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성막 (출애굽기40장33절-레위기1장4절)

남수연 2011. 9. 6. 10:58

성경을 읽다보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족보가 죽 나열 된 곳이나 레위기에 비슷 비슷한 제사법이 그렇습니다.

그 중 성막 제작에 대한 부분도 인내심을 갖고 읽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게다가 분량이 50장 정도나 됩니다.

성경에 이렇게 많은 부분이 할당 된 걸 보면 이게 중요한 거구나 짐작이 가시죠?

출애굽기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지시하신 내용과 가르치신 모양대로 성막을 만드는 장면이 순서대로 빠짐없이 기록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막을 만들고 설치까지 끝난 맨 마지막 부분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선택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는 공교하게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들의 역사서인 구약 성경은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처음엔 희미하지만 점점 뚜렷하게 한 지점을 지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인간의 죄를 속죄할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의 많은 사건과 인물을 통해 보여주시려는 것은 오직 메시야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성막도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 갈 방법이 없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확신이 없는 것은 왜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받는지 정확한 이치를 잘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알고 믿고 구원을 받도록 창세부터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매일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 지 관심을 갖고 영적 이치를 알아보려 노력하지 않으면 믿음이 식어지고 확신이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막을 통해 그 속에 담긴 대속의 진리를 나누려고 합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에 맞게 만들어 진 이동식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하고는 성전 예배로 바뀌게 되죠.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는 곳이라 회막이라고도 합니다.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고 지은 죄를 속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심판당할 인류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법은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레위기5장17절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너무 가혹하신 하나님이라고 생각되십니까?

그건 하나님도 어쩌 수 없으십니다.

죄와 하나님이 동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칼 날 같은 공의와 거룩한 존전에 설 때 즉각 심판이고 자동 소멸입니다.

히브리서12장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아시기에 속죄 방법을 열어 주신 것이 바로 성막제사입니다.

그러니 성막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아시겠죠?

이스라엘 사람들 참 피곤하게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엄위하신 속성은 신약시대라고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동일하시고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친근히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위해 예수님께서 재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통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살필 때 성령님의 은혜가 임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영적인 내용이라 좀 집중하셔야 됩니다.

 

첫째는 백성들이 손수 만든 성막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5장8절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성막은 하나님의 디자인대로 백성들이 손수 지어야만 했습니다.

출애굽기26장30절에 보면 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말로만이 아니라 직접 보여주시기 까지 했다는 말씀이죠.

성막 제작에는 인간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는 털 끝 만큼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크기부터 기물 하나 하나의 문양과 색깔까지 철저히 하나님의 기획입니다.

구원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임을 쐐기 박으신 것이죠.

오늘 나누어 드린 성막의 사진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위에 있는 것이 밖에서 볼 수 있는 성막의 모습입니다.

성막 사방으로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장막을 설치했습니다.

뜰을 포함한 전체 크기가 긴 쪽이 45미터이고 짧은 쪽은 그 절반인 22.5미터이고 울타리 높이가 2.5미터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구조물인 성막의 높이가 4.5미터입니다.

다음은 기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막의 유일한 문인 동쪽 문을 통해 뜰로 들어갑니다.

뜰에는 제물을 드리는 번제단이 있고 제사장들이 손을 씻는 물두멍이 있습니다.

아래 오른 쪽 그림을 보시겠습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휘장으로 두 칸을 나누었는 데 앞 부분이 성소이고 뒤가 지성소입니다.

앞 성소에는 왼쪽에 불을 밝히는 등대와 오른 쪽에 12개의 떡을 진설한 떡상이 있고 지성소 휘장 바로 앞 가운데 분향단이 있습니다.

휘장 안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아무나 출입하지 못했고 대제사장이 전체 백성의 죄를 속죄받기 위해 일 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법궤가 놓여 있습니다.

아래 왼쪽 그림입니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항아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 법궤 위를 속죄소라는 뚜껑으로 덮었는 데 천사 둘이 양쪽에서 날개를 모으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곳이 하나님께서 임하신 장소입니다.

민수기 7장 89절에 보면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씀하려 할 때에 법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이 성막의 기구 하나 하나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을 가르쳐줍니다.

가장 중요한 법궤와 그 속에 든 십계명 판은 하나님의 공의를 말씀합니다.

그 위의 올려놓은 속죄소 위에 매년 한 번씩 대제사장이 들어와 제물의 피를 뿌려야 모든 백성들의 죄가 속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덮을 수 있는 제물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모든 부분을 다 말씀드릴 수 없고 나중에 우리 성경공부를 통해 살펴볼 기회가 있을 줄 믿습니다.

성막 안의 모든 기물들은 거의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제작하는 데 금 1.65톤, 은 4.85톤이 사용되었습니다.

누가 재빨리 가격을 계산해 봤나 봅니다.

성막을 제작하는 데 총 2000억원, 평당 20억이 들었다고 하니 굉장하죠.

성막에 사용 된 모든 물품은 모두 백성들의 헌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많은 금이 어디서 났는지 궁금하시죠?

출애굽기3장 21절을 보면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 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이 금과 은으로 성막을 만든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드릴 모든 것을 미리 다 주시는 줄 믿습니다.

성막을 위해 백성들이 즐겁게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이 아닌 것은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헌물을 가져왔는 지 모세가 제발 그만 가져오라고 명령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속죄할 방법인 성막을 허락하셨지만 백성들은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손수 지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은 각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순종하는 것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실 영원한 방법은 그것이 아닙니다.

역대상 17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 왕이 이 휘장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하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특히 여기시나 정중히 사양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영원한 하나님의 집을 세운 다윗의 아들이 누구입니까?

솔로몬이 아니라 바로 다윗 왕의 후손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2장에서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 성전을 보며 말씀하시죠.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46년 걸려 지은 성전을 네가 어떻게 삼일 만에 세우겠냐고 주님을 공격하죠.

21절에 보면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거하실 처소는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혼자서 지으십니다.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감사와 사랑이 있기에 기쁘게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그러나 믿음의 성숙과 풍성한 은혜의 삶은 뿌린 만큼 거두는 법칙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과 임재를 원한다면 시간과 마음과 물질들을 드리고 은혜 받을 방편인 말씀과 기도가 늘 끊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갈0리 교회 강0호 목사님은 성막을 만들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전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친 분입니다.

실물 크기의 성막 모형을 제작하는 데는 수 억의 돈이 들어갑니다.

사진에서 성막을 덮은 마지막 덮개가 해달의 가죽입니다.

성막을 덮을 만한 물개 가죽을 얻으려면 물개 300마리가 죽어야 합니다.

목사님이 물개 가죽을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었는 데 캐나다에서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일정이 좀 빠듯해 기도해봤더니 하나님께서 캐나다에 물개 많지 않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개 가죽을 주신다는 응답에 너무나 기뻐서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관심이 물개 가죽이니 부흥회 마다 물개가죽 얘기가 저절로 나오더랍니다.

밤 예배 마치고 해변가를 걷는 데 정말 수천 마리의 물개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같이 걷던 집사님이 왜 그렇게 물개가죽에 미쳐있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 예표인 성막을 알리기 위해 물개 가죽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어쩌면 그리 시기를 잘 맞춰서 오셨냐고 하더랍니다.

이 지역에 갑자기 물개가 많아졌는 데 물고기를 다 잡아 먹어 버릴까봐 정부에서 처음으로 두 달 간 물개 사냥을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개 사냥군 8백명을 동원해서 303마리의 물개 가죽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열정과 헌신이죠.

혹시 그 당시 광야에서 무슨 물개 가죽이 3백 마리 분이나 있었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당시 이집트에선 주로 물개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소를 숭배하는 이집트 풍습 때문에 소 가죽을 신지 않았답니다.

집집마다 신발감으로 물개가죽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죠.

그런데 그걸 다 드렸으니 신발은 어떻게 합니까?

신명기29장5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던 하나님은 반드시 책임지시고 축복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자식이 귀할수록 그의 장래를 하나님께 바치는 게 현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셨으니 책임져주실 것 아닙니까? 할렐루야!

 

둘째는 성막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인도하심을 보겠습니다.

성막의 완성이 되자 34절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고 기록합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모습일까요?

에스겔선지자는 자기가 본 여호와의 영광을 에스겔서1장26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이 상상이 가지 않죠?

그러나 누구든 이 광휘에 가득 찬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경외감과 두려움에 엎드려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난 주 바울이 예수님의 영광의 빛에 엎드려 졌고 눈까지 멀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이 완성되자 바로 성막에 충만히 임재하십니다.

마치 기다리고 계셨다는 느낌이 들지요?

그렇습니다.

태초부터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인간들과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건이 되기만 하면 언제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조건은 도저히 하나님과 동거할 수 없는 죄를 해결 할 속죄제물입니다.

지금도 이 조건에 맞는 십자가의 보혈이 있는 예배 속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성막에는 양식마다 예수님의 속죄가 담겨있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기꺼이 임하실 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성막에 임재하신 하나님은 그냥 가만히 계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백성들을 책임지고 인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36절에 보면 성막을 덮고 있던 여호와의 영광인 구름이 성막 위로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이 진행했다고 기록합니다.

구름이 멈추는 곳에 다시 그들의 장막을 치고 머물게 됩니다.

민수기 10장 33절에 보면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우리의 앞 서 가시며 쉴 곳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1장33절입니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루 앞에 있을 일 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미래를 계획하고 일을 벌이지만 그 내일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믿음으로 해보려고 안간힘을 써도 막막한 내일 앞에 주저앉고 싶은 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실 때 주님은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모든 일을 준비하고 인도하신 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38절을 보면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라고 기록합니다.

백성들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가 보이십니까? 아멘.

우리가 광야와 같은 험한 인생 길을 걸어갈 때 뜨거운 태양에 상하지 않게 구름을 펴서 보호하십니다.

추위와 맹수의 위험이 도사린 어두운 밤에는 불로 보호하시는 줄 믿습니다.

제가 어떤 선교단체에서 사역하는 간사의 간증을 읽었는 데 참 잔잔하고 좋더라구요.

큰 간증은 아니고 늘 우리가 느끼는 그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어느 날 이 분이 아는 사람이 뉴욕 필하모니와 협연을 해서 예술의 전당에 꼭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자신이 맡고 있는 성극 연습과 겹쳐서 고민하다 주의 일이 먼저라는 생각에 예술의 전당을 포기했습니다.

연습 준비를 하다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단원들에게 일이 생겨 연습을 취소해야 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얼른 예술의 전당으로 가는 데 좌석표가 다 매진됐다고 들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간신히 시작 전에 도착 해 매표소로 가려는 데 금호재단 창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마침 회원증이 있어 재단 창구로 갔더니 25만원짜리 로얄석을 20만원에 준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속한 선교센터에서 옥수수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는 데 20만원이면 옥수수가 몇 자룬 데 하는 생각에 망설여졌습니다.

그 사이 표 값은 15만원으로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까운 생각에 머뭇대는 데 10만원에 해준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지갑에 현찰이 없고 카드는 안 된답니다.

망설이이고 있으니 핸드폰 번호를 알려 달라 하고 표를 한 장 주었습니다.

나중에 입금계좌를 보내려나보다 하고 표를 받아 들어갔습니다.

쉬는 시간에 밖에 나가려고 표를 꺼내 보았습니다.

회원용 로얄석 무료 초대권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할렐루야!

대단한 VIP고객에게나 제공되는 티켓이죠.

주님이 마련해 주신 티켓이란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애쓰고 주의 일을 위해 물질을 아끼는 딸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먼저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뉴욕필의 웅장하고 힘찬 찬양 연주 속에서 아버지의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앞서가시며 인도하시는 작은 은혜의 체험들이 매일 차고 넘치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아멘

우리 심선일 집사님의 시골 집이 팔리고 새 거처를 예비하신 것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예비하신다는 말씀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아멘.

 

마지막으로 성막에서 드리는 제사의식을 살펴봅니다.

오늘 이어지는 레위기에는 성막에서 드려질 제사의식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민족은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기본정신을 담은 십계명 뿐 아니라 아주 세세한 세부법을 모세를 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항목들은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도저히 지킬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지키고 구원받으라는 게 아니라 죄를 깨닫고 대속 제물의 필요성을 알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없었다면 안식일을 어기는 게 하나님께 죄라는 것도 몰랐다는 것이죠.

아무튼 필연적으로 율법의 죄를 어긴 백성들은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때 그의 죄를 대속할 제사의식을 주신 것입니다.

먼저 속죄를 위해 예물을 드릴 때 번제로 드릴 소나 양을 끌고 성막의 뜰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4절에 말씀하신 대로 그 짐승의 머리에 안수를 하면 그의 죄가 번제물에 전가되는 것입니다.

요즘 코미디 프로에 보면 우리끼리 정하던 데 이건 우리끼리 정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다음 절에 보면 그가 자기 손으로 그 짐승을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5절에 보면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그 다음은 6절입니다.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죄인이 스스로 짐승을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칼로 사지를 조각 내 놓으면 제사장이 그것을 번제단에 태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죄지은 자가 자기 죄를 위해 죄 없는 짐승을 죽이고 해체시키는 과정에서 그는 죄의 끔찍한 참상을 절절이 느끼게 됩니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짐승을 보며 그는 쉽게 죄를 짓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를 드리면 그의 죄는 속죄가 되는 것이죠.

번제단에서 제물이 타는 냄새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숯불구이를 좋아하시는 것도 아니고 이 냄새가 왜 하나님께 향기롭겠습니까?

죄를 지은 연약한 인간이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사죄하고 돌아오는 냄새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 잘살지 못하고 살다보면 거짓말도 슬쩍하고 죄도 쪼금 짓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 나가 회개하는 기도가 바로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자주 회개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뭐가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합니까?

그냥 잘못했다고 입에 달고 사셔도 됩니다.

오히려 잘못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회개하지 않는 마음은 돌처럼 굳어져 후에는 말씀도 은혜도 역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오늘 번제단 위에 불타는 이 제물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입니다.

에베소서 5장 2절은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존스홉킨스 대학에 이승0박사라고 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 뼈를 깎는 고생 끝에 유망한 체조 선수가 되어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공중으로 솟아올라 540도 회전을 하는 훈련 도중 거꾸로 처박혔습니다.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뒤 온몸의 신경이 끊어졌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절망에 내몰려 비명이 터지는 그의 눈앞에 GOD라는 알파벳 세 글자가 또렷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소망이 끊어진 고통과 혼란 속에 병상에 누워있는 그에게 래리라는 선교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 박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 때 머리로만 믿던 예수님의 처절한 십자가의 고통이 자기의 죄 때문이라고 깨달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합니다.

그의 등을 짓누르고 있던 고통과 두려움, 혼란, 죄의식, 분노의 산더미 같은 벽돌이 한순간 사라지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휠체어를 탄 채 컬럼비아와 하버드 인턴과정을 수석으로 마치고 지금 존스홉킨스 의대 재활 전문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는 그를 구원하셨고 사지마비의 절망 중에서 놀라운 새 인생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는 이제 금메달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처럼 자기를 죽음과 심판에서 살려 주신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며 주님께 생명의 면류관을 받겠다고 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성막의 완성을 간절히 기다리셨다는 듯 얼른 내려오시는 걸 봅니다.

천국의 장엄하고 영광스런 보좌에 비할 때 아무리 금과 보석으로 꾸민 성막일지라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하길 더 기뻐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가정에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길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교회에 임하셔서 사랑하는 성도들의 예배를 받으시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인간들의 죄로 인해 성막은 매일 피비린내와 제물이 타는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많은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젠 죄를 멀리하고 기도로 회개하며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시게 하시길 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 보다 앞서 가시며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