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룻기1장1절-5절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남수연 2021. 10. 19. 17:32

https://www.youtube.com/watch?v=RXKwR0LzUOk&t=1919s 

로마서의 교리부분을 지난주까지 마쳤습니다.

실천 부분은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다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듣고 잊어버리는 설교가 되지 않도록 복습도 좀 하시고 잘 되새겨 믿음의 뼈대를 바로 세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부터는 한 가정의 인생사가 녹아있는 한편의 단편소설과 같은 룻기 성경을 통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인생의 비통함과 쓰라림,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농촌에서 펼쳐지는 재미있고 짧은 성경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성경은 예수님의 구속 역사의 맥을 잇는 아주 중요한 성경입니다.

룻기의 등장인물 중에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는 사람이 두 명이 나옵니다.

오늘은 먼저 나오미의 가정의 스토리를 통해 룻기를 풀어 보려고 합니다.

룻기에서 이해할 것은 이 성경이 단지 이스라엘의 한 가족이 흉년을 피해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 큰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룻기 안에 담긴 굉장한 내용들을 살펴볼 텐데, 오늘은 먼저 나오미 가족의 실책을 통해 믿음의 중요한 원칙과 교훈들을 나눌 때 큰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1. 룻기의 시대와 배경과 가족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룻기가 성경역사 중 어느 지점에 해당하는지를 알아서 자리를 잘 잡아 놓아야 합니다.

1) 1절,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사사기 시대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유대인의 구약성경 순서는 우리 성경과 좀 다르지만 우리 성경은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로 이어집니다.

사사시대와, 사무엘서에서 시작되는 왕정 시대를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가 룻기입니다.

룻기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오미 가족들이 살았던 사사시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 가족들이 사사기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느 집단에서 신앙생활을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사시대는 여호수아가 죽고 나서 삼백여년 넘게 특출 난 지도자가 없이 이스라엘이 열두 지파 별로 제각기 살던 때입니다.

하나님이 왜 후계 지도자를 주시지 않으셨을까 의문이 들죠.

모세는 출애굽을 위해, 여호수아는 가나안정복 전쟁을 위해 특별히 수행할 임무가 있었던 지도자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다음에 하나님은 한 지도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율법과 말씀을 통해 백성들을 한사람 한사람 직접 만나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율법을 묵상하고 지키며 사는 것이 곧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사기1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뒤 각 지파들이 직접 하나님께 물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사람지도자를 너무 의지하거나 한 사람의 영향을 너무 받는 것이 썩 좋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가이드 하는 것이 물론 필요하지만 스스로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묵상하며 성령께서 감화하시는 가운데 직접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매일 만나는 신앙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식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듯이 사사시대는 영적으로 혼탁하고 무지했던 시대입니다.

사사기2장 10절에 보면 그 이유를 이렇게 전합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가나안정복세대의 신앙이 제대로 자식세대에 전수되지 못한 것이죠.

그리고 이런 참담한 결과가 일어난 것입니다.

13절,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게다가 하나님이 철저히 진멸하라고 하셨던 가나안의 부족들을 남겨두는 바람에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급속히 가나안 종교와 문화에 동화 된 것입니다.

올바르고 거룩한 여호와신앙보다 가나안의 우상과 세속문화가 흡인력이 당연히 더 강하죠.

인간의 죄의 본성으로 만들어 낸 게 세상 문화잖아요?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을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하지 않으면 거기에 진공청소기처럼 딸려 갑니다.

무력이나 물리적인 지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정신적 지배이고 더 겁나는 것은 영적 지배입니다.

신앙이 자식세대에 전수되지 않음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이스라엘사람들이나 가나안사람들이나 뭐가 다르겠습니까?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을 가나안부족처럼 심판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통해 마침내 예수님을 보내셔서 대속하시고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단 이스라엘에 심판은 없어도 징계는 하셨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을 이웃나라를 통해 징계하시고, 회개하면 사사를 보내 구해 주시고, 다시 타락하면 징계하시고, 회개하면 다시 사사를 보내 구원하시고, 이 사이클이 반복되는 게 사사기 역사입니다.

이것을 한 열 두 번 반복하다 보니 사사시대가 다 지나갔습니다.

마지막 사무엘을 끝으로 사울왕이 세워지고 다윗왕조로 이어지는 왕정시대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2) 오늘 배경은 특히 사사시대 중 하나님의 징계의 때입니다.

1절,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약속의 땅의 흉년은 의심할 것 없이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가나안 땅은 일반적으로 강에서 물을 대는 농지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우로에 의존하는 천수답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따르면 늦은비와 이른비를 촉촉이 내려 풍성한 소산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상을 섬기고 말씀을 떠나면 우로를 내리지 않으시는 것이죠.

신명기11장 17절,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하나님이 전쟁이나 질병처럼 이 천수답을 통해서도 목이 곧은 백성들의 고삐를 쥐고 계신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그릇되었는지 믿는 사람조차도 하나님이 편의를 봐주시기 위해 존재하시는 듯 생각한다니까요.

천수답은 비만 잘 내려준다면 굳이 저수지를 만들고 물을 길어다 대는 고생을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으면 천수답 농사만큼 불안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손을 바라는 것보다 힘들어도 보이는 저수지에서 물을 길어다 농사짓는 게 더 편합니다.

사람은 많던 적던 세상 밭에서 내 손으로 벌고 꾸려 가는 게 더 안심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벌어먹게 하실 때 이스라엘처럼 우리에게 주신 이 땅의 기업이 천수답이라고 하십니다.

돈의 노예가 되지 못하게 하나님이 밭을 관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수지에 물을 가득 대 놓으면 하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많은 재산이나 지식, 인맥, 건강, 재능 이런 것을 만땅으로 채워 놓고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만큼 불행한 신자는 없습니다.

창고든 저수지든 채워 주시면 하나님보다 그걸 의지하게 되는 게 인간입니다.

그런지 아닌지는 가졌던 것이 없어져 보면 압니다.

사는 게 넉넉할 때 우리는 입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는 줄 압니다.

그러나 결핍이 오면 비로서 진짜 무엇을 의지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믿음 때문에 든든하고 태평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비축해 놓은 물질 때문인 걸 알게 되죠.

다른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건강이나 가정문제나 자식이나 물질이나 인간관계나 중에서 어느 것 하나는 진짜 내 힘으로 안 되는 천수답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매일 세상에다 저수지 파기 바쁘잖아요?

그게 없으면 하나님을 바라지도 않을 것입니다.

천수답은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는 것이라 쉽게 벗어나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거기엔 분명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고, 천수답이 있는 건 내가 약속의 땅에 있는 증거입니다.

천수답 신앙을 복되게 살려면 지금 넉넉히 있다 해도 없는 것처럼,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산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안심하고 저수지도 창고도 채워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내일 것이 준비되지 않았지만 내일 우로를 내려주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심하는 이유가 대개 오늘 당장 필요한 것이 없어서는 아닙니다.

내일 염려를 미리 하기에 더 근심이 많은 것이잖아요?

내일은 또 감당할 힘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실 게 분명하니 성실하게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우로를 기다리는 것이죠.

이렇게 사사시대 천수답에 가뭄이 들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실 것을 잊어버리고 실수하셨을 리가 없잖아요?사사기 사이클로 보면 이스라엘이 다시 회개하고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나오미 가족은 이 흉년을 피해 모압지방으로 이주를 합니다.

이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절,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절,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사람이 이웃나라로 이주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1) 그러나 구약시대 가나안 땅에 거주한다는 것 자체가 곧 하나님 백성이란 뜻입니다.

모세가 신명기에서 다시 당부했죠.

11장 31절,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반드시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할지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서 반드시 거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가족은 약속하신 땅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사시대의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사기는 당시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진짜 그 때에 왕이 없었습니까?

엘리멜렉이란 이름의 뜻이 ‘하나님은 왕이시다’입니다.

하나님이 왕이라고 이름은 지었지만 아무도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사기 신앙의 특징입니다.

왕이 분명히 법을 세우셨는데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8장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 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하나님 말씀을 받되 나와 관계없이 사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진정 나의 왕이십니까?

그렇다면 교훈과 말씀을 따라야 되는 것이죠.

이 가족은 가나안 땅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좀 더 심사숙고 했다면 이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 한 주 수많은 선택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결정하셨는지요?

참으로 위험하게 사신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2) 나오미 가족의 모압 이민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다시 세워야 하는 시점에서 이기적인 결정을 한 측면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가족, 공동체의 관점으로 보신다는 것을 항상 인식해야 합니다.

함께 회개하고 신앙의 회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은 구성원의 의무입니다.

또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에게는 이웃에 대한 긍휼과 봉사가 기대되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집안은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집안이었습니다.

이민 10년이 지나 빈털터리가 되어 베들레헴에 돌아갔을 때 성이 소동하며 나오미를 알아 보았을 정도입니다.

남편 엘리멜렉은 성읍의 유지이고 유력한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흉년으로 이웃들이 굶주릴 때 재산을 정리하고, 값나가는 가재도구들을 바리바리 낙타에 실고 이민을 떠난 것입니다.

힘들 때 사람마저 곁을 떠나면 무릎에 힘이 다 빠지죠.

그것도 힘있고 유력한 사람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성읍 사람들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을 게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에는 가정, 공동체, 이웃에 대한 책임과 의무도 있는 것입니다.

특히 공동체가 어려울 때, 가정이 힘들고 회사가 힘들 때 함께 있는 것만도 너무 중요한 도움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 힘든 시기를 보내는 성도들을 겸손히 섬기고 힘을 돕는 것,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넘어지려 할 때 하나님이 세워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나오미 가족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떠났고 돌봐야 할 책임에서도 떠났습니다.

그들이 누렸던 모든 것들이 약속의 땅에서 받은 복인 줄 모르고 어느 곳에 가서도 그렇게 누리며 살 줄 알았던 것이죠.

물론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 자체를 버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뒤에 보면 나오미가 자신의 삶을 계속 하나님과 관련지어 말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3) 사사시대 신앙은 하나님을 완전히 부인하는 게 아닙니다.

가나안 종교와 가나안 풍습대로 따르며 하나님의 법이 아닌 각자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는 혼합 신앙이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의 신앙도 사사시대 신앙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는 코로나와 같은 시험이 올 때 더 실용적인 세상의 방식을 따른다는 것이죠.

지난 10월3일 주일에 교회의 방역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공무원 칠천오백명이 대대적 현장조사를 실시했었습니다.

이 날 16,000여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중 16퍼센트인 2700여 교회가 폐쇄되어 있었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 개 교회 중 16개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한국교회 전체로 환산하면 6만5천여 교회 중 만 여교회가 폐쇄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여전히 코로나 신앙인 영상예배를 선택하다보니 결국 교회가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나오미 가족이 흉년에 먹을 것이 없어 할 수 없이 모압으로 내려 간 것이 아닙니다.

21절에서 나오미가 이렇게 말하죠.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약속의 땅에서 얼마나 큰 복을 받았으면 흉년인데도 풍족하게 나갔겠습니까?

하나님의 복을 받고나니 이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어도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겠죠.

아르논강이 넘실대는 모압으로 가면 흉년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그러면 가진 것에 보태서 평생 먹고 살만하다는 판단이 선 것입니다.

결국 신앙보다 실용과 실리를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을 과도하게 찾는 것 같고 말씀과 교회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신사사시대의 혼합신앙은 결정적인 순간 하나님보다 세상적인 실리와 실용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을 나오미 가정을 통해 잘 새겨야 할 줄 믿습니다.

 

3. 결국 하나님의 땅을 벗어난 곳에는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인생에는 한두 가지 고통만 있는 게 아닙니다.

흉년은 피했지만 남편과의 사별이라는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 5절을 보면 모압 여인들과 결혼시킨 두 아들마저 죽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이들의 죽음이 약속의 땅을 떠났기 때문에 받은 벌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물론 뒤에 보면 나오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은 나이가 많아서 죽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가장으로서 이민생활의 스트레스가 녹록치 않았을 것입니다.

아들의 경우는 두 아들의 이름을 보면 이유를 알만 합니다.

첫째 아들 말론의 이름 뜻은 ‘약하다’라는 뜻이고 둘째 아들 기룐의 뜻은 ‘소모하다’란 뜻입니다.

두 아들이 원래 병약했다고 추측할 수는 있는 것이죠.

아들이 약하다고 그렇게 이름 짓는 게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구약성경에 보면 꼭 좋은 이름이 아니라 의외로 사람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내는 이름들이 많습니다.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의 전남편 이름이 나발이었죠.

그 이름 뜻이 ‘미련한 자’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서 ‘야베스’가 ‘고통’이란 뜻입니다.

8절을 보면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두 며느리가 병약한 가장이 일손을 놓자 이미 가세가 기운 가정을 위해 일해서 남편과 시모를 봉양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흉년은 피했지만 사랑하는 가족과의 사별과 이방 며느리 손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이 혹독한 시련은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더 뼈아픈 흉년이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 곳곳에 복병처럼 숨어 사람을 노리는 불행입니다.

물론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다 해도 남편과 아들은 죽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도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겪는 고난은 다릅니다.

나오미의 한탄을 보면 그 인생엔 후회와 원망만 가득한 걸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당하는 환난은 잃을 것만 잃는 게 아니라 그 여파가 정신적, 육체적, 관계적으로 일파만파로 퍼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겨낸 고난에서는 불가불 잃을 것을 잃는다 해도 잃은 것보다 더 많은 유익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결핍의 때, 고난의 때를 이겨낸 사람은 얼굴에 하나님을 아는 빛나는 표식과 견고한 믿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얻으면 앞으로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얻으며 살기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성도님들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할 때 염려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나오미 시대는 신명기적 언약의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의 순종과 불순종 여부에 복과 화가 실제적으로 임했습니다.

약속의 땅에 머물며 이웃과 함께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돌보며 흉년을 견뎠다면 나오미 가족이 당한 모든 고통 중 분명 피할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시대 모든 성도들에게 보장 된 은혜와 복은 새언약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에베소1장 3절,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에베소서 4장 32절,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갈라디아서 3장 26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빌립보서4장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예수님 안에서 절대 떠나지 마시고, 이 모든 복을 누리며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복된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은 사사시대를 대표하는 나오미 가정의 신앙과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험난한 인생스토리를 보았습니다.

우리 신앙의 삶은 천수답과 같습니다.

많이 있어도 오늘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것으로 사는 것처럼 살고, 내일 필요한 게 지금 없다 해도 내일은 내일의 떡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때 이런 훈련과 연단을 통해 더 축복받는 가업이 되시길 바랍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이 왕인 사사기 신앙이 아니라 우리 삶에 진정 하나님이 왕이 되심을 인정하고 주님께 묻고 응답받고 순종하는 삶이길 축복드립니다.

또 우리가 받아 누리는 모든 것은 가족, 공동체, 이웃을 섬기기 위한 의무이고 사명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엔 모든 것을 잃은 이 비통한 여인 나오미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다시 비추고 인도하심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