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생명의 성령의 법-첫째 날 (로마서8장1절-11절)

남수연 2012. 8. 3. 11:36

 

수련회 첫 째 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부터 주일까지 로마서8장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을 읽으셨지만 어떤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나는 내용이 별로 없으시죠?

요셉이나 다윗의 생애 그런 내용들은 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사도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아무래도 이야기식이 아니라 좀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들을 논리적으로 구성해 놓은 아주 소중한 성경입니다.

마틴 루터는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확신을 얻고 카톨릭에 대항한 종교개혁을 이루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성경의 여러 말씀들을 통해 꽤 많은 영적인 지식들을 갖게 된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로마서의 말씀들은 그 영적 지식들을 한 줄로 꿰어서 목거리를 만들어 놓은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해만 잘 하신다면 막연하고 추상적이었던 우리 믿음이 모습을 갖추고 제법 체계적인 신앙을 갖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는 제목대로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 보낸 편지란 뜻입니다.

로마교회는 바울사도가 직접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중동지역인 예루살렘에서 시작 된 기독교의 복음이 어느새 유럽의 로마까지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져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도 그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을 세워주기 위해 깊은 애정을 갖고 그의 서신들 중 가장 긴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기독교인을 만나게 되면 마음이 통하는 걸 느낍니다.

제가 싱가포르에서 수술을 받고 잠시 싱가포르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았는 데 그 분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외국인을 대해 보면 그 감정도 생각이 잘 전달이 안되서 그야말로 이방인이란 걸 느끼게 되죠.

그런데 잘 되지도 않는 엉터리 영어로 서로 믿음에 관련 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우리가 신앙얘기 하는 거하고 똑 같이 마음이 통하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은 단 하나인 주님의 교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항상 우주적인 주님의 교회에 대한 소속감을 우리가 깨닫고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한 줄씩 해석해 가며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말씀은 엄청난 선언을 하고 있는 데 실감이 나지 않으시죠?

마치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람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말씀 속에서 바울사도의 감격과 격앙 된 기쁨이 느껴지시나요?

간단히 말씀하자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아닌 우리들은 이 선언이 사실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법률적인 죄를 지은 사람만 죄인이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좀 더 양심적인 사람은 도덕적이거나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 정도까지 죄라고 생각하겠죠.

하나님께 대한 죄가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 벽에 부딪히는 게 우리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원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왜 내가 죄인이냐고 묻는 데 그걸 설명하기가 몇 문장으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나 유대인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통해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어기면 그게 바로 죄입니다.

간단히 십계명을 생각하면 됩니다.

십계명의 정신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의무와 인간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없죠.

그런데 이것을 어길 시엔 하나님의 백성에서 탈락되고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기의 죄를 대신해서 깨끗한 동물을 잡아 제사를 드리면 됩니다.

죄를 지을 때 마다 또 동물제사를 드려야 하니 지긋지긋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죄도 면죄된다니 얼마나 폭탄선언입니까?

바로 1절 말씀이 이런 배경으로부터 나오는 감격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더 이상 죄를 지어도 양이나 염소를 사러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말씀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죄를 지적당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그가 매일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죄가 분류되어 차곡 차곡 하나님의 법정에 기록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지구와 온 우주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이 사람들의 잘잘못을 판단하고 위법에 따른 형량을 부과하는 것이죠.

아무리 이 땅의 법에 걸릴 죄가 하나도 없이 살았다 해도 그가 죽은 다음은 하나님의 법정에 나가 하나님의 법대로 판결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이치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술집에서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이 에이, 하나님이 있긴 어디 있어,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지 라고 했다면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법에 딱 걸린 것입니다.

그 순간 죄목이 자동 기록됩니다.

우리나라도 한 때 대통령모독죄란 것이 있었죠.

한 남자가 청와대 앞을 뛰어다니며 외쳤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바보다, 대통령은 바보다.

이 남자는 즉시 체포되어 21년 형을 언도받았습니다.

죄목은 대통령모독죄1년, 국가기밀누설죄20년 도합21년^^

만일 집까지 차로 몇 번 바래다 준 회사 동료와 어느 순간 묘한 감정이 생겼다면 그 즉시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에 딱 걸리는 것입니다.

하루 중 하나님의 법을 어길 때 마다 누군가가 휘슬을 불어준다면 아마 귀가 쟁쟁하게 울릴 만큼 시끄러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보다 심각한 죄 속에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도 꽤 많은 죄목들이 하늘나라 법정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두 다리 쭉 뻗고 잠만 잘 잡니다.

왜냐하면 오늘 1절이 선언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이 죄에 대한 정죄와 심판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결단코 나를 죄인으로 판결해서 형벌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죽은 다음 하나님의 법정에 설 때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남수연, 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니 무죄다. 땅땅땅!

할렐루야!

바울사도가 기록한 1절이 바로 이런 환희에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다 용서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대신 죄의 값을 다 치르시고 고통스런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실감이 잘 나지 않으시나요?

아직 우리 죄에 대한 자각이 부족해서 그런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그 행동들이 바로 죄 때문에 그런 거라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처음 시작한 우리 성도님들에겐 아직 죄에 대한 자각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가 되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온유하고 부드럽게 우리에게 그것들을 설명해 주십니다.

가령, 너 아까 네 아내에게 그런 말 한 것 사과하면 어떨까.

마치 내 생각인 것 같지만 대부분의 신앙적이고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생각들을 다 성령께서 하시는 음성입니다.

이 사람이라면 아마 죄에서 용서받은 게 실감이 날 것입니다.

1970년대 살인마 김대두도 회개하고 천국에 갔습니다.

이 사람은 55일 간 17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여서 세상을 놀라게 한 잔혹한 살인범이었습니다.

교도관들도 어찌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성경을 넣어주면 찢어버리고, 성경책장을 뜯어서 벽에 발라 도배를 해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할 일이 워낙 없으니까 누워 있다가 벽에 발라놓은 성경을 자기도 모르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읽은 성경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면서 김대두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희대의 살인마 김대두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성경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이런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도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죽거든 제 시신을 다른 사람의 몸을 위해 안구든 어떤 기관이든 필요한 사람에게 빼서 주십시오"

다른 사람의 심장에다 칼을 박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몸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할 말이 없는가?"라는 집행관의 질문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주님을 믿고 구원받게 해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하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때 사형을 참관하던 목사님이 누가복음 23장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사형수 김대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큰 소리로 '아멘'을 외쳤고, 찬송가를 부르며 평화롭게 천국으로 갔습니다.

김대두가 감옥에 있을 때에 죄수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변화된다 하더라도 김대두는 절대로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감옥을 떠나 사형장으로 갈 때 죄수들은 창살을 두드리며 《예수, 예수, 예수》라고 외쳤답니다.

김대두는 감옥에 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전도하고 회개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김대두에게 왜 17명을 죽였냐고 절대 물으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 안에서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43장25절은 말씀합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꼬치 꼬치 캐물으시고 그 다음에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면 우리가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기억도 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게 잘 안되죠.

상대방이 내게 섭섭하게 한 것 세월이 가도 절대 않 잊고 있다 언젠가 반드시 써먹죠.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뭐 아무렇게나 살고 회개하면 되겠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네,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예수님을 믿고 받은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해 바울사도는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 고통당하는 그 분이 바로 내 죄를 씻기 위해 피 흘리고 계시다는 것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렇게 막 죄를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죠.

물론, 여전히 우리의 죄성에 끌려 크고 작은 죄를 안 지으려고 해도 짓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죄 조차도 회개하는 순간 예수님의 보혈이 깨끗하게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게 바로 요한일서1장9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다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죄 값이 해결되었지만 그것이 인간관계에서 일어난 일이면 반드시 이 세상 것으로 갚아야 합니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0 아들의 유괴범이 자신은 하나님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았다고 천사같은 얼굴을 하는 바람에 전도0이 뒤집어 진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항상 성경을 잘 해석하고 적용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형제하고 싸우고 예배드리러 왔으면 가서 화해하고 돌아와서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의 물건을 훔쳤다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국법을 어기고 죄를 짓는 다면 이 세상 법정에서 구속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나 선악간에 우리를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정죄를 받지 않는 이유를 2절에서 말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두 개의 법이 나옵니다.

첫 째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고 둘 째는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서 살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해 영원한 죽음을 맞을 수 밖에 없는 법입니다.

큰 일 났지요.

그런데 본절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다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 안에 들어와 먼저 우리를 지배하던 사망의 법에서 풀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3절과 4절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서 예수님의 육신을 죄로 정하사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실형을 받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으십니다.

아담의 범죄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재난이고 고통이었을 뿐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에게도 똑같은 고통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사람에게 주시고 잘 지켜서 구원을 받게 하시려고 해도 이미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놓인 육신이 그것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해내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복안은 심판받아야 할 인간의 모든 죄를 죄 없는 자기 아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죄를 위해 죽은 어린 양 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가 다 같이 십자가에서 죽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우리가 다 같이 죽어버려 죄와 사망의 법이 이제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서 어떻게 권리를 주장합니까?

그리고 성령으로 다시 거듭나게 하심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주관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 초대교회의 대부흥사였던 김익두 목사는 본래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이런 그가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된 후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기뻐했습니다

“그 놈 잘 죽었다!”하는 심정으로 장례를 구경하러 장례식을 치룬다는 장소로 찾아가 의자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모두의 마음엔 슬픔이 아니라 김익두가 죽었다는 사실 하나로 기쁨이 넘칩니다.

그런데 잠시 후 죽었다던 김익두가 걸어 나오며 하는 말이 ‘여러분 제 장례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참석한 사람들 혼비백산해 하며 난리가 났습니다.

이젠 정말 어떤 해꼬지를 당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사색이 되어 앉아 있는데 김익두가 입을 열어 말합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이제는 저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 태어난 김익두입니다.

그 동안 저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그 뒤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한 후 목사가 됐습니다.

이따금씩 옛 기질이 불쑥 되살아나려 할 때가 있었습니다마는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야, 이 죽은 김익두야!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아직 울려 퍼지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되살아나려고 하느냐. 아직은 때가 아니다. 더 죽어 있어라”

그러면서 끓어오르는 혈기를 삭혔다고 합니다.

말씀의 뜻이 잘 이해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 속했던 옛날의 내가 주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다음은 5절 6절입니다.

육신의 일과 성령의 일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내가 육신에 있는 지 성령 안에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것이죠.

육신은 아직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영을 따르는 자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말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어쩔 수 없이 육신의 일만 생각합니다.

영적인 일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이 땅에서 한 평생이 끝이고 눈에 보이는 세상이 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일은 육신에 속한 사람들에겐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참 답답하고 암흑 속을 더듬으며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삶의 목적도 인생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고 내가 어디를 향해 가는 지 모르기에 마음이 공허하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그러나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어디를 주로 향해 있냐를 생각하면 내가 육신에 속한 사람인지 영에 속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겠죠.

영의 일이란 하나님과 모든 것이 관련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땅에 영적인 세계가 함께 존재함을 알고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심을 압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끝에서 죽음의 문을 통과하면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시야가 얼마나 넓어졌습니까?

우리나라를 넘어 우주를 뛰어 넘는 천국의 공간까지를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비로서 깨달으니 절로 무릎이 탁 쳐지고 안개 속 같던 삶이 투명해지는 것이죠.

영의 생각은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을 줍니다.

 

그러나 7절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원어대로 해석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증오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히 증오하고 적극적이고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품는 다는 것입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고 대적하는 지를 강하게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인터넷상의 안티 기독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게섬찟할 정도입니다.

7절 뒷 부분에 보면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죠.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능력이 아예 없는 것이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는 죄인의 슬픈 현주소입니다.

 

9절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영에 있다는 증거는 바로 우리 속에 입주하고 계신 하나님의 성령이 십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없다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죠.

월남전에서 미국이 긴급히 철수할 때 호치민 공항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얻어 타고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섞여서 다들 초조하게 기다리는 긴박한 가운데 드디어 비행기가 한 대가 활주로에 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게이트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게이트를 통과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들은 미국 여권을 가진 사람들 뿐이였죠.

그들만 높이 여권을 흔들며 사람들 틈을 헤집고 게이트를 빠져나갔습니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장면입니다.

어떤 상황인지 아시겠죠?

겉으로 보기에 지금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거하는 사람만 천국게이트를 통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그리스도의 영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사도행전2장38절에서 베드로의 설교에 마음이 찔린 유대인들이 바로 이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어찌하여야 구원을 받을꼬

그때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미 우리가 성령을 받은 성도들인 줄 믿습니다.

10절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이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이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우리 몸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사망판결을 받은 상태로 태어나 죽어가는 몸입니다.

아무리 우리 영이 구원을 받았어도 이 땅에서 살다 육체의 죽음을 통과해서 하나님께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11절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저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을 부활시킨 하나님의 성령이 똑 같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그 하나님이 우리도 주님과 같은 영광스런 육체를 갖고 부활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지금은 보기에 초라하고 인품도 외모도 학벌도 배경도 보잘 것 없지만 장차 우리의 모든 것은 놀랍고 영화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망이 왕 노릇하는 세상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의 그림자조차 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사망을 향하여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성도들의 죽음은 잠시 잠깐의 잠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밤 우리가 잠이 들 때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내일 반드시 깨어날 게 확실한 데.

우리에게 확실한 내세가 있기에 죽음을 맞는 것 역시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문을 통과하는 것이죠.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죠?

그래서 성도의 권세에 지옥도 떨고 마귀도 결코 우리에게 손끝도 대지 못하는 줄 믿으시고 자녀의 축복과 영광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