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송년주일예배 설교 (모세의 노래 : 신명기32장14절)

남수연 2021. 12. 28. 14:57

평범한 일상 중에서 좀 의미가 있는 날들이 있죠.

저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것은 잘 잊어버리는 편입니다.

올해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축하 메시지를 받고나서야 결혼기념일인 줄 알았습니다.

기념일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 2021년의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은 의미 있는 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앞을 알 수 없이 하루하루 살아 온 코로나상황 속에서 보낸 일년이기에 더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나온 일년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오늘 예배에 하나님께서 내년을 힘있게 살아갈 귀한 말씀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본문 말씀은 ‘모세의 노래’라고 부릅니다.

시대적인 배경은 출애굽 1세대가 광야생활 40년 중에 모두 죽고 자녀들 세대가 약속의 땅 진입을 앞두고 있는 때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모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광야여정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따르지 못했던 므리바의 물 사건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의 상징성도 고려하신 것입니다.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가 백성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상징하는 여호수아가 데리고 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실 가나안정복 전쟁의 실제 영솔자는 하나님의 사자로 표현 된 성자하나님이셨죠.

모세 스스로도 자신의 나이가 백 이십 세가 되어서 더 이상 가나안정복 전쟁을 이끌 힘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느보산에 올려 보내 멀리 가나안땅을 보게 하시고 그곳에서 모세는 생을 마감합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두 가지 명령을 시행하는데요.

하나는, 율법책을 기록해 레위인들에게 주고, 모든 백성에게 대대로 율법을 가르치라 명령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 32장의 이 노래를 지어서 백성들에게 가르칩니다.

아무래도 외워서 부르는 노래는 기억하기가 좋고 글자보다 더 마음에 닿았을 것입니다.

32장의 노래는 좀 길어서 외우기도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내용은 이스라엘이 걸어왔던 광야의 길을 반추하고, 요단강을 건너 차지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의 축복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결국 하나님을 배신함으로 징벌을 받을 것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더 먼 미래가 담겨있는 예언적인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인 구약성경 한 권을 요약한 것과도 같은 것이죠.

어찌보면 이것이 흔한 우리 믿음의 여정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길을 걸었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과 우리에게 동일한 노래를 주시고 배우게 하시는 것이죠.

이스라엘은 가나안땅을 목전에 두고 기대와 흥분, 설렘과 두려움 가운데서 이 노래를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처럼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바라보는 뜻 깊은 날에 이 노래를 배우는 것이 유익하리라 믿습니다.

 

1. 과거에 행하셨던 하나님과 관련 된 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7절,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글자로 기록되었지만 분명히 당시에는 어떤 곡조나 가락이나 리듬이 있었을 것입니다.

살다가 어느날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런 생각이 쓸쓸히, 서글피 들 때 그들의 머리에 어릴 때부터 외웠던 이 노래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민족의 역사를 생각하라 부모와 함께 걸어 온 그 광야 길을 생각하라

왜 어떤 노래를 들었는데 하루 종일 머리에서 뱅뱅 도는 날이 있잖아요?

이들의 입술에서 또 이런 답이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15절,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하나님을 발로 차고 업신여겼다는 말씀이 찔림과 회한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억하고 생각하고 묻고 들어야 합니다.

내 과거에 도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성경에 담아놓으신 더 광대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옛날 일이 현재 내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도와주셨지만 이 문제도 도와주실 것을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모세의 노래는 우리 귀에 들려주죠.

현재 문제의 해결은 옛날을 돌이켜 생각하는 데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답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와 사건들이 생길 때 해답은 간단합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함께 그것을 해결하고 돌파하면 됩니다.

생각하고 기도로 묻고 배우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한 걸음씩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래 된 성경책이 여전히 현대에도 유일한 진리입니다.

세상은 빨리 변하고 매일 달라지는 것 같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외형의 옷이 바뀌는 데 관심이 없고 창조, 죄, 구원, 심판이라는 본질에 관심을 둡니다.

마차를 타던 비행기를 타던 거기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세대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존재를 상대합니다.

다윗의 시편을 읽어보면 그때 악인이나 오늘날의 악인이나 지금 함께 이웃에 사는 사람들처럼 똑같잖아요?

그렇기에 수천 년에 걸쳐 인생을 파악해 놓은 성경을 통해 사람과 역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내일의 시간들이라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과거의 연대에 그러셨듯이 올해, 그리고 내년에도 똑같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사람을 인도하시는 원칙은 성경 안에 잘 가르쳐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꿋꿋이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책을 복사해서 레위인들에게 주신 것은 끊임없이 명령을 생각하고 지키라는 것이잖아요?옛날에 행하셨던 일들을 기억하라는 것은 그 하나님이 지금도 똑같이 역사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노래로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는 미래로 예언되었던 32장의 내용들이 어떻게 실제 역사가 되었는지 성경에서 배워서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씀에 순종했었더라면 바벨론에 망하고 저렇게 모든 걸 잃지는 않았을텐 데’

우린 이 예언의 노래의 전체를 볼 수 있는 혜택을 받은 세대입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남이 당한 일을 나도 당합니다.

이것이 남의 얘기가 아니니 나도 주님의 교훈을 살피고 순종해야겠다는 걸 결심하게 되는 것이죠.

지난 일 년 우리교회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배우기 위해 많이 노력해왔음을 가장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와 만남입니다.

오늘 예배드리고 돌아갈 때 하나님을 잘 만나 뵈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 마음을 알았다는 잔잔한 감동을 품고 가야 합니다.

그것은 옛날에 성경 속에서 말씀하고 행하셨던 하나님을 현재 성령께서 우리에게 경험하게 하심으로 가능합니다.

내년에도 우리 교회에 이런 성령님의 역사가 계속되고 계속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경외하는 복된 신앙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지하는 것과 아닌 것은 신앙에 큰 격차를 만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모세도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를 세상 속에서 선택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하잖아요?

8절,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하나님께서 모든 열방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분정하셨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온 세상의 중심이 하나님의 택하신 나라 이스라엘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시고 복음이 온 세계에 어떻게 전파될 것을 모두 고려하셔서 구원의 지도를 완성하셨다는 뜻이죠.

하나님은 택하신 성도를 중심으로 그 삶의 반경을 정교하게 설계하십니다.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을 배치하고, 어떤 일을 통해 그 영역을 다스리고, 하나님나라와 어떻게 유효하게 연결될지를 정하십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주변국들은 우방관계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과는 항상 긴장구도를 이루고 그런 가운데서 전쟁이 일어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지금의 우리의 인생지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관계든 나쁜 관계든,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불리하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가능성 중에 있습니다.

때로 직장에서 껄끄러운 관계도 만나고, 사업이 순탄치 않을 때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분정하신 사건과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해서 나의 지역을 관리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중심으로 지금의 모든 판을 짜셨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이 노래로 사실을 증명해 주시는 것이잖아요?

우리는 세상 가운데 오롯이 택하시고 소유하신 하나님의 분깃입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그렇기에 올해 우리와 가정을 위축시켰던 상황들도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깨우치기 위해 계획하신 일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끌려 다니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스스로 앞장 서는 삶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정도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라고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물론 내가 세상에서 최고다하고는 좀 다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중심으로 내 주변에 모든 것을 움직여 주신다는 믿음으로 새해는 더욱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3. 광야 40년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생각하라고 합니다.

10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2년째 지속되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다들 답답한 마음으로 사셨을 것입니다.

뭔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미진한 문제를 안고 살 듯 코로나시대가 그런 것 같습니다.

특히 더 이 시기가 이스라엘이 지나온 황무지 같고 광야 같은 길이었을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 인생 길에는 때로 황무지가 있고 광야도 건너게 됩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평탄한 길을 갈 때도 이유 없는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의 인도자이심을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누구보다 광야에서 우리를 잘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는 관심을 표현하는 말씀 중에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신다’는 말이 참 좋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가 가는 길에 아무런 난관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광야 40년간 이스라엘을 해와 달과 맹수와 대적으로부터 눈동자 같이 지켜 상하지 않게 하셨지만 이들을 용사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이들이 들어갈 땅은 비어있는 땅이 아니라 싸워서 뺏어야 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들을 광야에서 양육하고 강하게 훈련하셨습니다.

11절,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절,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이 말씀은 독수리가 새끼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비유해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모습을 설명합니다.

우리의 힘든 광야 길은 다 이것을 위해서입니다.

이미 성경에 광야의 힘든 여정의 이유를 밝혀 놓으셨습니다.

신명기 8장 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 날아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알고 혹독한 환경을 만들어 새끼들에게 비행을 가르칩니다.

어린 독수리들은 언제까지나 안락한 둥지에 앉아 어미가 물어다 주는 고기를 먹고 편안히 졸고 있으려고 합니다.

어미가 나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끝까지 날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전에 형제들이 모두 떠난 빈 둥지에서 날지 못해서 혼자 둥지에 덩그러니 남은 새 한 마리가 나오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더 이상 형제들도 오지 않고 어미 새도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더군요.

결국은 빈 둥지에서 죽음을 맞았을 것입니다.

비행할 수 있는 조류가 닭장에서 자랐더니 닭처럼 두 발로 뛰기만 하더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나는 것을 가르칠 때 어미는 먼저 새끼들의 안락했던 보금자리를 털어냅니다.

부드러운 깃털은 날라 가고 거친 나뭇가지가 찌르는 불편한 둥지가 되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새끼들을 벼랑 아래도 떨어뜨립니다.

날개짓이 서툰 새끼는 아래로 곤두박질하겠지만 어미는 신속하게 날아가 큰 날개로 새끼를 받아냅니다.

미국의 한 신학자가 산에서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키는 모습을 우연히 관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50미터나 되는 암벽에서 새끼를 떨어뜨리고 쏜살 같이 수직 하강해서 넓은 날개로 새끼 독수리를 받아내 다시 유유히 둥지로 올라가더랍니다.

그런데 무려 한 시간이나 그것을 되풀이 하는 것을 보다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얼마큼이나 더 했을지는 모르죠.

올해 몇 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보셨나요?

가슴이 쿵하고 떨어져 한없이 내려가는 것 같다가 하나님이 그 날개로 받쳐 주시면 그제사 숨이 쉬어지죠.

그러다 다시 또 추락하는 고통을 느끼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었지만 다행히 우리 모두 추락해서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연단하고 훈련하셔서 믿음의 근육을 키우셨습니다.

다들 얼굴에 강인함이 묻어 있으십니다.

편안했던 일터, 가정, 교회, 사람관계 등이 가시방석처럼 나를 불편하게 했던 시간들이 올해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안락한 상태에 만족해서 졸고 있는 것을 깨우십니다.

우리는 조금만 몸과 정신이 편해지면 영적 비상을 멈추려고 합니다.

보금자리를 하나님이 흩으신다면 날개짓을 배우라시는 것입니다.

떨어질 때 내게 믿음의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만 떨어질 때 처연하게 추락하지 말고 아등바등 발버둥을 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버티며 하나님의 날개가 받쳐주시길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를 반드시 그 날개로 안전하게 받아주십니다.

이런 훈련이 반복되며 우리의 믿음의 날개에도 근육이 생기고 날개가 커지고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오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올 한해 이런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셨습니다.

12절에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하나님 한분만이 나의 마음의 모든 슬픔을 아시고 감당 못할 짐을 지고 눈물짓는 밤을 지켜보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배워야 할 게 있다고 우리를 다독이셨습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고 질식할 것 같을 때 주님의 평안의 날개를 부드럽게 휘저어 호흡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광야의 시련이 더 높이 날 수 있는 강한 날개를 주시기 위함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축복의 땅을 차지 할 용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은 결국 약속의 땅에서 그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13절, 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절,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목적은 광야생활이 아닙니다.

그들을 이끌어 가나안땅의 윤택하고 행복한 삶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땅에 들어간 세대는 본문 말씀에 나오는 모든 것들을 즐기고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성경에 나온 대로죠.

바라기는 우리의 새해가 그런 은혜의 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와 같이 땅의 높은 곳을 다니게 될 때도 있고, 풍부한 밭의 소산을 먹을 수도 있지만 때때로 그렇지 않은 때도 만납니다.

13절에 노래했듯이,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도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설령 척박한 순간이 온다 해도, 식물을 얻을 수 없는 단단한 반석에서 조차도 먹이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내년을 어림잡아 볼 때, 여전히 계산이 안 나오는 재정과 감당할 힘이 안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석에서도 꿀을 얻게 하시고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광야에서 40년을 기르신 하나님이 반석이라고 식물을 내지 못하시겠습니까?

가나안땅을 분배 받은 12지파의 땅들이 다 기름진 옥토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등졌을 때 가장 먼저 망한 곳은 가장 기름졌던 요단 동편의 길르앗 땅이었습니다.

내년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 환경이 돌밭이든 옥토이든 그것에 너무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돌밭에서 갑자기 백배의 결실을 얻게 하지는 않으시겠지만 우리를 위해 은밀히 준비하신 것들을 반드시 하나하나 베풀며 내년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10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몸소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광야에서 고생시킬 것 같으면 왜 데리고 나오셨냐, 차라리 애굽이 낫다’고 40년 내내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들이 자기 수한을 다 살게 하시고 광야에서 모든 사람들을 거두어 주셨습니다.

무려 2백만명 이상의 민족을 하나님 혼자서 먹이고 입히고 기르셨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지나 온 날들을 돌아보면 이스라엘사람 못지 않게 불순종한 우리들을 자상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이 고맙습니다.

오늘 모세가 지어서 불러준 이 노래대로 그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내년에도 동일하게 우리를 자기 눈동자와 같이 지키고 인도해 주심을 믿고 담대하게 새해를 맞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