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신명기30장9절-16절 (어렵지 않은 명령)

남수연 2018. 9. 28. 18:04

추석명절을 앞두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온 성도님들께 큰 은혜로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목회자가 되고 나니 성도님들이 축복받는 게 제가 축복 받는 것 이상 기쁘고 늘 간절합니다.

어느 순간 마음이 좀 무겁다는 걸 느끼고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성도님 가정의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걱정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때때로 겪는 시련이 우리 믿음을 강하게 단련하고 더 성숙한 믿음이 되게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은 살아가는 기쁨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을 갖게 합니다.

늘 고난만 있고 은혜와 축복이 메마른 성도들이 하나님을 좋아하고 공경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 속에 살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요즘은 사는 데 큰 부족함이 없고 내 능력으로 성실히 일해서 살면 되지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의 복은 별로 필요 없다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태의 삶이 앞으로도 보장되어 있을까요?

나만 잘한다고 되는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요?

악한 자들로부터, 재난과 큰 실수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살아가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넘치는 삶의 축복들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런 복을 받으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 삶이 항상 복될 수 있는 교훈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본문 성경이 신명기입니다.
신명기는 거듭 강조하는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은 민수기에서 광야생활을 마친 뒤 여호수아서에서 가나안 땅으로 입국하게 됩니다.

신명기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모세가 지난 광야 40년간을 되짚고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율법을 재차 교육하는 내용입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 나라를 세우고 지켜야 할 헌법인 셈이죠.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땅에서 죽게 됩니다.

그렇기에 40년을 이끌어 온 민족에 대한 비장함과 우려가 신명기 곳곳에 드러나 있습니다.

제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 명령을 잘 지켜 하나님백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고 복을 받으며 살라는 것이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도 똑같습니다.

하나님 자녀들의 남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약속하신 복을 누리며 살라는 것이죠.

그럼 복된 믿음의 삶을 누리게 되는 구체적인 약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9-10절까지 말씀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사람들이 얻기를 구하는 모든 축복을 약속하시죠?

 

1. 먼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명령과 규례들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네 생각대로 살지 말고, 성경대로 살라는 것이죠.

이 말씀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 명령을 전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걸 계속 강조합니다.

왜 그랬겠어요?

말씀에 순종하려면 우선 하나님이 내게 어떤 분이신지 그 신뢰의 관계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끌어 내 주신 구원자시고, 광야 40년간 먹이시고 입히신 실제적 공급자이고 보호자이셨습니다.

그 경험을 상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이 명령과 법을 요구하시는 이유도 당연히 너희 행복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기에 순종하려 하십니까?

만해 한용운씨가 복종이라는 시를 썼잖아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 데 복종하는 것은 /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한용운은 그 한 사람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다고 합니다.

한용운은 승려이기 때문에 그가 복종하고 싶은 대상은 석가모니 부처겠죠.

석가에게서 단지 인생의 도를 배웠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는 절대적인 복종을 해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종할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온 세상의 유일한 신이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셨고, 유일하신 독생자께서는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신해 죽으셔서 영생의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해 주신 것이 차원이 다른 사랑이잖아요?

나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를 볼 때 철없는 자식들도 순종합니다.

우리 어릴 때는 다 가난하고 힘들었잖아요?

우리 어머니가 집 나가지 않고 자식 다섯을 끌이고 사신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이 어머니께 항상 순종하고 말을 잘 들었습니다.

아이들 눈에 부모가 나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버리고 고생한다고 생각하면 순종을 안 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을 알기에 우리는 기꺼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할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이 믿음이 준비될 때 말씀대로 살아 볼 생각도 드는 것이죠.

이 믿음이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오늘 약속하신 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무리 신약시대라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데 삶의 복이 자동으로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런 말씀들이 다 순종과 성실한 신앙중심의 삶을 우선으로 할 때 복을 주신다는 것으로 신명기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는데 복을 주셨다면 성경이 모순되는 거잖아요?

그러나 하나님 자녀가 하나님의 법대로 살지 못한다면 단지 복의 문제를 떠나 영육간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모세 역시 순종이면 축복, 불순종이면 화를 계속 경고하잖아요?

이렇게 살아도 별 문제없네라고 계속 살아가면 어느 순간 뭔가 크게 잘못 된 것을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시동이 완전히 꺼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잘 달려가려면 연료를 계속 주입해 주어야 하는 것이죠.

매일 성경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노력들이 신앙의 연료입니다.

자동차의 기름이 완전히 바닥나 서 버린 경험이 있으십니까?
저는 거의 차가 설 뻔 했는데 정말 식은땀이 나더군요.

빨간 경고등이 계속되다 빨간 점선이 나오며 차가 점점 속력이 떨어지는거예요.

앞에 주유소를 발견하고 급히 들어가려는데 차가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 천신만고 끝에 겨우 굴러가서 주유기 앞에 세우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계속 연료를 공급하지 않으면 간신히 굴러가다 어느 순간 서 버립니다.

신앙이 정지 되어서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분 많잖아요?

신앙생활의 연료가 떨어져 겨우 굴러갈 때 어떤 현상이 오는지 아십니까?

도로에서 주행할 때랑 똑같습니다.

주위에서 차들이 빵빵 거립니다.

심지어 빨리 안 간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마귀가 그렇게 달려들어 모욕을 줍니다.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주위 환경이 점점 험악해 지는 것이죠.

또 내 차가 빨리 못 달리니 우선 나 자신이 얼마나 답답합니까?
왠지 내 길이 시원하게 뚫리지 않고 모든 게 얽혀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오늘 약속하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자식들과 생업에 복을 받기는커녕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도 점점 힘들어 지는 것이죠.

신앙이 완전히 서 버리면 그런 감각도 나중엔 멈춰 버립니다.

오늘 다시한번 말씀대로 지킴으로 우리의 믿음이 축복 안에서 계속 잘 달려가도록 마음을 다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11절부터 14절까지는 하나님께 돌이켜 지켜야 할 이 명령들이 결코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생각해 봅시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게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우리는 늘 어렵다고 생각하는 데 본문에선 왜 어렵지 않다는 것일까요?

모세가 여기까지 어떤 명령들을 가르쳤는지를 보면 정말 쉬운지 어려운지 판단할 수 있겠죠.

그중 25장의 법령만 몇 가지 보겠습니다.

21절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어려워요, 쉬워요?

4절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

어려워요, 쉬워요?

19절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이런 생활의 법령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지키기 어렵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어린아이가 읽어도 어떻게 하라시는지 확실히 알 수 있고 조금만 신경 쓰면 지킬 수 있는 법령들입니다.

이것은 누가 와서 해석해 주고 설명해 줄 필요도 없이 지금 들려주는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12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그러니 네 마음에 있는 이 말씀들은 네가 충분히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이 말씀이 정말 맞는 것 같습니까?

과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하나님의 명령들이 입에 있고 마음에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렵지 않은 이 명령들을 잘 지켰습니까, 못 지켰습니까?

오늘 말씀을 읽으며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켜야 한다라고만 결론을 내리면 유대교입니다.

유대교인들은 이 모세오경을 붙들고 지금도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을 완전하게 성취한 신약성경을 가진 기독교신자들입니다.

신약성경의 빛으로 구약의 말씀들을 보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유대교와 다를 게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럼 신약성경으로 본문 말씀을 더 완전하게 이해해 보겠습니다.

본문 말씀 앞 장에서 계속 율법을 설명하던 모세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냅니다.

29, 30장이 사실 신명기 말씀의 핵심입니다.

29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상하죠?

율법은 주셨는데 그걸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은 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모세 시대엔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내려오시지 않았기에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양심적으로 납득할 만한 수준의 도덕적인 법들을 세세하게 정해서 지키라고 하신 것이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 정도로 명하시는 것이죠.

신약시대엔 원수를 사랑하라가 되잖아요?

그런데 앞에서는 깨닫는 마음을 주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본문에서는 왜 말씀이 너희 마음에 있고 결코 어렵지 않다고 할까요?

모세는 지금 더 먼 미래의 깨닫는 마음을 받을 신약의 성도들로 타겟을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앞부터 죽 보면 율법들을 알려주고, 이 명령을 순종할 때의 복과 불순종할 때의 화를 반복적으로 계속 경고합니다.

그리고 분위기가 살짝 바뀌어서 2922절 부터는 이 민족들이 복을 선택하지 않고 화를 선택함으로 가나안 땅에서 망하고 여기저기 쫒겨 갈 것을 가정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그렇게 되잖아요?

가정이 아니라 예언인 것이죠.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장 1절을 보면 네가 네 하나님여호와로부터 쫒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전 같이 다시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때는 지금과 다를 것이라고 합니다.

6절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이 일이 실제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일어났습니까?

물론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불순종으로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포로로 잡혀갔지만 이 약속대로 하나님이 다시 본토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때 그들이 정말 이 말씀대로 마음에 할례를 하고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습니까?

아닙니다.

포로귀환 이후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말라기 이런 성경들은 돌아온 이스라엘이 하나도 안 바뀐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주신 명령은 어렵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바뀌지 않은 인간의 욕심과 죄성이 절대로 그걸 원하고 따르질 않는다는 것이죠.

인간의 힘으로 그걸 원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는 걸 이스라엘민족사를 통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모세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모세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한 성도들의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들이 스스로 회개하고 돌아온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할례를 베푸신다고 합니다.

또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모세의 이 말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속죄를 이루시고 성령이 오셔서 새 마음을 주시는 신약시대에 성취 될 예언을 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오늘 본문 말씀이 모세가 전한 복음이라는 것을 기가 막히게 해석해 주잖아요?

로마서106절에서 바울사도는 오늘 모세의 말을 인용합니다.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그 말은 )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모세가 말씀이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을 것이라는 그 말이 바로 지금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이죠.

모세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후일에 나 같은 선지자를 하나 보내주실 것인데 그때는 너희가 내 말을 안 들은 것처럼 하지 말고 그 선지자의 말을 들으라고 했었잖아요?

이렇게 구원받은 성도들,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유대민족처럼 실패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런 복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지난 주에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잘 살았다면 이스라엘사람들처럼 그게 자랑과 의가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압니다.

잘 못 지켰다면 지키지도 못하고 댑서 하나님께 대든 이스라엘사람 같이 뾰루퉁해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죄송한 마음을 갖고 다시 은혜를 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성경의 교훈이 어려운 명령입니까, 쉬운 명령입니까?

성령이 도우시고 우리 마음이 새 마음이 되었으니 지킬만한 명령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을 만드시고 그렇게 싫다고 멀찍이 도망친 사람들을 용서하시고 자녀를 삼아 주시는 것일까요?
추석명절을 맞으니 부모 밑에 아롱이 다롱이 자식들이 모여 들어 시끌벅쩍한 광경이 사람사는 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설령 연을 끊은 자식일지라도 명절이 되면 혹시 찾아올까봐 부모는 속으로 기다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신 것이죠.

별 신통치 않은 믿음으로 대단한 일을 못하며 살고 있는 우리 같은 자녀들도 주일에 올망졸망 모여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이 모습이 하나님 마음엔 말할 수 없이 좋으신 것입니다.

우리 영의 아버지시니까요.

제가 요즘 서원이를 결혼시켜 유학 보내야 될 일을 생각하다 보니 그게 싫었나봅니다.

며칠 전엔 누가 서원이를 보쌈 해 가는 걸 뺏어 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자식들은 때가 되면 우리 품을 떠나고 부모도 이 땅에선 다시 못 만나게 되지만 우리는 다시 다 하나님 앞에 모일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이 명절 같고 잔치 같은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성령님을 의지해 말씀을 순종하며 힘을 내서 믿음의 길을 달려 가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럴 때 오늘 약속하신 삶의 모든 복도 아낌없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2018년9월23일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