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에스라1장1절-11절 (하나님의 감동-고레스 칙령)

남수연 2024. 9. 12. 00:08

https://youtu.be/YB4m9XQspmI

 

오늘부터는 에스라서를 함께 배우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도들은 구약성경은 좀 어렵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죠.

에스라서는, 많이 설교하는 본문이 아니라 더 어렵겠다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구약성경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구약성경이 굉장히 두껍고 기록된 역사도 아주 길죠.

구약성경을 시대별로 구분해서 알아두면 성경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구약역사를 열 가지 시대로 나누는 것입니다.

창조시대, 족장시대, 출애굽시대, 정복시대, 사사시대, 통일왕국시대, 분열왕국시대, 포로시대, 포로귀환시대, 침묵시대.

이 연대기를 머리 속에 잘 넣어두시고 성경을 읽을 때 어디가서 붙는지를 생각하면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1. 에스라서로 들어가며 포로귀환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에스라서는 포로귀환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성경입니다.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고 오늘 본문에서 읽은 대로 고레스왕이 모든 포로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고레스칙령에 의해 가나안땅으로 돌아온 내용입니다.

와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자기 집을 짓고 논밭을 가꾸고, 성전을 짓는 것이죠.

이 포로귀환을 제2의 출애굽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과는 의미가 좀 달라요.

출애굽에는 기적이 아주 많이 나오지만 포로귀환에는 기적이 하나도 없습니다.

출애굽은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는 예표들로 가득차 있죠.

홍해, 유월절 어린양, 성막,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 이런 기적들이 구원받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사건들입니다.

그런데 포로귀환은 이미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된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을 잘 못 섬겨서 포로가 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관계가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죠.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도 여전히 내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에스라서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서의 징계와 회복에 대한 것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이렇게 범죄와 심판과 회복이 반복되는 것이죠.

바벨론 포로에서 다시 돌아왔지만 결국 또 로마의 지배에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선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 대망사상이 무르익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가 영원히 다스리는 그 나라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왕, 지상나라를 생각하신 게 물론 아닙니다.

메시야를 보내셔서 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완전한 하나님나라를 세우시는 것이죠.

그 방법은 예수님의 대속,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께서 오심으로, 배반하는 인간의 본성을 아예 새마음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포로시대 예언자인 에스겔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우리를 주님의 피로 깨끗하게 하시고,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법을 스스로 잘 따르게 하신다는 것이죠.

이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거듭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전엔 하나님을 몰랐고, 싫어했고, 믿기 싫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이 있잖아요?

성령께서 새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에스라서에서의 포로귀환은 아직 이런 회복의 완성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메시야 예언과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기 위해서 징계하셨던 포로들을 다시 가나안땅으로 데려다 놓으신 것이 에스라서이고, 그 일을 하나님이 사람들을 감동하셔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2. 먼저 고레스를 감동하셔서 포로 귀환의 조서를 내리십니다.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1) 고레스가 어떤 왕이고 하나님이 어떻게 감동하셨는지를 살펴봅니다.

바사는 페르시아이고 고레스는 세계사에서 키루스대왕을 가리킵니다.

페르시야의 고레스왕은 바벨론제국을 정복하고 어마어마한 영토를 통치하는 페르시아제국을 세웁니다.

그런데 이 고레스왕이 천하를 통일한 원년에 이상한 조서를 내린 것입니다.

그것은, 바벨론제국 때 포로로 잡아왔던 패전국의 국민들에게 너희들 나라로 돌아가라는 칙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기이한 정책입니다.

포로는 노예이고 국가와 개인의 재산이던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포로들은 왕실의 노예로, 혹은 귀족과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하사된 사유재산입니다.

그런 포로를 해방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역사상 없었던 일입니다.

출애굽기에서 바로가 열 가지 재앙을 당하면서도 이스라엘을 안 놓아주려고 하잖아요?

그게 정상입니다.

고레스가 어떻게 이런 일을 했겠습니까?

하나님이 몇 가지 요인들로 감동하셔서 이런 전무후무한 시책을 결정한 것입니다.

첫째는, 고레스왕이 지혜롭고 덕망이 있는 왕으로 준비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그 사람 됨됨이를 벗어난 시책을 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고레스를 일찍이 감화하셔서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지 않는 사람을 감화하셔서 선을 행하게 하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 고레스대왕은 페르시아 국민들에게 아버지로 불릴 만큼 이상적인 군주였습니다.

나중에 페르시아제국을 정복한 알렉산더대왕도 키루스대왕의 무덤에 가서 경의를 표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런 고레스가 포로들에게도 그 관용을 베풀어 노예의 삶을 풀어 준 것이죠.

물론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굳이 각 나라 사람들을 잡아두는 것보다, 제 나라로 돌려보내서 산업을 하게 하고, 조공을 받으면 모두에게 이익인 것이죠.

그 판단과 결정을 내린 것도 하나님이 고레스를 감동시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은 감정이나 이성보다 더 강합니다.

그런 생각들을 억누르는 감동을 받았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한번 믿어볼까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것이죠.

또 하나님의 감동은 지혜를 주시고, 탁월한 영감을 주시고, 일머리를 주십니다.

일 잘하길 원하십니까?

기도로 성령님의 감동을 구하십시오.

남이 생각하지 못한 탁월한 아이디어를 갖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일에 대해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나고 그렇게 할 강력한 마음의 동기까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는 것입니다.

고레스에게 아무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식민지정책을 구상하게 하신 것이죠.

포로 해방은 페르시아 사회에서 상당한 반발에 부딪칠 수 있는 사건입니다.

미국은 흑인 노예 해방을 두고 남북이 갈라져 4년간 싸웠잖아요?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슬기를 계속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것이죠.

 

둘째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고레스를 감동하십니다.

당시 바사왕국의 고위 지도층에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서62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서책을 통해 칠십 년이 차면 하나님이 포로들을 본토로 돌려보내신다는 걸 깨닫고 기도했었죠.

이제 칠십 년이 되었으니 그 일을 할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당연히 현재 왕인 고레스가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백 년 전 이사야서에 그 일을 행할 자가 바로 고레스라는 예언이 진작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4428, 나는 여호와라...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누가 봐도 고레스를 통해서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예언이잖아요?

다니엘은 이런 말씀들로 고레스왕과 깊은 대화를 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숨기는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2절을 보면 고레스가 이렇게 말하죠.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사야 예언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감동하실 뿐 아니라, 특히 말씀을 통해서 감동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통해서 마음에 감동을 받을 때가 많잖아요?

지난 주에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나서 성경을 펴다, 미가서의 이 말씀이 딱 눈에 들어왔습니다.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바울사도가 갈라디아서에서 이 말씀에서 받은 감동을 이렇게 전했나 봅니다.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주님의 자녀들을 위해 해산하는 수고가 사역자들에겐 마땅하다는 걸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제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으시려면 말씀을 펴시길 축복드립니다.

 

2) 어떤 사람들은 포로귀환이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고레스왕이 모든 나라들에게 보편적으로 행했던 정책이지않았냐는 것이죠.

고레스왕이 다른 나라 포로들을 해방 시킨게 단지 고레스에게서 나온 정책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바벨론에 사로잡힌 여러 나라들의 포로귀환도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것도 성경에 이미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멸망 당시 바벨론제국이 팔레스타인 전역을 싹 다 집어 삼킵니다.

예레미야서48장부터 보면 장차 애굽과 모압과 암몬과 엘람, 애굽과 같은 나라들도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바벨론에게 멸망할 것을 예언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패전의 예언 뒤에는 나라마다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그 후에 내가 암몬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내가 마지막 날에 모압의 포로를 돌려 보내리라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애굽 땅에 이전 같이 사람 살 곳이 되리라

고레스왕이 모든 포로를 돌려보내게 된 것도 고레스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이렇게 주관하신다는 게 너무 경이롭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인생을 함께 경영해 가신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지금 예수님을 뺀다면 뭐가 남을지 생각하면 저는 공황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일하고, 사회 환경과 제도 속에서 일하지만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정책에도 개입해 주십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걸 경험하신 성도님들도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막혀있는 문제들을 위해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면 성도들은 그것도 기도할 수 있는 것이죠.

또 사회에 폐악이 되는 제도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관여해 주시길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3. 4절부터 6절까지는 귀환자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을 감동하신 내용입니다.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조서가 내리자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가 성전을 건축하자는 사람들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귀국을 결심한 사람들은 70년 전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미 바벨론이 고향입니다.

바벨론은 최고의 문명사회였지만 돌아갈 예루살렘은 불에 탄 폐허 뿐입니다.

낯설고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누가 아이들을 키우고 싶겠습니까?

우리 같으면 미국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는데 전쟁 직후의 우리나라로 돌아오고 싶을까요?

하나님께 감동을 받았기에 그들이 귀국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받은 복도 많지만 만만찮은 희생도 해야 합니다.

특히 성전을 건축하는 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은 너무나 큰 희생을 치러야 하기에 하나님의 감동이 없으면 못합니다.

개척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감동이 없으면 못합니다.

미국 아틀란타에 최근 이백억에 육박하는 교회를 매입한 교회가 있습니다.

이혜0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입니다.

이목사님 아버지가 한국에서 평생 개척교회 목회를 하셨습니다.

이 목사가 어릴 때 교회가 상가 2층에 있었는데, 예배시간 내내 사람이 올라오는 발자국소리에만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성도 수가 적다 보니 교회 보증금도 다 까먹고, 나중엔 카드 빚까지 수천만원 빚을 지게 됩니다.

그런데 누나가 공부를 잘해서 사시에 합격하고 25살에 판사로 임용이 됩니다.

착한 딸은 제일 먼저 마통 1억짜리를 만들어서 부모님의 빚을 다 갚아 주었다고 하더군요.

이 목사님도 서울대를 나왔는데, 누나처럼 명예로운 직업을 갖고 싶어서 외무고시를 준비하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미국으로 신학공부를 갑니다.

미국에서 의자 세 줄을 놓고 막 개척을 시작했을 때 비보를 받게 됩니다.

판사였던 그 누나가, 아직도 너무 젊은 나이에 과로사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당시 판사가 과로사했다는 누나의 소식이 뉴스에도 나왔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사람이 죽음으로 삶을 마칠 때 무슨 선택의 권한이 있겠습니까?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식을 잃은 부모님을 붙들어 주셔서, 딸의 죽음을 막아주지 않으신 그 하나님이 주신, 개척교회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셨습니다.

다만 누나의 죽음을 하나님이 한알의 밀알로 받아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동생인 이목사님이 아틀란타의 한인들에게 희망이 되는 좋은 교회를 이루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귀환 명령이 떨어졌을 때 바벨론에 주저앉은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공직자들은 당연히 귀국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느헤미야가 2차 귀환을 할 때 왕의 허락을 받아야 했잖아요?

일반인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귀국을 포기했겠죠.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성전을 세우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고충은 뒤에 보면 나오지만, 생각했던 대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바벨론에 남은 사람은 형통했을까요?

에스더서가 바벨론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모르드개나 에스더가 유대인인 것도 숨기고 살아야 했잖아요?

하만의 간계로 남은 사람 전부가 죽을 환난을 만나잖아요?

금식까지 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려 겨우 위기를 모면합니다.

이후로도 여전히 타향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실 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절대 손해보지 않습니다.

평생 살아온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결단을 한 돌아온 자들의 이름을, 하나님은 2장에 기록해서 영원히 기념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 교회를 섬기는 일, 내 신앙을 바르고 강하게 하는 일이다 감동을 받을 때, 믿고 순종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하나님은 귀환을 결심한 성도들을 돕도록 사람들을 감동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포로사회는 다니엘과 모르드개와 같이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귀환을 허락하는 조서가 내려졌지만 사람들은 노비의 신분이었을 것입니다.

노예들에게 무슨 재산이 있겠습니까?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500킬로가 넘는 먼 길이고 적어도 두 달 정도의 긴 여행을 해야 합니다.

그런 여행경비와 가나안땅에서의 정착금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고레스가 내린 조서에 거기에 대한 항목이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주인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종들에게 재물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냥 놓아주는 것도 손해 보는 것 같은데, 정착금까지 보태주고, 성전 건축헌금도 좀 하라는 것이잖아요?

물론 그동안 노예들이 수고한 노동에 대한 댓가로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 선뜻 자기 주머니를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누가 감동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수고의 댓가를 다 받게 하신 것입니다.

똑같은 사건이 출애굽 때도 있었죠.

하나님이 삼백 년 노예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빈손으로 나오게 하지 않으셨잖아요?

은금과 패물들을 애굽사람들에게 구하는대로 다 받아냈다고 하죠.

우리가 수고해 놓고 당장 얻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수고하고 얻지 못한 열매가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그 댓가를 다른 무엇으로, 누구를 감동해서라도 받을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개인은 그렇게 귀환을 위해 준비했다고 하지만 성전건축에는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그에 대해 하나님은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바벨론왕이 약탈했던 성전의 보물들을 다 되돌려 주도록 명을 내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마음을 일으키면 하나님이 도와주심을 항상 믿고 일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에스라서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통한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장래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떠난 사람들처럼, 우리도 믿음의 길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님이 감동하셨기에 우리가 이렇게 주님께 헌신하며 섬길 수가 있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더 하고 싶어도 나이가 들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기도 점점 힘들어질 것입니다.

노년기의 신앙은 무슨 봉사를 더 할 것인가 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까를 더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내가 어떤 신앙의 사람이 될 것인지를 더 생각하며 주님을 따르면 될 것입니다.

오늘 설교가 더 열심히 헌신하라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대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주의 일을 받드는 게 좋습니다.

단 젊은 성도님들은 하나님께 은혜 받고 감동을 받는대로, 하나님나라를 위해 담대하게 헌신하고 크게 쓰임 받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