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보혜사를 보내리니 (요한복음16장7절-14절)

남수연 2020. 3. 18. 23:42

오늘 나눌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십자가를 앞둔 마지막 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특히 이날 밤의 말씀은 우리 신앙의 기둥이 되는 진리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현재의 나 사이는 여러 종류의 큰 간극이 있죠.

이 간격을 연결시켜주는 고리는 단 하나입니다.

그 고리가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해 주십니다.

그 고리는 바로 성령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계시해 주셨고, 성령께서는 계시가 이해되고 믿어지는 체험의 단계로 인도하시는 것이죠.

13절이 그 말씀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영원한 단절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이고 십자가와 우리를 연결시키는 유일한 다리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처음 믿게 되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계속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창조역사인 창세기1장 두 번째 절에 등장하시는 제 삼위격의 하나님이십니다.

얼마 전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연구팀은 지구의 초창기엔 육지가 없이 망망대해가 펼쳐진 물의 세계였다는 연구결과를 내 놓았습니다.

처음부터 대륙이 존재했었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새로운 학설이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잖아요?

창세기1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최초의 지구는 물로 덮여 있었고 하나님이 셋째 날에 물을 한 곳에 모아 육지가 드러나게 했다고 이미 성경이 사실을 기록해 놓으셨잖아요?

이 때 지구를 덮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며 창조에 함께 하신 분이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눈에 안 보이게 활동하시기에 오직 성경의 진술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섣부르게 개인의 체험을 통해 성령님을 알려고 하면 곧 진리를 벗어나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다 보이지 않는 성령님을 자기 나름대로 체험했다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의 삶에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도우시는 성령님에 대해 올바르게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성령님을 잘 배우고 성령님과 매일 동행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1.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오신 보혜사이십니다.

7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죠.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예수님께서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하십니다.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말씀하신 곳이 요한복음에 네 군데에 나옵니다.

요한복음141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여기서 특히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도 보혜사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보혜사이시고 성령님도 보혜사이십니다.

신천지 이만희는 자기를 보혜사라고 하는데 흔한 종교망상가의 착각이죠.

이 보혜사라는 말은 일상용어가 아니라 뜻을 모르시는 분이 많습니다.

신약성경 언어인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입니다.

단어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도와주기 위해 옆에 있도록 부름 받은 이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당시 일상 헬라어에서는 피고를 도와주는 변호사를 일컫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이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비슷한 뜻을 살려서 한자 보혜사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보호하고 은혜를 베푸는 스승이란 뜻이죠.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이런 단어로 표현하신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쉽게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파라클레토스란 주님의 용어선택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작정하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늘 죄에 빠져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도와주시고 곁에서 든든하게 변호하실 존재로 자청하셨다는 것이죠.

예수님도 그랬고, 성령님도 그러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 안에서 살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떠나가시며 오실 성령님도 우리를 위해 오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은 성경 전체에서 폭넓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1)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성도들의 영을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5절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나님나라는 육으로 한번만 태어난 자연인은 갈 수가 없습니다.

자연 상태의 인격은 하나님을 거스르고 충돌하고 피차 화해가 안됩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사람의 내면을 재창조하시면 사람의 인격은 하나님께 잘 맞도록 조정되게 됩니다.

다시 태어난 영을 가진 성도만이 하나님을 선호하고 하나님을 즐겁게 섬기며 천국에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은 우리에게 달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대속을 믿고 회개할 때 성령을 받게 되리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진실되게 그렇게 했다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됨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2)그렇게 우리 안에 오신 성령께서는 교활하고 야만적인 죄의 인격을 다루셔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인격으로 바꾸어 가십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 알고 계시죠?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런 아름다운 성품의 열매를 성령님이 내주하시며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거룩한 성화로 인도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섬기게 하시고, 마지막 날 성도들을 부활하게 하시는 것도 성령께서 하실 일입니다.

3)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 주시는 아주 중요한 또 하나의 사역은 하나님나라의 전파와 확장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과 거룩하게 성화되어 가는 것이 중요하듯, 성령님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는 삶도 똑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중점적으로 살펴 볼 것입니다.

이 밤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제 내가 떠난 뒤엔 내가 하던 일을 너희들이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길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처럼 무고하게 모함을 받고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잖아도 불안한 제자들에게 꼭 이런 말씀을 하셔야 했을까요?

주님의 의도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뭐가 잘못된 게 아닌가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이 일어날 것이되 그래도 제자들을 통해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나라가 이뤄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잘 잘못과 상관없이 생애는 희로애락으로 채워집니다.

그러나 꼭 모든 일이 잘되어야지만 제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편하고, 좋고, 위험요소가 하나도 없는 그런 삶만을 기대한다면 오히려 항상 불안하고 예민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도 마음먹고 훈련하면 됩니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일이 꼬이는 것 같은 중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얼마든지 영광스런 일들을 이루게 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굳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복안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보혜사를 보내서 더 놀라운 일을 벌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천국문을 열어 놓으셨고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물밀 듯이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복된 소식을 제자들은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호하며 이끄셨듯이 복음전파와 하나님나라의 일은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똑같이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성령께서 어떻게 구원 사역을 하시는지 8절부터 나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이것은 죄인이 구원을 받으려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종종 읽을수록 점점 더 뜻을 모르게 얽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8절만 있었다면 우리가 아는 대로 죄와 의와 심판을 떠올리면 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 9절부터 10절까지를 덧붙여 놓으심으로 앞과 잘 연결이 안되고 논리가 시원치가 않은 느낌이 듭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는 깊은 영적 진리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우리처럼 늘 뻔한 말, 똑같은 말만 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사람 중에서도 똑똑한 사람과 말하면 따라가기가 힘들잖아요?

주님의 말씀이 우리 나쁜 머리로 훤히 꿰뚫어지지 않는 게 정상입니다.

낮은 차원으로는 더 높은 차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죠.

내가 계시록을 다 풀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대로 성령께서만이 예수님이 계시하신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필요한 만큼 마음을 열어 보여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알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만큼, 오늘 지킬 수 있는 만큼이죠.

다 지키지도 못할 걸 뭐하러 한꺼번에 쏟아 부으시겠어요?

성경 가지고 자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깨닫고 은혜 받고 지킬 수 있는 만큼 성령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책망하시지 않으면 단 한 영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오늘 말씀하는 이 세가지에 대해 분명히 과거의 생각과 삶을 책망 받았어야 맞습니다.

성령님의 책망을 받고 돌이키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선을 분명하게 넘어온 사람들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헌신하려는 뚜렷한 특징이 생깁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에 대고 말하는 것은 우리들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 성령께서는 그 말씀대로 죄인을 책망하시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말씀이 먼저 내게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늘 믿지 않는 가족과 세상을 향해 이런 복음을 던져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죄인을 어떻게 책망해서 구원하시는지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한 문장 안에 많은 원리들이 담겨 있지만 오늘은 전체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간략하게 보아야 하겠습니다.

 

1) 먼저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이것이 죄다라고 말할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죄가 무엇인지 8절에서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우리는 도덕적 죄를 먼저 떠올렸지만 그게 아니죠?

성령께서 책망하실 가장 큰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예수님께서 그 마음을 간파하시고 본문 앞에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에 대해 단순히 오해한 게 아니라 싫어서 안 믿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안 믿습니까?

싫어서 안 믿습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세상을 책망하시는 죄는 도덕적으로 불륜을 저지르고, 사기를 쳐서 남에게 손해를 입히고, 폭력을 쓰는 그런 죄가 아닙니다.

그런 죄는 양심이 책망하는 것이고, 사회의 법도 이미 죄라고 단죄합니다.

성령께서는 그런 죄의 뿌리가 되는 더 근원적인 죄를 책망하십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쪽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께 대한 신성모독으로 격분했다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눈앞에서 가르치고 행하시는 예수님을 그렇게 싫어했던 이유는 예수님이 너무 하나님 같아서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믿는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막상 하나님 같은 사람이 눈앞에 다니시는 데 너무 싫은 거예요.

안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자란 걸 악의적으로 믿지 않은 것이죠.

그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복음이 전해질 때 사람들이 교회로 안 오는 이유는 똑같습니다.

하나님이란 어떤 존재에 간섭받기 싫다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예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여실히 그게 드러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없는 죄라는 걸 책망하실 수 있는 것은 성령님 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끈질기게 우리 속의 바로 이 죄를 탐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말해주시고 그 죄를 버리는 걸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철저히 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내가 원치 않는 것을 순종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결국 그걸 통해 하나님보다 자기의 원하는 대로 하려는 근본적인 죄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죠.

성령께서는 단순히 그 죄에 대한 책망보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죄성을 파헤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대개는 개인에게 있는 도덕적으로 뚜렷한 한 두가지 죄를 통해 시작하십니다.

어거스틴에겐 성적인 타락이었고 길선주목사에겐 친구의 유산을 가로챈 것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때로 결정적인 죄에 빠지도록 놔두시는 이유도 그 죄를 시작으로 하나님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려는 원죄를 책망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으며 도덕적인 죄도 점점 멀리합니다.

그러나 자기 죄성의 정체가 언제든 배반의 고개를 든다는 것을 알기에 거듭난 성도들은 늘 죄인됨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명령대로 사람들을 데려와 교회에 앉혀서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그 죄를 책망 받게 도와주려 하는 것입니다.

 

2)다음은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합니다.

10절에서 다시 설명하시죠.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함이요

제자들이 전해야 할 것은 구원을 위해서 단 하나의 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들이 목격한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그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단 하나의 의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만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사람들은 누가 되든 자기 안에 옳은 것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장로교의 교리에는 전적 타락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체로는 갱생할 여지가 없이 완벽하게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의 몇 개 조항들을 범하지 않으며 나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께 회칠한 무덤이라고 혹독히 책망을 받았죠.

바탕이 안 좋아서 아무리 겉을 그럴 듯이 꾸며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선 속에 있는 게 다 털려 나옵니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와 사상들이 다 자기의 의가 스스로를 구원할 것을 믿고 있습니다.

당신은 죽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래도 내가 남들보다는 착하게 살았으니 좋은 데 가지 않을까요?’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자기 형량이 적절하다는 죄인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법정은 늘 억울한 자들로 넘쳐 나죠.

하늘 법정에서도 순순히 자기의 불의와 형량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의 비유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자기에게 선이 없고 불의만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혹시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할 수 있을 텐 데 말이죠.

세상은 가지가지 의를 내세우지만 성령님은 그것들을 다 책망하셔서 결국 예수님의 의를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바울사도가 고백하잖아요?

내가 좀 낫다고 생각했던 것일수록 하나님 앞에서 보면 더 더러운 배설물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덧입으면 저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11절에 부연해서 말씀합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세상 임금은 사탄과 그의 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곁을 떠난 죄인들을 온갖 술수로 장악하고 있는 세상 임금입니다.

사람을 현혹해서 인격을 지배하고 정상적인 지성을 세뇌시키고 노예처럼 부리는 신천지와 비슷한 것이죠.

철없이 가출한 어린 자식을 인질로 잡고 부모와 대치하고 있는 이미지도 맞을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해서 버리지 못하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죄악을 고발하며 저들을 용서하는 건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는다고 도발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 죄가 해결된 사람들이 자기 왕국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질을 뺐겼으니 그 사악한 죄에 대한 심판만 남은 것이죠.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로워진 사람들이 얼마나 달라지는지가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그들은 사탄에 눌린 세상사람들과 완전히 구별되는 신인류가 됩니다.

그들은 이전에 미워했지만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자기를 위해만 쓰던 삶과 재산을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 놓잖아요?형식적으로 섬기던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며 매일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죄인들 위에 왕 노릇하던 사탄의 패배요 심판을 의미합니다.

왕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세상임금과 함께 그를 따라 세상이 주는 단물을 빨던 악인들은 함께 심판을 받게 된다고 성령께서는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전에 섬기던 것이 세상임금이요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는 책망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여전히 세상에 집착하고 세상에서 만족을 얻으려는 과거의 삶에서 하늘의 왕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더 좋은 것을 받아 누리는 삶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임금과 세상이 좋은 것을 주는 줄 아는 사람들을 더 좋으신 왕께로 인도하는 충성 된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속죄해 주시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책망하셔서 주님을 믿고 거듭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진리로 이끄시며 더 복되고 영광스런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지금 내 안에 오셔서 지도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더 믿음에 삶으로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보며 생각을 성령께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또 우리 안에 일어나는 마음의 소원, 양심의 가책, 이런 것을 통해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어느때 보면 내 입으로 말하잖아요?

이제 그만해야지, 아 이러면 안되지, 그래 좀 더 너그럽게 생각하자

이런 마음의 변화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배워 온 것과 같다면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힘써 따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성령님과 함께 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령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조금씩 더 헌신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