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에베소서6장18절-20절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남수연 2021. 2. 4. 18:28

www.youtube.com/watch?v=ngOGBBs2NVw&feature=youtu.be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생활들은 요즘 안녕하십니까?

기도에 대해 깊이 통찰한 책을 많이 쓴 이엠 바운즈는 ‘기도하지 않았다면 신앙상 폐점한 것과 같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전투를 위해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어지는 말씀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워야 할 영적전투에 막강한 파워를 공급해 줍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은 점점 악의 영들과의 전의를 잃어버리고 좋은 것들을 다 놓칠 위험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성도들에게 주신 비상한 무기인데 이것을 소유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장기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또 반드시 성경에 있는 기도의 사용설명서를 따라야만 합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허락 된 이 무기는 극히 일부의 성도들만 인내로 훈련하고 그 효력을 누립니다.

기도하면 우리가 악의 세력을 더 막아낼 수 있고 훨씬 더 성공적인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계속 우리를 끌어주시고 기도를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우리 모두가 다시 기도의 골방을 찾아 들어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강력하게 이끌어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18절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기도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

단 한 절이지만 기도에 대한 많은 내용들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이런 압축 된 말씀들은 좀 풀어야 실제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1. 성도들은 모든 일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천국시민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기도로 산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고 난 뒤 우리 믿음이 어떤 인생 그림을 그려낼 것인지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기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룬 성경의 인물에게서 기도를 제거해 보면 압니다.

모세에게서 기도를 뺀다면, 다윗에게 기도가 없었다면, 다니엘이 하루 세 번 기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나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뜨겁게 기도하지 않았다면요?

그랬다면 이들 중 그 누구도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인물이 되지 못했고 하나님의 큰일도 해 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모세는 광야에다 이백만명을 놓아두고 미디안 땅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성실함으로 큰 목축업자는 되었겠지만 명망 있는 왕,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주인의 인정을 받는 똑똑한 노예로 일생을 마쳤을 뿐 바벨론의 총리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한나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사무엘이 세상에 태어났을까요?

마가의 다락방에 기도가 없었다면 그곳에 성령께서 강림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저도 제 믿음의 삶에서 기도를 제거해 버리면 어떨까를 생각해 보면 즉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 믿음의 여정을 돌아보십시오.

그 때 기도하지 않았다면,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기도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 모릅니다.

기도가 이룬 모든 것을 알면서도 성도들은 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무기력하고 허약한 신자들이 교회에 가득합니다.

우리가 약한 것은 기도가 약해서입니다.

우리 교회가 성경묵상을 통해서 매일 말씀과 가까이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기도에 대해서는 훈련이 잘 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가 저의 큰 기도제목입니다.

우선은 말씀을 통해서 기도의 필요성을 자꾸 인식하고 다시 기도를 결심하며 계속 시도하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기도 방법은 성경 전체에서 지도하지만 오늘 성경부분에 해당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방법적인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2. 기도는 성령 안에서 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지 좀 막연하시죠?성경에는 성령님과 기도의 관련성을 여러 곳에 계시해 놓았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이 말씀들을 근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확신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로마서8장 16절에 이렇게 기록했죠.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께서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것을 우리 영에 증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6절에서 말씀했죠.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 두 구절을 묶으면 이렇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다.

성령께서 우리 영에 증언해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아버지란게 어색합니다.

성경에서 그렇다기에 아버지라 하지만 부모 자식 간의 신뢰나 연대감이 잘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성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옛날 권사님들 기도할 때 보면 ‘아부지’ 소리가 입에 착 붙었잖아요?

철야기도 할 때 들어보면 여기저기서 ‘아부지’ 소리가 터져 나왔잖아요?

그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말이 들어있는지 알기에 그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밖에서 얻어 맞고 들어온 어린 자식이 부모 앞에 와서 참았던 울음이 터지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종일 시장에 찬바람을 맞고 장사하던 고달픔, 자식문제로 속을 끓이는 어미의 속상함, 이런 저런 고생이 그 ‘아부지’ 한 마디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고생하며 사는 이 모든 것 아시죠? 이제부터 아버지 앞에서 털어 놓고 울어 보렵니다’

그런 것이잖아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관계성이 성령님을 통해 우리 영에 새겨지지 않으면 기도가 담대할 수가 없고 응답의 기대감도 떨어지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니시라면 우리가 무얼 근거로 달라고 조르겠습니까?

우리 애들 어릴 때 보면 얼마나 달라고 조릅니까?

애들이 끝까지 조르면 안 주고 견딜 부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내가 기도한다는 이 사실을 굳게 붙드는 것이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1단계입니다.

예수님도 인정하셨잖아요?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확신이 부족한 성도들에게 더해 주시는 보배로운 말씀은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 까지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죠.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고 믿게 된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시길 담대히 기도하잖아요?

그러자 고넬료에게, 에베소교인들에게,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오셨다고 성경이 증거로 기록해 놓았잖아요?우리가 기도할 때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믿음이 부족하다면 한편 성령받기를 계속 구하면서 꾸준히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는 자녀인지를 성령님만이 우리 영에 확인시켜 주십니다.

 

2) 다음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여타 종교들과의 다른 점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인간 역사 속에서 발생한 종교들을 그 중심에 기도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기도의 의미는 대개 복을 비는 것, 수양하는 것, 접신하는 것 정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은 헬라종교의 문화 속에서 자란 에베소 교인들이 잘못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도 불교와 무속과 유교적 토양 위에 정착했기 때문에 거기 영향을 받은 부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기도 역시 그런 종교적 본능에 의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기도는 성령께서 주도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다보면 점점 내 소원대로만 들어주시길 구하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내 뜻이 다르고 하나님의 길과 내 길이 다르다면 당연히 하나님 쪽이 좋은 것이잖아요?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를 인도해 주십니다.

로마서8장27절에서 이런 말씀을 주셨죠.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래서 기도할 때 줄기차게 내가 원하는 걸 쏟아놓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조율을 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점점 말씀과 지혜와 환경을 통해 내 길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왜 내가 이렇게 기도하는 걸 안 들어주시냐고 하시고 답답해하지 마십시오.

대부분 우리는 기도했던 것과 다른 것을 받습니다.

그러고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믿어집니다.

이번에 우리 란이가 대입준비를 하며 모두가 같이 기도했습니다.

지원한 여러 대학 중에서 최상위 대학에 입학하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란이가 품고 있는 방송인의 길로 가기에 최적의 대학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게 될까?, 혹은 꼭 이게 되야 할텐데’ 이런 생각에 얽매이지 마시고 하나님이 이 문제를 반드시 맡으셔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모든 문제들을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또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기도 중에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을 깊고 예리하게 다듬어 주십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형상을 밑그림으로 갖고 거기에 맞게 우리를 다듬어 가시는데 많은 부분 기도 중에 그렇게 하십니다.

기도를 많이 할수록 예수님의 형상이 점점 드러난다면 분명히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항상,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필요할 때만 기도하고 싶어 합니다.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는 큰 이유는 기도하지 않아도 살아지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주도 아니 한 달이상도 기도하지 않았는데 그냥 살아가는 데 타격이 크다라고 잘 안 느껴지잖아요?

물론 사실은 그렇지가 않지만요.

일용할 양식마저 고갈되면 누구나 기도합니다.

편안하던 일상이 위태로우면 기도하지 않을 성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서 지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에, 항상, 깨어서, 이런 엄격한 지침들입니다.

특별한 결핍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는 문제가 아니라 해도 기도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별로 기도할 게 없다는 분들이 있으신데 그게 틀린 것이죠.

어떻게 항상 기도하냐가 기도의 숙련의 관건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할 수 있으려면 기도가 간구 이전에 하나님과의 사귐이라는 걸 우선해야 합니다.

계속 요청하는 기도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짝 기도에 몰두하다가 곧 시들해져 버리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과의 사귐을 생각하면 언제나 꾸준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아버지를 사랑하길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기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첫 번째 명령도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시겠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 감사한 마음,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시간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느 친밀한 관계가 다 그렇죠.

하나님을 가장 소중한 분이라 하면서 주님과의 만남은 매일 일에 밀려지고, TV나 미디어, 취미생활에 밀려진다면 앞뒤가 맞는 말인지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우리 기도를 24시간도 들어주실 수 있습니다.

인간의 표현으로 하자면, 하나님이 영원한 세계와 자연세계와 모든 피조물들을 통치하시는 데 얼마나 바쁘시겠어요?그래도 우리가 아버지하고 부르면 즉시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우리와 연합되어 함께 사귀는 행복한 구상을 하신 것이잖아요?

그 영화롭고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나 같은 것을 자녀라고 잠잠히 사랑하시며 내가 하나님 앞으로 나와 대화해 주기를 기다리신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기도하기가 힘들 때 이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기도하는 게 나도 하나님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구나.

저도 기도하다 집중하기가 어렵고, 그만 하고 싶을 때 이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행복해지고 또 다시 기도할 수 있는 힘이 납니다.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를 열심히 하셨다면 하나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도를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던 문을 닫고 하늘을 향한 창문만 여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창문을 열고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죠.

오늘내로 해야 할 일들과 시시각각 들려오는 세상 소식, 심지어 마음을 독촉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문을 굳게 닫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세상을 향한 문을 단단히 닫아두지 않으면 세상과 하나님 앞을 왔다 갔다 하다 황급히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골방에서 매일 주님을 사랑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4. 그리고 이 기도는 단체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 에베소서는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주시는 특별한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의 영들과 싸우는 것에서도 바울사도는 분명히 교회의 단체전을 생각하고 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마귀의 세력들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끈질기고 공격적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완전군장을 갖춘 군사가 적진에 혼자 나가서 싸울 수는 없잖아요?

영화에서 보았듯이 적과 맞서 싸우려고 진격하는 군대가 대오를 맞춰 걸어갈 때 몸 전체를 가릴만한 로마의 큰 방패를 서로 맞붙여 앞과 옆과 뒤와 머리 위를 다 가리고 나가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이 영적인 전투에 혼자 나갔다간 죽거나 포로로 잡히거나 부상당해 들 것에 실려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구원받은 자녀들이 모여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회를 구상하셨습니다.

성도들은 각자 따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어있지 않아요.

한 몸처럼 뭉쳐서 함께 예수님을 따르고 함께 거룩하게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체가 머리와 몸통에서 떨어져 나가서 생존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얘기인 것처럼 교회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성도가 믿음의 생명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교회 안가고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TV로 드리는 예배방송만 해도 교회가 없다면 어디서 나오겠어요?

혼자서 믿을 때 도움을 받을 방편들이 다 교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교회를 안 나와도 결국 성도들은 교회에 기대고 교회에 빚을 지는 것입니다.

기도도 혼자만 하는 것보다 단체로 하는 게 강합니다.

이미 우리는 단체전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도의 절반 이상은 우리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던가요?

성령께서 교회에 전해주신 명령은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도들 서로를 떠올리며 기도한다는 생각은 참 마음을 벅차게 합니다.

하나님 보좌 앞으로 모두가 수시로 들락 달락 하며 한 성도님의 문제를 말씀드릴 때 확신하건대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기쁘게 여기실 것입니다.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들이라면 절대로 분열될 수가 없습니다.

또 여러 성도들을 위해서 구하라는 것은 응답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함께 기도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더 바른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땐 욕심과 정욕에 따라 구하기가 쉽지만 다른 성도를 위해서 기도할 때는 다릅니다.

객관적으로 저 사람에게 뭐가 더 좋은 건지, 더 필요한지 알잖아요?

무조건 육적인 것들이 잘되게 해주십사는 기도는 잘 안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면 바른 기도가 모아지고 하나님이 기도대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말씀의 사역자를 위한 기도도 포함됩니다.

19절,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바울은 자기를 위해서도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저는 한동안 제가 성도님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만 생각했지 성도님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하, 성도님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걸 깨닫는 순간 그렇게 제 마음이 든든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전에 김연자권사님 식당에서 오금동 식구들이 한데 모였었는데 권사님이 그러셨습니다.

‘목사님만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다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냐’는 거예요.

권사님 입을 통해서 그 사실을 또 확인시켜 주시더군요.

그 말씀에 제가 참 용기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자들은 주님께서 세우시지만 그 사역자를 성도님들이 만들어 가는 면이 있습니다.

성도님들만 교회를 통해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저도 성도님들과의 교제와 관계를 통해 성장합니다.

특히 기도를 통해 성도들이 목사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제 설교가 신통치 않았다면 저를 위한 기도가 부족하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합동교단에서 목회자와 성도들 6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개혁되어야 할 1순위가 목회자라고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가 목회자를 넘어뜨리면 교회는 유리병이 깨지듯이 만신창이가 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저를 위해서도 단체로 기도하는 우리 주나산되기를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기도에 대한 설교를 듣고 신앙서적을 많이 읽는다 해도 기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대체물은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기도를 빼면 좋은 것을 다 빼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기도에 대해 살펴 본 핵심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심을 확신하고, 기도하면 내 생각보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걸 믿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기도가 짐이 될 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단체전에 꼭 합류하시길 바랍니다.

여러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저와 교회를 위해 기도함으로 모두의 기도제목이 잘 응답되는 우리 주나산 되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