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호세아14장1절-9절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남수연 2017. 8. 15. 17:26

오늘 여덟 번째 주나산가족캠프를 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물놀이도 즐기고 달콤한 휴식시간도 갖게 되어 참 마음이 즐겁고 감사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노는 지 진수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밖에 나와 말씀을 나누려면 분위기가 달라져서 집중하기에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이 이곳을 향하시고 성령께서 이 모임 중에 계시기에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열어 말씀을 잘 깨닫게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잠깐 나눌 말씀은 호세아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호세아선지자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패망을 예언하고 결국 그 일이 이뤄진 것을 목격했던 선지자입니다.

망해가는 민족을 향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전달하며 회개를 호소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성경역사를 배우는 것은 당연히 그들처럼 망하지는 말아야겠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전반부는 회개하고 돌아올 것에 대해서, 후반부는 돌아온 자녀들에게 주시는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후반부에 약속하신 아름다운 축복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전반부에 있는 조건들을 먼저 배우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따라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앞으로도 이 말씀을 잘 따라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모든 사람들은 1절의 부르심을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이스라엘은 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이 말씀을 듣지 않아 망한 것이죠.

그들이 망한 것은 불의함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오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불의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의를 깨닫게 하시고 구원받을 길을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은 번영을 누렸지만 하나님을 떠났기에 불의했고, 불의한 행위대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호세아가 예언자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북왕국의 가장 번성기라고 할 수 있는 여로보암2세 때입니다.

이후 한 세대 만에 북왕국이 앗수르에 완전히 함락되어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불안한 전성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전성기를 맞으면 불의가 더 가중되는 것이 인간의 약점입니다.

그래서 그 번영은 불안합니다.

사람들이 번영하기는 한데 뭔가 내적으로 탄탄하지 않은 불안한 부귀를 누리는 경우가 있잖습니까?

베네수엘라 같은 경우 생필품을 무료로 줄만큼 석유 판 돈으로 잘 먹고 잘 살았지만 결과가 어떻습니까?

그들의 풍요가 얼마나 불안정한 경제 기반 위에 있었는지 유가 하락과 함께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은 인간의 번영은 스러지는 이슬 같은 것입니다.

어려울 때도 모든 형편이 좋을 때도 항상 하나님 앞에 돌아가 섬기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망한 죄인들에 대해 인자를 베푸십니다.

이미 엎어진 백성들을 향해 2절에 제기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우리가 늘 이 말씀대로 돌이켜 하나님을 따른다면 큰 실패를 피하고 후반부의 약속하신 풍요와 축복 속에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1. 너는 말씀을 가지고 돌아와라.

하나님께 돌아와 섬기려면 말씀과 함께여야 합니다.

지식이 없이는 참하나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이렇게 망하게 되었습니까?

이미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정확하게 46절에서 분석해 놓으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지식이 없어서 망했는데,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받은 지식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812절은 또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8:12)

말씀을 이해도 못하고 관심도 없고 지키지도 않고 무지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모르면 올바른 믿음으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떠날 때 그 성도들을 누구에게 부탁합니까?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서 반드시 영광의 기업을 받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놀기 좋은 곳에 와서도 우리는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입니다.

말씀을 풍성히 배우고 깨닫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2.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를 제거해주시지 않으면 죄와 공존할 수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섬길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불의를 스스로가 씻을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죄를 깨끗하게 해주셔야 한다는 것이죠.

호세아선지자는 그 사실을 정확히 계시 받은 사람이 아니기에 어떻게 불의를 제거해주실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시대에 남왕국에서 사역했던 이사야선지자는 좀더 상세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53:11)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제거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받으실 선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 무슨 고귀하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선한 것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내게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복된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진리입니다.

늘 십자가의 대속의 진리를 반복해서 듣고 성령의 감동하심 안에서 확신을 갖는 믿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종교적인 제사는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시대인지라 당시엔 제단마다 제물이 넘쳤다고 합니다.

미가서를 보면 천천의 숫양과 만만의 기름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입니다.

아모스서를 보면 그때 모습을 생생히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제단에다 제물을 바치고 돌아가서 범죄하고 악을 행한 이들은 망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 다음 악이 따라온다면 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언젠가 한 신문에 나온 적이 있는 내용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는 데, 집에 돌아오다 보니 가게 앞에 계란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직 어둑어둑하고 보는 사람도 없으니 한판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마침 출근하는 주인에게 딱 걸린 것입니다.

그러자 이 집사님이 지금 현금이 없어서 그러니 내일 꼭 갖다 준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날 며칠을 기다려도 돈을 가져오지 않자 결국 가게주인이 괘씸해서 이 집사님을 경찰서에 고발했다는 내용입니다.

새벽기도와 함께 악을 행하면 그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종교의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교의식 대신 입술의 열매를 드린다고 하죠?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매일 하는 말들은 주님께 드릴만한 것들일까요?

우리가 말을 할 때, 항상 조심하고 삼가야 할 것은 그것이 곧 우리 신앙의 실체를 겉으로 드러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공손하고 은혜로운 신앙의 말을 한다고 해서 다 그 믿음이 순수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불손하고 거칠고 험한 입술의 말 속에다 절대로 참된 신앙을 담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는 말을 우리의 본심으로 받아들이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입술의 열매를 내시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에베소서 54절에서 바울사도를 통해 쉽게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그러니까 2절은 하나님 앞에 올 때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 선한 제물 되신 예수님, 입술의 열매.

다음 3절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1.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살아가며 가장 의지하는 게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모르지만 어려움을 당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가장 의지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인맥을 먼저 떠올립니까?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인지 계산합니까?

북왕국 사람들은 먼저 이웃 강대국의 힘, 외교력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고 도와주실 마음과 능력이 있다는 것은 오랜 신앙생활의 경험으로만 알게 됩니다.

그걸 알아가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최선이고 가장 먼저가 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차선이 되는 게 아니라 아직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2. 말을 타지 아니하며

자기 자신의 힘으로 적을 대항하러 가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을 내 힘으로 맞설 수 있을 것 같지만 언제고 더 강한 상대는 존재합니다.

그래서 시편에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언제까지 내 수완을 믿고, 내 성실을 믿고, 내 대인관계의 힘을 믿고, 덮쳐 오는 시련과 환란의 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안 통하는 상황에 우리가 던져질 수 있습니다.

그 때 황급히 썩은 동앗줄을 잡지 말고 견고한 방패와 산성이 되주시는 하나님을 알고 신뢰를 키워가시길 축복드립니다.

3.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그들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헛된 영적 허상을 가진 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미신과 우상종교와 구별하지 못하고 믿는 것도 다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이 우상종교나 미신과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치성을 드려 복을 받는 게 목적이라면 우리는 우상종교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창조주 앞에 지음받은 피조물로 전인격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시는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부지런히 지식의 말씀을 배우며 이 복된 진리를 감격적으로 깨닫는 모두가 되셔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늘 하나님께로 돌아가 올바른 믿음으로 섬기며 살아갈 때, 약속해 주시는 아름다운 복이 후반부에 아주 길고도 반복적으로 확실하게 나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 박힐 것이라.

우리가 백합화 같이 꽃피고 백향목 같이 깊이 뿌리를 내린 복된 인생이 된 것은 하나님이 이슬과 같은 삶의 은혜를 끊임없이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는 중에 이슬같은 주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 포도주 같이 되리라.

이런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돌아가 하나님을 섬기며 살 때 불의를 멀리할 수 있고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는 세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 선한 제물, 입술의 열매.

버려야 할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 내가 주인 된 삶, 우상숭배와 같은 신앙.

이런 말씀을 잘 깨달으셨습니까?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호세아선지자는 그의 긴 예언을 마치고 마치 독백처럼 되뇌입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깨닫지 못하면 오히려 걸려 넘어집니다.

누가 깨닫습니까?

성령께서 진리를 비춰주실 때 깨닫고 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여호와의 도가 얼마나 정직하고 복된 줄을 알고 그 길을 즐거이 따르고 그 길로만 다니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주는나의산성교회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깨닫고 지켜 행함으로 삶이 백합화처럼 꽃피고 백향목처럼 굳게 뿌리내린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