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하

열왕기하4장1절-7절 (기름 한 그릇)

남수연 2018. 4. 27. 16:08

지난 주가 벌써 세월호 참사 4주기였습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영상을 보면 여전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추모제의 모습을 뉴스로 보니 아직 그 부모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더군요.

사랑하는 자식을 마음에서 떠나보내기엔 4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죠.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남은 사람의 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기도 합니다.

특히 가장의 죽음은 남은 가족들을 극심한 생활고로 몰아 넣습니다.

최근 있었던 증평 모녀 사건도 그렇습니다.

먼저 떠난 남편으로 인한 외로움과 남편이 남긴 빚을 떠안고 힘겹게 살다 딸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안타까운 사건이죠.

오늘 본문의 여인이 만난 상황이 딱 이런 것입니다.

가장인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빚으로 살던 남은 아내와 두 아들은 더 이상 생활을 꾸려갈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채권자는 빚을 갚지 못하는 대신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우리 어릴 때도 빚 대신 남의 집살이 하러 들어간 딸들이 많았습니다.

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자식들을 종으로 보내느니 증평 애기엄마의 유서에 적힌 대로 아이는 내가 데려간다죽음을 선택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빚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사채업자들의 악랄한 빚 독촉에 시달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죽어라 돈을 벌어 갚아도 빚은 늘어나고 자식들을 먹여 키울 방법이 없다면 이런 극단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성도들의 위기가 세상사람들의 위기와 다른 것은 우리에겐 기도가 있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선물입니다.

오늘 말씀은 기도에 대한 많은 원리를 여인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물론 본문처럼 기도할 때 눈앞에서 이런 기적이 보이는 것은 아니죠.

이것은 눈에 보이게 응답 된 기적을 통해서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할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깨닫고 모두가 기도생활로 큰 복을 받으시라는 뜻인 줄 믿습니다.

 

1. 먼저 세상에서 당하는 성도의 고난과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말씀은 위기가 닥친 성도의 가정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전해줍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허덕일 때 하나님은 무슨 역할을 해주시냐는 것이죠.

이 참극을 당한 가정은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이었습니다.

엘리사 앞에 나온 아내가 이렇게 호소하잖아요?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종이 되려했던 가정까지 왜 이런 고난을 주시냐며 따지실 분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하나님을 반역한 죄인들의 세상이잖아요?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그 풍성한 생명에서 끊어진 결과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선의에 등을 돌린 순간 생로병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의학적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심장근육세포는 노화를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하나님을 밀어낸 자리엔 슬픔과 죽음과 고통이 들어 앉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헨리라는 시인은 철없이 이런 싯귀를 읊조립니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이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되고 내 영혼의 선장이 되었기에 세상의 모든 악과 고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세상이 살만하지 않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십시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테러, 인신매매, 약한 자에게 가해지는 권력의 갑질, 조직폭력배의 횡포, 가정을 무너뜨리는 불치병.

육체에 있는 동안 이런 비극은 누구에게든 언제든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신자도 불신자도 재난을 당하고 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세월호에서 꽃다운 목숨을 잃은 아이들 중엔 안산에 있는 교회 목사님 딸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많은 어려운 고비들을 넘어왔고 앞으로도 어떤 시련을 또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그 누구도 내일 일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겸손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의인과 악인을 똑같이 대우하지 않으십니다.

성도들의 인생엔 하나님의 긍휼과 자애로우심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우리에게 소중하고 진지하듯 하나님도 우리 삶을 귀중히 보십니다.

오늘 이 신실한 제자가 당한 죽음과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에 하나님은 무심하지 않으셨습니다.

밝은 햇살아래 건강과 행복을 누리는 평범한 날이든 먹구름이 덮은 날이든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알고 계시고 한 순간도 우리를 놓치 않고 울타리 안에 보호하고 계십니다.

 

2. 이런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은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도달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갈 길이 막막한 이 가정에 긍휼을 베풀기 시작하십니다.

긍휼의 시작은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선지자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깊은 수렁에서 하나님을 기억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 여인은 그동안 남편을 의지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남편이 죽자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빚더미와 절망뿐이었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원치 않는 고난에 둘러싸일 때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만 점점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습니다.

살 길은 하나님께 나와 사정을 털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기도제목이 없을 때는 배우기가 힘듭니다.

간절한 문제가 있기에 하나님께 우물쭈물이라도 기도하는 것이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체험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나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논하고 도움을 받는 성도의 기도생활이 몸에 배게 됩니다.

큰 문제가 아니라도 우리의 생활 하나하나를 기도로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 더 유익함을 빨리 깨닫게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언제든지 기쁘게 응대하신다는 것은 기도할 때 큰 용기를 줍니다.

여인이 최후의 방책으로 엘리사선지자를 찾아가 호소할 때 엘리사가 어떻게 맞이합니까?

나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선지자 직무에도 바쁘니 가정사를 일일이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렇게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제자학교도 재정이 부족해서 방을 늘리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돈이 있어서 그 빚을 다 갚아 주겠는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여인의 원망과 절박함이 섞인 호소에 선뜻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원망이 저절로 나오잖아요?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면 되겠느냐, 어떻게 해 줄까 이런 말입니다.

이것은 엘리사선지자 자신의 입장에서 답하는 게 아닙니다.

엘리사 자신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모든 것을 다 해 줄듯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엘리사의 사역을 보면 종종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혹은 아직 이 일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선지자의 삶이란 전적으로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그 말씀을 받아 대언하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만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인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에 보인 즉각적인 관심은 엘리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이신 것이죠.

하나님은 그 앞에 나와 눈물을 떨구고, 한숨을 쉬고, 답답함을 말씀드리는 우리 기도에 즉시 귀를 기울이십니다.

엘리사가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는 말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간구하는 병인들에게 하셨던 모습을 떠올립니다.

맹인이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칠 때, 예수님은 가던 걸음을 멈추시고 말씀하셨죠.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성령의 감동을 받은 엘리사 안에서 우리는 동일하신 마음의 예수님을 느낍니다.

우리가 기도하러 예수님과 하나님 앞으로 나갈 때 주님은 그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3. 우리가 이렇게 필요한 것을 구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섬세하게 우리 기도에 함께 하십니다.

그 과정을 오늘 본문에서 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막 부르짖으며 지쳐가도록 하나님은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시다 때가 되면 응답을 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무엇을 기도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응답까지의 과정을 지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신다고 그러셨잖아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다고 하셨잖아요?

우리가 혼자 고독하게 기도의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미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실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합니다.

이미 여인의 집에 한 그릇의 기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자의 머리 속에도 기름 한 그릇이 생각났습니다.

이것이 참 기도의 신비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하실 계획에 맞는 일을 떠오르게 하십니다.

그러나 처음에 그것은 확신할 만큼 분명하지 않습니다.

내 집에 겨우 한번 쓸 기름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 한번 쓸 기름은 소망이 아니라 절망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겨우 기름 한 종지 밖에 없는 집구석인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현재 내가 가진 작은 능력, 시시한 직업, 마이너스통장, 금이 간 관계, 계속되는 건강문제, 이런 것에서부터 하나님은 그 능력을 발휘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름 한 종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보십시오.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합니다.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려라. 조금 빌리지 말고 아주 많이 빌려와라.

그리고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어떤 일이든 기도를 시작하고 꾸준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다음 과정,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반드시 인도해 주십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성도들은 예측 못할 세상에서 불안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주님 안에서 안정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인도하실 때 우리 편에서 할 일은 매 순간 순종하며 진행해 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인생의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겠다는 뜻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셔야 한다는 것은 생떼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하고 있는 데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면 지금 상황에 그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엘리사의 말대로 여인은 즉시 돌아가 집집마다 그릇을 빌리러 다닙니다.

엘리사는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일까요?

우선 엘리사의 마술 같은 지시를 믿어야만 이 말에 순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5장에 보면 아람장군 나아만이 나병을 고치러 엘리사를 찾아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사는 이번처럼 황당한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갔다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때 나아만장군이 나하고 장난하냐며 분노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여인도 엘리사의 처방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온 동네를 다 다니며 그릇을 거둬 들인 것입니다.

분명히 어디 쓰려냐고 물었겠죠.

엘리사선지자의 말씀에 이 그릇들을 집에 있는 기름 한 종지로 다 채워질 거라고 했다고 대답할 때 이웃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여인이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응답을 받으셨다면 옆집 다니며 이 여인처럼 말하며 그릇을 빌리러 다닐 수 있겠습니까?

여인에겐 분명히 믿음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수근거림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하고 계십니까?

응답이 더디고, 주변에선 이해하지 못한다해도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반드시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축복드립니다.

 

4. 또 하나님의 응답은 주변 사람들과 현실에 어우러져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든 관계를 잘 유지하고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평판이 나쁜데 누가 취직자리를 알아 봐 주겠습니까?

신용이 없는데 돈을 빌려 줄 리가 없잖아요?

하나님이 아무리 그 사람을 감동하신다 한들 될 수가 없는 것이죠.

여인은 다행히 많은 그릇을 빌려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결국 나중에 기름을 내다 파는 이 가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로 이뤄졌다는 것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이 기적을 통해 안 믿던 동네 사람들이 하나님을 다시 보았을 것입니다.

여인은 빈 그릇을 돌려주며 떡이라도 해서 온 동네에 돌렸겠죠.

결국 기도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누군가에게 하나님을 증명하고 누군가의 구원으로 이어지는 것이 기도응답의 최고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릇을 빌려 온 가족들은 엘리사선지자의 말대로 작은 그릇에 담긴 기름을 큰 그릇에 붓기 시작합니다.

그릇을 빌려다 놓았더니 한 순간 저절로 채워진 것이 아닙니다.

기름을 계속 부을 때 계속 흘러나와 항아리를 채운 것입니다.

본문에 기름 한 그릇이라는 말은 본래 의미로 한번 쓸 작은 양을 말합니다.

종지에 남은 아주 조금의 기름이 한없이 항아리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아마 빌려온 항아리를 다 채우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겠죠.

하나님의 응답은 이렇게 우리 손과 머리와 행동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기도하고 가만히 있으면 절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저도 기도하다 보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될지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그러면 기도 마치자마자 즉시 전화를 하든지, 무엇을 찾아보든지, 생각난 대로 일을 해나가야만 응답하신 결과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기 싫은 때도 있거든요.

이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열심히 외우고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일이 작은 씨를 심고 가꾸고 거두는 과정을 지나며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이 여인의 위급한 형편을 가장 빨리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간단한 것은 하나님이 채권자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빚을 다 탕감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인과관계가 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갑자기 조작하지 않으십니다.

채권자가 무슨 그럴 마음이 있겠어요?

그렇기에 예를 들어 우리가 관계가 안 좋은 사람의 문제로 기도할 때 갑자기 마음이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피차 잘못을 깨닫고 상대가 이해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가며 서서히 마음이 바뀌는 것이죠.

귀인이 나타나 모든 걸 한 번에 해결해 주고, 나빠진 관계가 한 순간 바뀌고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정말 끈적거리고 오래갑니다.

우리의 근심거리는 끈질기게 우리 발목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만이 기쁨으로 거둘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그릇에 기름을 다 채운 뒤 여인이 엘리사를 찾아 갑니다.

거기까지만 지시했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기도한다고 미래의 청사진을 한번에 다 보여주시지 않으십니다.

8년 전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다 제게 보여주셨다면 저는 절대로 개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믿음은 그랬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인 것을 알지만요.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이젠 기름을 팔러 다녀야 합니다.

그 돈으로 빚을 갚는 것입니다.

남은 기름도 한번에 다 팔아서 생활비로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평생 먹고 살 돈을 한 번에 주시겠습니까?

모두의 로망인 건물주가 되어 임대료나 받으며 놀고먹게 만들어 주시는 게 아닙니다.

이제 남은 기름으로는 성실하게 기름가게를 하라는 것입니다.

세 가족은 평생 기름가게를 운영하며 열심히 돈을 벌어먹고 살아갔을 것입니다.

이 가족이 항아리를 더 많이 빌려 왔으면 더 큰 부자가 되지 않았을까, 믿음이 적어서 여기까지였다고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 기적의 범위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방문을 닫았어야 했기에 무한정 그릇을 빌려다 들여 놓을 수는 없었던 것이죠.

옛날 방이래야 얼마나 컸습니까?

하나님이 빚 갚고, 노력해서 먹고 살만큼 이미 계산하셨습니다.

돈이 많으면 부자놀음하고 허영심에 빠지고 결국 세속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은 가진 게 많아도 자기 수준보다 약간 소박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집요한 세속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책이기도 합니다.

물질로 인한 인간의 탐욕과 허영, 타락이 최근 대한항공 일가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지지 않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풍성히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자애로우심을 보여주십니다.

그 모든 것은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내려옵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와 일상의 삶을 예수님 앞으로 나가 말씀드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리고 현재 내게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으면 하다 못해 밝게 웃으며 인사라도 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든 겸손하고 진정성이 있게 대하면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여부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학생들은 오늘 공부할 양을 성실하게 소화해야 합니다.

일터에서 책잡힐 것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고난 중에 있으십니까?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 힘으로만 버티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문제를 말씀드릴 때 내가 무엇을 해 주면 되겠느냐우리 간구에 주님이 바짝 귀를 기울이실 것입니다.

비록 작은 종지에 한방울 기름만 남았다 해도 어느새 삶에 기름짐이 점점 넘치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평안 중에 있으십니까?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이 축복이 계속되길 기도하며 살아간다면 평안하고 형통한 중에 그런 삶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2018년4월22일 주는나의산성교회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