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iGfuTttb_S8&feature=youtu.be
<2019년12월24일 설교 영상>
오늘 성탄을 감사하며 드리는 우리 예배가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선물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의 동방 박사들이 빛나는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 온 내용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밤 이 말씀 안에서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들의 경배가 예수님을 향한 우리 예배의 의미를 바로 찾게 도와줄 것입니다.
먼저 1절에 보면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때와 장소를 정확하게 알려 줍니다.
헤롯 왕 때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연대기적으로 예수님께서 서기 몇 년에 태어나셨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죠.
헤롯왕은 고대 역사책에 기록된 인물입니다.
제가 1960년에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듯이 예수님께서는 헤롯왕 말년인 BC4년에서 AD1년 정도 사이, 지금으로부터 2019년 전에 태어나셨습니다.
태어나신 곳은 이스라엘 유대지방의 베들레헴이란 동네입니다.
오늘 전 세계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사람들 중 예수님이 실제 지구 역사 속에서 생존하신 분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어릴 적 성탄카드 속에서 본 구유에 누운 아기예수님과 마리아의 그림을 동화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거기에 맞춰 동방박사의 세가지 예물 이야기는 한층 더 동화 같은 성탄절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문제는 성도들도 성경의 사건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사건을 기획하고 기술한 하나님의 의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일화는 구약성경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철저히 기획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동방박사들이 홀연히 나타난 별을 보고 계속 그 인도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속 진실은 그게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이 도착하기 수 개월 전 천체를 관측하다 이 별을 발견하고 목적지를 이스라엘로 삼고 출발한 것입니다.
그 별은 사라졌다 베들레헴에 이르러 다시 나타났음을 성경이 보여주죠.
동방박사 이야기엔 이런 것을 따져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별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그 별이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것임을 알았을까, 메시야가 유대에서 태어날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것을 이해해야 이 성경을 기록해 전해 주신 뜻을 바로 알게 됩니다.
동방박사들은 아라비안나이트 속의 이야기처럼 신비하게 나타났다 사라진 묘한 인물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이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알고 경배하러 온 성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시간을 조정하고, 의미 있게 성탄을 감사하려고 여러 가지를 힘들여 준비한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온 것이죠.
이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동쪽 지역에서부터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한 때 화려했던 페르시아제국의 후예로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과 ‘박사’라는 호칭을 보면 직업은 점성가였을 것입니다.
고대에 천문학은 천기와 농사일에 아주 중요했기에 지혜자들은 흔히 천체를 연구했습니다.
이들이 어느 날 아주 특별한 별을 발견합니다.
정기적으로 하늘에 나타나는 별이 아닌 걸 금방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즉시 그 별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징조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먼 길을 찾아와 경배했다는 걸 보면 단순히 외국 왕의 탄생으로 본 것이 아니었다는 정보를 알려 줍니다.
박사들은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인류의 구원자인 메시야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페르시아제국의 첫 왕이 성경에 나온 고레스왕입니다.
페르시아엔 바벨론제국 때 포로로 끌려갔던 상당수 유대인들이 유력한 지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 같은 사람들이 페르시아 제국에서 살던 유대인들이죠.
페르시아는 종교적으로 관대했기에 유대민족의 하나님 신앙이 전파되기가 수월했을 것입니다.
박사들은 유대 사람으로 부터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신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믿게 된 성도가 분명합니다.
구약성경을 배우고 장차 이 땅에 오실 메시야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죠.
성경적인 신앙은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신이심을 알고, 예수님이 죄에 얽매인 인간에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다들 그렇게 믿으시죠?
그런데 그 별이 메시야의 탄생을 알린다고 어떻게 확신했을까요?
그것은 모세가 기록한 민수기에서 깨달았을 것입니다.
더 오래전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 40년 세월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입국하려 할 때 주변국들이 호락호락 허가했을 리가 없죠.
당시 모압이란 나라는 발람이란 주술가를 데려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정책을 씁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발람의 이야기는 성경의 기이한 이야기 중 손꼽을 만합니다.
발람의 나귀가 많은 돈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가는 발람을 사람의 말로 꾸짖었다는 믿기 힘든 내용이 기술된 사건입니다.
성경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독특한 사건이 나온다면 그것은 여기를 주목해 보라는 뜻입니다.
이 발람의 이야기에서 뭔가를 보여주시겠다는 것이죠.
그때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람의 입에, 나귀의 입에 사람 말을 주셨던 성령께서 또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모압 왕 앞에서 전혀 의도치 않았던 이상한 예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민수기 24장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랬더니 오히려 이런 말이 줄줄 나오는 것입니다.
야곱이여 네 장막이,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모압 왕 앞에서 이런 말이 나왔으니 본인도 너무 당황했을 것입니다.
별은 어느 때나 위대한 인물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발람의 예언은 아주 먼 훗날, 발람 시대로 부터 치자면 약 천오백년 뒤죠.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고 한 왕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나서 그 모든 대적을 멸한다는 예언입니다.
이 야곱의 별은 메시야의 탄생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당시 다윗은 태어나기 전이기에 이스라엘 국기에 있는 다윗의 별은 성경에 근거한 게 아닙니다.
신앙인 점성가들이 성경을 연구했다면 자기 전공인 만큼 틀림없이 이 성경 속 야곱의 별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아니, 성령께서 이들의 눈에 이 성경구절이 눈에 띄고 마음에 깊이 새겨지게 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어느 구절에서 특히 감동을 받게 될 때가 있잖아요?
지난 주 기독교 TV에서 우연히 청소년들이 성경 지식을 갖고 겨루는 미국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나와서 성경암송과 퀴즈 대결을 하는 프로인데 상당히 수준이 높아 놀랐습니다.
대회참가자들은 한 8백 구절 정도의 성경을 암송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 심사위원이 불러주는 성경 부분을 암송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2장1절에서 5절하면 그걸 틀리지 않고 외워야 점수가 올라갑니다.
십대 청소년들이 앳되고 청아한 목소리로 성경을 거의 다 암송하더군요.
전 우리 청소년들 중 저렇게 하나님말씀을 잘 알고 순수하게 믿는 아이들이 있을지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암송되는 성경을 듣는 중에 점점 머리끝부터 전기가 관통하는 것 같은 전율이 흐르는 거예요.
말씀에서 하나님의 거룩하고 위대하심이 선포되는 데 완전 압도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밥 먹으며 생각없이 보다가 감격에 복받치고 난데없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습니다.
말씀의 위력에 머리와 가슴과 영혼이 완전히 압도당한 너무 신비한 경험이었습니다.
민수기의 야곱의 별에 대한 예언이 박사들의 뇌리에 선명히 새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메시야의 탄생에 야곱의 별이 등장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혜성처럼 나타난 그 별을 보고 정확하게 이스라엘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온 것입니다.
우리도 동방박사들과 같은 믿음으로 오늘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경배하러 나온 줄 믿습니다.
동방 박사들과 똑같이 성경에서 빛을 보았고 나의 구원자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가 대림절 절기 동안 예수님의 구원과 복음에 대해 듣고 준비해 온 것이죠.
다음은 동방박사들을 통해 참된 믿음에는 헌신적인 경배가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페르시아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오는 데의 거리는 약 만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남북길이가 그 정도 됩니다.
그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는 데 즉흥적인 기분이나 호기심에서 움직였겠습니까?
일생에 한번 움직이기 힘든 거리잖아요?
고대 이동수단을 생각하면 아마도 여러 달이 걸렸을 것입니다.
여행의 갖가지 위험, 여행기간 동안의 주변정리, 막대한 여행비용까지 박사들이 감수해야 할 것은 현실적이고 막대한 것입니다.
머릿속에서만 경배한다는 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정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시고,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고 드리는 경배에는 현실적인 헌신과 희생이 있습니다.
오늘 밤도 편하게 집에 앉아 예수님께 감사하다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마음을 다한 성탄감사를 위해 얼마나 수고들을 하셨습니까?
매 주일 예배에도 그런 우리의 헌신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초창기에 평양에 대 부흥이 일어났잖아요?
당시 평양에 장사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에 보니 주일이 되면 이들이 상점 문을 닫고 싹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생업의 손해를 감수하고 예배를 위해 교회로 모인 것이죠.
그 뿐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남에게 훔친 돈을 되갚고, 여자들은 화투를 던져 버렸고 시어머니들은 며느리에 대해 유순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 선교사는 증언합니다.
그런 신자들의 변화는 불신자들이 다 느낄 정도였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주일에 왕이신 예수님께 예배를 드리고 남은 엿새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삶이 따르는 것입니다.
참 된 왕을 만난 뒤는 모든 게 왕을 중심으로 조정이 됩니다.
동방박사들이 야곱의 별을 보자 그 별을 향해 삶이 조정되잖아요?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별을 믿고 수개월 험난한 여행을 준비할 때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이 뭐라고 했겠어요?
우리의 헌신에 사람들은 ‘뭐 그렇게 까지 할 것 있냐’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를 기준으로 ‘모자라다’, ‘과하다’ 하잖아요?
동방박사들은 이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도 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아기예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결단하고 수개월에 거쳐 예수님을 찾아 경배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가지 선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또 드린 것입니다.
선물에 담긴 의미도 있겠지만 일단 이것은 다 고가의 선물입니다.
이들이 드린 황금이 아무렴 돌 반지 한 개였겠습니까?
황금 덩어리였을 거잖아요?
사람에게 돈은 목숨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돈 버는데 목숨을 걸잖아요?
예수님이 나를 심판과 멸망에서 구원해 영원히 복된 천국의 생애를 주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경배는 가장 귀한 것을 드려도 아깝지가 않고 또 그것을 평생 드리는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나를 위해 남겨 두고 그 다음 것을 드리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면 나를 위해 아껴두는 게 있을 수 없죠.
제가 아직도 후회되는 일이 있습니다.
겨울철에 제가 아껴 입던 코트가 있었는데, 어느날 서원이가 들어오는 데 그걸 떡하니 입고 들어오는 거예요.
서원이하고 저하고 겉옷은 같이 입는 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끼는 그 코트를 입고 들어오는 걸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너 엄마 옷 다 주워 입고 다니냐?’ 그런 거예요.
그게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요.
나중에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서원이 한테 그거 입고 가라면 안 입더라구요.
엄마가 자기한테 아끼는 게 있다는 데 상처를 입은 것 같아서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아끼는 게 있다면 수치스러운 것이죠.
하나님은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한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 놓으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말로 하면 이러셨을 것 같습니다.
‘아들아, 어떡하겠냐. 너도 저들을 그렇게 사랑하니 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네가 가야되지 않겠니’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 논의를 하시고 성자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 성탄절에 먼저 우리가 어떤 사랑을 받은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된 선물과 영생은 이 땅 강남에 아파트 한 채 받은 것과 비교조차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동방박사와 같은 온전한 경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 아낌없이 귀한 시간과 물질과 인생 전체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버지께서 내가 드린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쓰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을 더 복되게 하고, 내 헌신을 통해 고통 속에 있는 누군가를 또 복되게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모두가 성탄절에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러 나오신 줄 믿습니다.
동방박사처럼 우리 믿음이 앞으로도 성경을 통해 견고히 될 때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진정한 경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본문 다음에 이어지는 기사를 보면 동방박사들은 꿈에 계시를 받고 헤롯왕에게 돌아가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배우고 믿음을 시작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믿음의 여정은 이렇듯 상세한 하나님의 인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또 우리 경배가 교회예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삶의 방식 전체가 예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에 맞춰져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베들레헴에 오신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경배하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의 삶이 다 형통하고 복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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