런 것을 발견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오늘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본향, 우리의 근본을 알게 되면 방황은 끝나는 것입니다.

정말 끝이 납니다.

그런데 이 진주 상인의 비유를 저는 이렇게도 해석하고 싶습니다.

오늘 말씀을 주의 깊게 보시면 ‘천국은 값나가는 진주다’라는 공식이 아닙니다.

‘천국은 좋은 진주를 찾고 있는 상인이다.’란 뜻입니다.

오히려 천국이 상인처럼 좋은 진주를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값진 진주를 만났을 때 천국이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이런 의미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보배롭고 귀중한 우리 한 영혼을 찾아오셔서 우리를 천국에 인도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다 버리시고 우리를 사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진주 상인의 비유에서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는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사시려는 예수님께 팔려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예수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아름다운 천국이 우리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계신 모든 분들을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찾아내어 십자가에서 값을 이미 치르시고 천국으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그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천국의 시민이 되고 하나님아버지가 돌봐주시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짧은 설교로 한순간에 믿음이 생기는 것은 좀 힘든 일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믿으려는 대상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정말 믿을만 해야 믿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함께 드린 사랑하는 우리의 새가족들이 마음에 결심하고 천국을 발견할 때까지 교회생활을 해보시길 간곡히 권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천국을 확신할 때, 더 이상 찾을 것이 없다는 만족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다음 세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삶에는 궂은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습니다.

지금 힘든 가운데 있다면 그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떻게 살든 살아집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내세를 준비할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 세상에서 우리에게 좋은 일은 결코 없다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찾기 위해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목숨까지 주신 예수님을 믿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유업으로 받으시길 간절히 권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하나님이 자녀가 된 우리에겐 죽은 다음 천국에 가는 축복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도 보호자가 되셔서 날마다 밀어주시고 매일 셀 수 없는 도움으로 우리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얼만큼 우리를 뒤에서 밀어주시는 지 아십니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노메달이던 남자 육상에 동메달과 은메달을 안겨준 선수가 여호수0 입니다.

우리나라 육상계에 28년만의 메달이라고 합니다.

이 날 아침 남자계주 400미터를 마친 여호수아선수는 1600미터 계주 시작 30분전에 갑자기 마지막 주자로 뛰라는 감독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한번도 연습해보지 않은 1600미터 코스의 마지막 주자로 달린 여호수아선수는 당당하게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가난한 신학생의 아내였던 어머니는 영양실조 상태로 보기에도 가여운 깡마른 미숙아와 다름없는 아기를 출산했습니다.

입원비가 없어 병원에서 바로 퇴원한 여호수아선수의 어머니는 아무 것도 먹일 것이 없어 겨우 젖만 먹여서 아기를 키웠다고 합니다.

그 아기가 잘 자랄수나 있을 지 걱정하며 여호수아 처럼 강하게 자라라고 이름을 여호수아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우후죽순처럼 쑥쑥 자라나 육상선수가 된 것입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목사인 아버지가 금식하며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여선수는 이미 경기를 마치고 기운이 다 빠진 상태에서 사력을 다해 달렸습니다.

그런데 3위로 달리던 마지막 결승선에서 누군가 확 뒤에서 밀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순식간에 역전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정말 경기 장면을 보면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던 거리에서 여호수아 선수가 누가 떠민 듯이 앞으로 밀려나가 결승선을 통과하며 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밀어주시는 거 우리는 다 그 느낌 알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에겐 영원한 천국의 축복 뿐 아니라 우리를 밀어주시고 편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날마다 함께 하십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고 있는지는 모두가 다 간증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오신 모든 새가족분들이 사랑으로 우리를 찾으시는 예수님을 믿으시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실 뿐 아니라 이 땅에서 돌보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가 되기를 결단하는 은혜가 있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4.10.12 주일설교 남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