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야곱의 위기와 브니엘의 하나님 (창세기32장)

남수연 2012. 5. 23. 14:05

지금 야곱은 20년 타향살이를 청산하고 가나안 땅에 있는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이 순탄치가 않은 것 같죠.

야곱은 20년 전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돌아온 것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개나리 봇짐에 지팡이 하나 들고 850킬로나 떨어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리브가는 형의 분노가 풀리면 데리러 오겠다며 야곱을 보냈습니다.

곧 돌아오리라 생각했던 길이 20년이 걸린 것이죠.

큰 고생모르고 자란 부잣집 아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아내를 얻는 조건으로 14년 동안 가축들과 뒹굴며 종처럼 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는 그 후 몇 년만에 큰 부자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형에게 줄 뇌물로 보낸 가축의 수가 550마리입니다.

반 만 주었다 해도 원래 천 마리가 넘는 가축을 소유했었으니 지금으로 따져도 엄청난 부자인 셈이죠.

이렇게 성공하고 돌아가는 길에서 야곱은 그 인생의 또 한번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가 걱정하는 일이 실제 일어난다면 그와 온 가족은 큰 변을 당하고 재산은 모두 형의 손에 넘어 갈 판입니다.

삶에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온갖 상상을 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며 밤 잠을 설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인생에 역경이 한번 닥치면 그게 그리 간단하게 풀어지지 않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내 힘으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환경에 우겨 싸일 때도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야곱은 ‘왜 또 나만 이래? 분명히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는 데’원망과 분노와 절망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듀크대학교 실험팀이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반응 실험을 했습니다.

두 개의 밀폐 된 통을 준비하되 한 개의 통에만 천정에 작은 창을 냈습니다.

두 통에 물을 가득 담고 그 안에 각 각 생쥐를 넣었습니다.

물에 빠진 두 마리의 쥐는 맹렬하게 헤엄 쳐 나오려고 애를 씁니다.

창이 없는 통 속의 쥐는 빠져 나갈 길이 없다는 걸 알고 잠시 뒤 스스로 머리를 물 속에 처박고 익사하더랍니다.

그러나 천 정에 작은 창이 있는 통 속의 쥐는 몇 시간을 헤엄치다 힘이 다 빠져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창이 없다면 우리 현실에서 절망 속에 머리를 처 박을 수 밖에 없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야곱이 지금 그런 상황 속에 있고 우리도 때때로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결론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우리에겐 반드시 시련을 이기고 역경을 벗어 날 통로가 있는 줄 믿습니다.

욥기 5장 19절에서 말씀하신대로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위경에 빠진 야곱을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살펴보며 우리를 돌아보고 영적인 진리와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성령께서 크게 깨닫는 은혜를 부어 주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먼저 이 사건은 영적인 배경이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의 귀향 길에 갑작스레 하나님의 큰 군대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자연세계를 살아가고 있고 이런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보통은 잘 감지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 속에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초자연적인 세계를 보여주십니다.

호세아12장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죠.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이런 이상을 보여주고 기록하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게 목적입니다.

야곱의 눈에 이 천군의 행진을 볼 수 있게 영안을 열어 주신 것은 우리에게 보여주실 영적인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천사의 군대가 집결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냥 이유 없이 내려 보내신 게 아닙니다.

싸움이 있다는 겁니다. 영적 싸움이죠.

야곱의 일행을 둘러 싼 어마 어마한 영적 전투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조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될 거라고 말씀하시며 구원의 청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족보를 이어가는 게 이삭이었고 그 다음이 야곱입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고 유다지파에서 예수님이 오시는 게 하나님의 계획이신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죠.

마귀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는 야곱의 집을 사탄의 세력이 막겠다는 것입니다.에서가 4백명의 무사를 이끌고 동생을 만나러 온다는 건 사실 정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20년이 지났는 데도 동생에 대한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았다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아무리 원수 같아도 이 땅에 유일한 혈육인 동생입니다.

비록 자기를 속였다해도 4백명 무리를 동원해 달려드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사탄의 세력이 에서의 배후에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훼방하고 간섭해 보겠다는 것이죠.

우리는 성경 속 에서의 족보에 대해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에서는 별명이 에돔이고 에돔 족속의 조상입니다.

에서의 손자 아말렉이란 사람은 아말렉 족속으로 번성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 에서의 후손들이 항상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홍해를 건넜을 때 제일 먼저 이스라엘민족의 가나안 입국을 가로막고 전쟁을 일으킨 부족이 바로 이 아말렉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크게 승리를 한 다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출애굽기17장 16절에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 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왜 일개 아말렉 족속과 대대로 끝까지 싸우시겠다고 하십니까?

아말렉과 에돔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왕에게 완전히 진멸하라 했던 게 바로 아말렉족속입니다.

에스더서에서 이스라엘 족속을 멸절하려 계략을 꾸몄던 하만이란 사람이 에돔족속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주님을 죽이려고 2살 이하 아기들을 모조리 살육했던 헤롯왕도 바로 에돔족속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후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영적 전쟁을 아시겠습니까?

야곱이 멋모르고 들어가고 있는 가나안 땅에 어마어마한 군대가 집결해 치열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마귀의 세력을 이겼기에 에서의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야곱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무사히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천국을 향해 나가는 모든 신앙 여정에도 이 마귀의 세력이 막아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 싸움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 가까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예를 들어 보이겠습니다.

이 주전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걸어가는 데 갑자기 누가 발을 건듯이 아무 장애물도 없는 데 크게 넘어질 뻔 했습니다.

발목과 무릎에 약간 충격이 왔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면했습니다.

이럴 때 기분이 좀 묘할 때가 있습니다.

단순한 사고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 주에 남현주목사님이 노회 모임에 갔다 발목이 심하게 비틀리며 넘어져서 1시간을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다쳤습니다.

신기하게 기도하고 나니 아무 부상도 없고 통증도 없이 치료가 됬습니다.

같은 주에 심재숙집사님의 자동차 번화판을 누가 떼가 버렸습니다.

재발급 받느라 하루 종일 고생하셨죠.

그리고 호서래 집사님 집 앞에 세워 둔 자전거를 그 주에 도둑맞았습니다.

주일에는 정순복권사님이 자동차 문에 심한 부상을 입으셨는 데 감사하게 완치가 됐습니다.

백서원은 그 날 신호등 앞에서 무릎이 뒤틀려서 넘어져 절뚝거리며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이 일 외에 다른 일들도 성도님들에게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이 같은 시기에 우연히 발생한 일 같습니까?마귀의 세력이 성도들을 시험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려 총공세를 벌인 총동원주간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감당할 만한 시험만 허락하시고 또 이 일로 실족하지 않게 우리 믿음을 붙들어 주십니다.

이 시험을 통해 영적 지식을 갖게 하시고 우리 믿음이 그만큼 성장하게 하시는 것이죠.

우리 힘만으로는 절대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영적 전투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를 항상 보호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16절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 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영적싸움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강건해 지고 거룩한 행실을 통해 영적인 실력을 갖춰가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에 실패해 믿음에 시험 들고 육신의 죄에 빠지면 우리 인생에서 큰 고통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싸움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가 평안하고 큰 과오없이 인생을 경영하기 위해서 반드시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때가 악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깨어서 마귀의 일을 거절하며 축복의 땅을 향해 힘있게 걸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어떤 방법으로 이 위기를 대처할까요?

야곱도 보통 사람들처럼 이 싸움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천사의 군대를 보내신 전투에 야곱은 기껏 자기의 종 몇을 에서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섣불리 종을 보내 형을 떠 보는 전략이 오히려 화근이 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인 문제가 배후에 있을 때 이성적인 판단으로 대처하면 해결도 되지않을 뿐 아니라 더 악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도 진실 되지 못한 야곱의 약은 성격이 또 드러납니다.

형을 찾아 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고 당해야 할 댓가가 있으면 감수해야 맞는 것이죠.

또 영적인 면에서도 야곱의 불신앙이 드러나는 걸 보게 됩니다.

이 야곱의 귀향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것 아닙니까?

31장에서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동행하겠다고 분명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냥 믿음으로 쭉 걸어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과연 하나님 약속대로 형통하게 일이 풀리고 있는지 한 번 찔러 본 것이죠.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따르려 해도 눈으로 확인되지 않을 때 우리도 의심이 들고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를 향한 가장 좋은 계획을 갖고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했기에 사자들을 보내 본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국을 앞두고 먼저 정탐꾼을 보내보자고 한 것과 똑 같은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만한 가장 신실하신 분입니다.

사무엘상15장29절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결국 야곱의 얕은 의심으로 시작 된 첫 번째 전략의 결과로 급속하게 상황은 악화됩니다.

종으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에 야곱은 큰 충격에 빠집니다.

7절에 심히 두렵고 답답했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압박감이 심해지면 공황장애란 정신질환에 걸립니다.

저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는 데 오래 전 싱가포르로 떠날 때입니다.

아마 낮선 곳에 대한 걱정에다 영어 소통이 안되는 데 압박을 심하게 느꼈나봅니다.

가슴이 답답한 정도가 심해서 터질 것 같은 데 정말 그런 두려움과 무서운 압박감은 처음 느껴봤습니다.

내 스스로 컨트롤이 안되는 감정이더군요.

두 세 차례 그런 증상이 있었는 데 믿음이 없으면 정말 힘들 뻔 했습니다.

심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다들 평안하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래도 야곱은 위기를 모면하려 정신을 수습하며 두 번째 전략을 세웁니다.

두 번째 전략은 7절에 모든 것을 두 떼로 나누는 일입니다.

에서가 와서 한 무리를 치면 나머지 한 무리는 피하겠다는 것이죠.

4백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달려든다면 아내와 자식들이 무슨 수로 피해 도망갑니까?

가망 없는 전략을 세우고 비로서 야곱은 9절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일이 터지면 우리가 하는 행동과 순서가 비슷합니다.

먼저 직접 일을 해결하려고 머리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끙끙거리며 온갖 궁리를 합니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시원찮고 점점 문제가 압박해 오면 그 때서야 정신이 들어 간신히 기도를 시작하죠.

그때라도 기도를 해야 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 길을 인도해오신 분이 하나님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감사도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에서의 손에서 나와 내 처자를 구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를 참 잘했죠?

그런데 야곱이 하나님께 기도를 잘 했는 데 응답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위기에 빠진 야곱의 기도에 아무 응답이 없으십니까?

하나님은 이미 응답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미 안전한 귀향을 약속하지 않으셨냐는 것이죠.

눈 앞에 위기가 있을 때 마다 또 묻고 또 응답을 요구하고 또 징표를 구하는 게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기도의 내면에 있는 믿음을 보고 계십니다.

지금 야곱에겐 하나님에 약속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필요한 단계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믿음은 불확실한 현재에서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나가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말합니다.

설령 우리 소망한 대로 기대한 대로 일의 열매가 없을지라도 그것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최선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내가 믿어드리는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의 한재0 선교사는 아내 김진0 선교사를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필리핀에서 4년 사역을 마치고 카자흐스탄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확신하며 힘겹게 사역지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집 주위를 배회하는 수상한 사람들이 마음에 걸려 문단속을 잘하라고 말했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오전에 얼른 볼일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문을 열었더니 괴한이 흉기를 휘두르며 뛰어나왔습니다.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들어갔으나 이미 아내는 괴한에게 둔기로 맞고 칼에 찔려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입니다.

힘들게 헌신한 선교사역 중 아내의 순교가 들어있으리라고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어린 두 딸을 키우며 다시는 카자흐스탄으로 가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지만 하나님은 몇 년 후 그를 다시 아내가 순교한 땅으로 부르셨습니다.

아내의 순교의 피를 흘린 그 곳에서 반드시 열매를 거두겠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 아직도 마르지 않은 눈물이 쏟아지는 걸 보았습니다.

그래도 그의 입에서 아내는 가장 행복한 여인 같다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아직 우리에겐 우리의 고난을 다 해석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때로 눈물과 고난을 통해 이뤄진다 해도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어 역사하시는 주님을 신뢰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아버지 만큼 나를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기도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평강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걸어가는 게 믿음의 길입니다.

빌립보서4장6절이 그것을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때가 이를 때 우리의 필요와 간구에 반드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어떤 위기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우리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리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침묵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야곱은 서둘러 마지막 전략을 씁니다.

이번엔 뇌물로 형의 마음을 좀 누그러뜨려 보자는 것이죠.

처음에는 어떻게든 재산을 지켜보려했지만 결국 막대한 양의 재산을 떼어서 에서에게 헌납하고 맙니다.

사실 잃지 않아도 될 재물을 잃어버린 것이죠.

어차피 하나님은 약속대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야곱의 길을 안전하게 인도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야곱의 삶을 통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게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과 명석함이 있더라도 우리 삶을 하나님과 의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때로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야곱이 자기의 계략으로 에서의 장자권을 따낸 것도 그렇습니다.

물론 형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 된 장자의 명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불신의 사람입니다.

힘 있고 능력이 있는 그는 두려운 게 없는 데다 아버지 이삭의 인정까지 받았습니다.

원하는 대로 아내도 취하는 데 성경에 보면 당시 장인어른이 최초의 온천을 발견했으니 떼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왠지 그의 주변엔 돈이 막 따라다니는 사람이었죠.

하나님의 축복이 더 필요치 않았던 사람이죠.

그러나 둘째로 태어나 재산 상속에서 불리했던 야곱은 게다가 아버지의 인정 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타고나길 악착 같고 기질적으로 꾀가 많았던 야곱은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항상 약삭빠르고 이기적으로 머리 쓰는 사람을 대부분 싫어하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의 앞 날을 위해 에서의 장자권이 탐이 났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어 축복의 계보를 잇게 될 것은 이미 어머니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야곱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속여서 뺏은 것이죠.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이 하시게 기다리십시오.

그는 속이고 장자권을 얻었지만 도망자가 되는 바람에 결국 아버지 재산은 다 에서 손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피눈물 나게 모은 재산을 지금 뚝 떼어 에서에게 또 갖다 바친 것입니다.

그게 어떤 재산입니까?

야곱이 말하길 양 한 마리 잡아먹지 못하고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며 모은 재산입니다.

우리가 내 머리와 내 지식만 믿고 앞서가면 아무리 잘 된다 해도 하나님의 계획에는 절대 못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장자권 약속을 믿고 진득하게 기다렸다면 그의 20년 인생이 그렇게 고단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물론 하나님이 주신 모든 능력과 은사를 부지런히 사용해서 살림도 일구고 가정도 세워야 합니다.

미래와 직장도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축복인 줄 믿습니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께 범사를 기도로 의논하시길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이 대답이 없으신 것 같지만 다 듣고 계십니다.

반드시 우리 기도대로 직장과 학업과 진로를 인도해 주시고 우리 가정을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다음은 얍복강에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야곱과 씨름하신 하나님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여기서 끝나면 안되죠.

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아직 야곱에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일은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 자기 꾀를 내서 대처할 뿐이었죠.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고 부르실 때 치밀하게 계획하시고 연단하십니다.

훌륭한 트레이너일수록 섬세한 프로그램을 갖고 끈기 있게 선수를 훈련하죠.

트레이너를 잘 만나야 탁월한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10여년 전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클린턴이 대통령이던 시절 영부인 힐러리여사와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갔습니다.

힐러리 여사가 주유소 사장을 가리키며 초등학교때 친구라고 소개했습니다.

클린턴이 우쭐대며 힐러리에게 말합니다.

나랑 결혼한 게 당신에겐 얼마나 행운인지 알겠지?

힐러리가 역습합니다.

내가 저 남자랑 결혼했으면 지금 대통령은 당신이 아니고 바로 저 친구일 걸요?

하나님은 우리를 최고로 만드시려고 훈련하고 연단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것은 더러운 죄의 습성대로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뒹굴라고 하신 게 아닙니다.

우리를 정금과 같이 아름답고 빛나게 연단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죠.

우리에게 다 야곱기질이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같은 우리 기질을 다루셔서 고치시길 원하십니다.

야곱은 마지막 방책을 강구해 놓고 모든 식구들을 얍복강으로 건너가게 하고 혼자만 남습니다.

혼자 남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너무 고통스럽고 고민으로 죽을 지경일 때 모두가 다 귀찮고 짐이 될 뿐이죠.

내 약한 모습, 내 상한 마음을 보여주지 않고 얼른 혼자 있고 싶은 딱 그 심정으로 야곱은 깜깜한 얍복강가에 주저 앉아 있었습니다.

이 때 우리 주님께서 야곱을 찾아 오십니다.

이런 위기 때 마다 주님이 우릴 찾아오시지 않으면 우린 정말 최악의 상황을 맞았을지 모릅니다.

주님이 야곱을 붙들고 그와 씨름을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날마다 우리와 씨름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 고집과 불신과 원망과 나쁜 기질을 벗겨내려고 날마다 우리와 옥신각신 하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야곱은 자신을 붙들고 제압하려는 낮선 사람을 향해 악착같이 방어하며 달려듭니다.

안간힘을 쓰며 죽을 힘을 다해 몸싸움을 하던 야곱이 상대가 누구인지를 차츰 깨닫게 됩니다.

여기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는 성육신하시기 전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과 똑 같은 분이십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붙들고 몸싸움을 한다면 주님의 마음과 인격을 알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야곱은 낯선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순간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겨루실 땐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과 과오가 보입니다.

아버지도 형도 외삼촌 식구들도 다 싫어했던 이기적이고 교활한 자기가 보이지만 보기 싫어도 차마 버릴 수 없는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 자신을 도저히 바꿀 수 없다고 끝까지 주님께 달려듭니다.

그런데 결국 야곱은 이기고 하나님이 지십니다.

우리 죄된 본성이 얼마나 질긴지 결국 하나님도 이겨먹는 것입니다.

주님은 스스로는 버릴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죄성에 갇혀 몸부림치는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꺽으십니다.

매를 들어 자식의 기질을 다스리려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악이 받치고 독이 올랐을 때 길길이 뛰던 아이가 엄마의 아픈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나면 와앙 울어버리며 상황은 끝이 나죠.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못된 성질을 누가 좀 꺽어주길 바랐는지 모릅니다.

호세아12장에서 이 씨름을 해석합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야곱은 환도뼈가 끊어지고 도망 갈 수도 없게 되자 울며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달라고.

자신이 추구했던 복이 평생 고단한 싸움과 끝도 없는 시련일 뿐임을 깨달은 야곱은 비로서 울면서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얍복강에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야곱의 기질을 꺾으시길 원합니다.

내가 추구하던 이 땅에 갈증나는 복, 변질 되는 복이 아닌 영원한 하늘의 복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냅니다.

9절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은 이제 야곱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주님이 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한 판 씨름을 벌이셨을까요?

야곱에게 너무 잘 맞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야곱을 가르치실 때 최고의 방법은 그냥 그의 기질이 다 나오게 몸싸움을 하면서 깨닫게 하는게 아닐까요?
야곱을 불러놓고 조근 조근 얘기해선 약삭빠른 그가 요리 조리 빠져나갈 변명만 늘어놓기 쉽상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실 때 정말 우리 기질에 꼭 맞는 방법으로 훈련하시는 것이죠.
왜 나만 이렇게 힘든 방법으로 다루시냐는 게 어리석은 우리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얍복강가에 다가오실 때 나의 하나님을 만날 기회인 줄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만지실 때 우리의 죄가 드러나고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내 자신이 싫어도 참 우리가 잘 안 바뀝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환도뼈를 치시며 우리를 훈련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날마다 순종하며 겸손히 나갈 때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우리의 끈질긴 죄성과 기질을 바꾸시며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는 눈에 보이는 야곱과 에서의 싸움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삶의 배후에도 영적싸움이 있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항상 영적으로 깨어있고 신앙생활에 관심을 갖고 영적 실력을 갖추어 가시길 축원드립니다.

야곱을 위기에 몰아 넣은 사건은 야곱의 기질과 불신앙으로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닥치는 어려운 문제들 역시 인간의 죄의 결과인 세상에서 불가불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모든 악한 자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 길을 축복하고 축복해 주실 줄 믿으시고 더욱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