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그리스도인의 삶(로마서12장1절-8절)

남수연 2010. 9. 13. 18:26

오늘 본문인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속하진 않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유대인이 아닌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선택 받은 제자입니다.

기록된 시기는 AD58년경으로 주님이 승천하시고 25년 정도 지났고 제자들의 복음 전도를 통해 많은 곳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을 때입니다.

로마교회가 바울의 전도로 세워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바울은 멀리 외국 땅 로마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로마로 가 형제들을 만나 교회를 굳게 세우고 신령한 은사들을 나누어 주기 원했습니다.

그 당시는 아직 신약 성경도 없었고 제자들이 목회하는 교회가 아니었기에 더욱 가보길 원했으나 갈 길이 막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가지 못하는 대신 편지를 써서 보내는 데 그것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로마서에는 1장부터11장 까지 이방인 이었던 로마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을 상기 시키고 본문인 12장 부터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다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구원 받는 것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성화되어 가는 과정이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죄성은 여전히 남아 있기에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조금씩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로마교회 성도들을 격려하는 사도 바울의 메시지는 곧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인 줄 믿습니다.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할 지를 분명히 깨닫고 결단하는 시간되시길 축원합니다.

 

바울은 먼저 그러므로 라고 말씀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으니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삶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죠.

첫 번째로 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입니다.

그동안 로마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 로마신화의 그 많은 우상들을 섬기며 죄의 종으로 살아왔습니다.

너희가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자의 종이 된다고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이미 못을 박았습니다.

죄의 종으로 너희를 드리면 사망에 이르고 하나님께 드리면 의에 이르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죠

그러니 당연히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에서도 신을 섬기기 위해서는 정성껏 준비한 제물이 필요합니다.

곧 민족명절 추석이 다가오는 데 집집마다 조상신을 섬기기 위해 차례 음식을 준비하지 않습니까?

전을 부치고 제수 음식을 만드는 옆에서 음식에 먼저 손을 댔다 핀잔을 받았던 기억들이 있으실 겁니다.

원시 종교에서는 최고의 제물로 인간을 바치는 인신제물이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구약시대 팔레스타인에서도 몰렉이란 신에게 자식을 불살라 바쳤던 인신제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가나안의 인신제물을 본받아 자식을 받쳐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에스겔 23장39절에 그들이 자녀를 죽여 그 우상에게 드린 그 날에 내 성소에 들어와서 더럽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남미의 잉카문명 아즈텍 문명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14세기 중남미에서 발생한 문명인데 태양신을 섬기던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가슴을 돌칼로 열고 심장을 꺼내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지속적으로 사람의 심장을 바침으로 그들의 역사가 멸망하지 않고 계속된다고 믿었습니다.

끔찍하고 무모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우리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니 조금 놀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로마사람들에게 짐승을 죽여 우상에게 바치는 제사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올 때 더 이상 다리를 놓아 줄 죽은 제물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제물이 되어 바쳐진 분은 예수님 한 분이시면 족합니다

에베소서 5장 2절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살아있는 너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 나에게 오라.

거룩한 제물로 내 안에서 하루 하루 살아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 예배는 우상 종교에서 처럼 다른 제물을 가져다 바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매순간 내가 제물로 드려져 있구나 생각하며 흠 없고 온전한 제물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며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우상을 찾아가 얼마간 성의를 표하고 숭배 하고 돌아와서 그것과 아무 상관도 없이 살아가는 그런 삶이 아닙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하다 하나님 앞에 내가 산 제물로 드려지는 모습을 떠 올리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도님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지는 모습으로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는지요?

혹시 우리 목에 줄을 매달아 성전 한 모서리에 걸어 놓는 모습은 아니시겠죠?

제가 본 모습은 뜻밖에도 포대기에 싸인 나를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겨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 아기를 안고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목에 끈이 매여 끌려가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아버지는 우리에게 너희 몸을 드리라고 할 때 무슨 우리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우리가 가진 하찮은 것들을 탐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 파렴치하고 가진 것 없고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영원한 기쁨과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 품에서 우리가 즐겁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다.

하나님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강보에 싸인 제물이다.

하나님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으니 나의 삶을 주님께 맡긴다.

참 이상하죠?

지난 한 주간 이 말씀을 묵상하며 너무 은혜가 되는 겁니다.

걸어가면서도 내가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제물이란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더라구요.

하나님께 드려진 물건에 누가 감히 손을 대겠습니까?

하나님께 나를 드렸다고 생각하니 정말 두려움이 없고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 말씀을 단지 나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의미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힘겨운 봉사와 헌신으로 허덕이며 고통하는 것만이 산 제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주 잠이 오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고 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께서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무조건 나의 나 됨을 포기하고 존재 가치를 잊어버리고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님이 그토록 사랑하는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주님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면서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자식이 자기를 비관하며 아무 것도 못하겠다고 할 때입니다.

차라리 수능 만점 받겠다고 큰소리 치고 객기 부릴 때가 더 낫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해주신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마태복음 10장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하신 것이 과장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하시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기쁨도 없이 주님을 따르는 것은 원치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었던 주님에 대한 헌신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주님을 더 사랑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는 걸어다닐 때 나는 거룩한 제물이다 라고 생각하며 한껏 자부심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 처럼 나도 나를 사랑하려 하니 또 얼마나 마음이 기쁜지 모릅니다.

00토스트 사장인 김00씨는 노점상으로 시작해 300개의 체인점을 가진 억대 연봉의 주인공입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김사장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만했습니다.

야채행상부터 세차장, 정비소 안 해 본일 없이 뛰었으나 삶은 여전히 궁핍했고 그런 가운데도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르고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의 월급으로 도저히 생계를 꾸릴 수가 없어 길거리에서 토스트가게를 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너무 창피해서 몇 번을 그만 둘 생각도 했으나 철저히 자신을 개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반가움의 표정과 상냥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여겨지도록 매일 거울을 보며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이 손에 솜씨를 주십시오. 손님들이 제 토스트를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제 토스트를 드신 손님들이라면 하는 일이 모두 잘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재료 하나를 쓸 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손님들이 토스트의 맛과 김사장의 진심을 알아보더라는 것입니다.

호텔 주방장 복장의 노점상 토스트 사장은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사업이 번창해 시간이 없고 아무리 피곤해도 그는 보육원과 교회를 돌며 인형극으로 봉사하고 독거노인들을 위한 먹거리 봉사를 계속합니다.

올해 봉사부자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김사장은 요즘도 매일 아침 이렇게 3뻐를 외치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내가 살아 있어서 기뻐

일이 많아서 기뻐

하나 뿐인 내가 예뻐

그의 경영철학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사를 만들자는 것과 크리스천으로서 교회와 일터에서 일치된 모습을 보이자는 것입니다.

빵을 굽는 일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한다는 생각과 매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고자 하는 김0봉사장의 모습이 곧 거룩한 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삶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

우리의 일터에서나 가정에서나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품에 안긴 거룩한 제물이라는 생각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피곤한 세상에서 쉼 없이 일하고 고통과 슬픔으로 상처 받은 나를 사랑하고 위로하시길 주님의 사랑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사도바울은 두 번째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이 당시 로마제국은 사치와 향락으로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폼페이라는 도시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로마인들의 휴양과 환락도시로 알려진 이 도시는 주후79년에 베스비우스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와 함께 3만명의 시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6미터가 넘는 화산재와 용암이 덮쳤고 나중에 지진이 나 땅 속으로 사라진 이 도시는 고대 문헌에만 존재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1700년대에 수도원 뜰에서 수로를 파던 인부의 곡괭이에 걸려 드러난 이 도시는 200년에 걸쳐 복원이 되어 사람들 앞에 공개됩니다.

화산재에 덮여 있었던 덕에 말로만 듣던 로마의 향락 문화를 그대로 복원시킬 수 있었습니다.

2만명이 규모의 거대한 원형경기장에선 날마다 검투사의 피를 보며 열광을 했을 것입니다.

요즘 호텔 사우나에 뒤지지 않을 우아하고 고급스런 사우나엔 마사지실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제단을 만들어 놓고 우상을 숭배했음이 발굴 과정에서 드러났고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는 벽화에는 타락한 그 시대의 신들과 인간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폼페이가 멸망하기 20여년 전에 바울이 이 서신을 로마에 보냈으니 문화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로마의 우상숭배와 포악과 광적인 군주국의 문화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식민지 정벌이 가져다 준 풍부한 물자와 노예들을 착취하며 향락과 무분별한 사치로 인간성이 피폐해진 도시였습니다.

원형경기장에 그리스도인들을 굶주린 사자 밥으로 던져 넣고 구경하며 환호했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의 연약한 성도들이 이런 사악한 풍조를 대적하며 믿음을 지킬 수 있을 지 걱정하고 염려할 수 밖에 없었겠죠.

그래서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사단에 의해 이미 정복 된 이 세대에서 오히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은 반드시 멸망당할 것이라는 겁니다.

향락의 도시 폼페이에 어느날 화산이 폭발해 비명 속에 최후를 맞이 했던 것 처럼 심판이 이를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에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이사야 선지자도 28장 2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 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대의 악한 풍습을 좇아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 세대의 풍조 뒤에 숨은 사악한 세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창세기 1장28절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인간은 땅을 정복하기는 커녕 땀 흘리고 수고해야 간신히 땅의 소산을 먹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기록된 말씀을 통해

우리가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이 세상을 사단에게 빼앗겨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사단의 영향을 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며 이 땅을 정복할 능력을 회복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가 로마교회가 존재하던 때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사단은 각종 문화와 예술이라는 명목으로 사람을 미혹합니다.

과학이라는 도구로 하나님을 부정하게 합니다.

스티브호킹이라는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가 있습니다.

32살에 최고의 명예인 왕립학회에 최연소 회원이 됩니다.

왕립학회회원이 될 때는 본인이 자랑스럽게 걸어나가 명부에 자기의 이름을 기록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21살에 루게릭병을 앓아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던 그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운반되어 온 명부에 간신히 자신의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블랙 홀과 우주론 등으로 유명한 그는 최근 우주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휠체어 완전 구겨져 담겨진 모습으로 앉아 하나님이 없다 말하는 노 과학자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눈을 치켜 뜰 힘만 있어도 하늘을 향해 하나님을 부정하고 싶은 존재인가 봅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명석한 두뇌로 증명되지도 못할 과학이라는 터무니 없는 가설로 수많은 영혼을 미혹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모르고 과학도 모르는 무분별한 사람들은 이것이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고 과학적 진리인 양 본받을 것이 뻔한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그 배후에 있는 세력을 놓치지 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

디모데후서3장3절에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둔다고 예언하였습니다.

매일 기도하며 영적 분별력을 구하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며 사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바울의 권면에는 교회에 대한 섬김과 봉사가 있습니다.

3절부터 8절까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분량에 따라 주님의 교회를 위해 섬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18절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가서 교회를 세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고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은 주님이 친히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대형교회부터 주민 70명이 전부인 섬마을의 작은 교회까지 모두 주님이 세우신 몸 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20장18절에 보면 이 교회는 주님의 피로 사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거룩하게 구별 된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시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천국의 삶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교회를 보호하시고 음부의 권세가 해하지 못하도록 돌보십니다.

그런데 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실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 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도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위해 사랑으로 봉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교회 중심의 삶을 살며 예배하며 주님을 위해 봉사할 때 우리에게 축복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출애굽기 20장 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복된 삶을 살려면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통계청이 약7만명 가량의 종교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8%이상이 종교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합니다.

그동안 한국 기독교를 부흥시켰던 성도들의 열정도 식어 40%의 기독교인이 일주일에 단 한번만 교회에 나가 예배에 참석한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10명 중 1명은 1달에 1,2번 교회에 출석한다고 합니다.

교회에 대한 봉사도 의무도 없는 것이지요.

청년부 때 하루가 멀다하고 교회를 찾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시대가 바뀌고 우리 삶이 그만큼 분주해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 중심의 삶은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이 세상과 죄의 공격으로부터 이길 능력을 주며 하나님 나라의 아름답고 풍성한 교제를 누리는 유일한 방법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가 아직 개척 초반기이고 성도님들의 집이 너무 멀어 주 중에 교회에서 뵙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고 염려스럽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대로 교회가 차츰 견고해 지면 성숙한 믿음과 성도간의 교제와 봉사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갖추어 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든 교회 중심의 삶을 살도록 애쓰시고 항상 기도하며 교회를 위해 섬기는 축복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삶이 축복받은 삶이라는 걸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크던 작든 성공적인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을 보면 그 선조 때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쌓은 섬김과 봉사와 기도가 남달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회적 업적을 이룬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봉사했던 사람들은 한결 같이 주님의 축복을 증언합니다.

보0상사라는 섬유업계의 대부 박0창 사장은 40년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입에 풀칠할 길이 없어 막막했던 20대 중반에 아무 일이나 좋으니 시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덜컥 주일학교 교사 일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원단 사업을 하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사용할 수 없는 불량원사를 가공해 1970년대 월남치마라는 선풍적인 인기 아이템을 만들었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의 성공신화 뒤에는 바로 이 40년 주일학교 봉사가 있었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주일학교봉사로 그는 위기마다 자기의 믿음을 추스릴 수 있었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 수 있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지미 카터(85) 전 미국 대통령은 학창 시절 때부터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했고 대통령 재직 중에도 교사 신분을 유지했다는 일화로 유명합니다.

퇴임 후에도 고향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0박 대통령도 한 때 주차봉사로 교회를 섬겼고 최고의 봉사가 주차봉사라고 말합니다.

칠순이 넘은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윤0원씨는 은퇴하고도 다시 자양교회 성가대 신임지휘자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한평생 교회 봉사 직분을 놓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 봉사가 하나님의 뜻이고 축복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아름답게 섬기고 봉사하도록 주님은 각종 은사를 주셨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각종 은사를 주셔서 봉사하게 하십니다.

가르치는 일로, 섬기는 일로, 혹은 위로하는 자로, 혹은 긍휼사역을 하는 자로 각 각 다른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섬기게 합니다.

저도 중학교 교사가 된 이후로 주일학교 중등부에서 오랜 시간 봉사하였습니다.

지친 몸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주일이 되면 좀 늦잠도 자고 싶은 데 주일 학교는 일찍 시작되잖아요?

학교 갈 때 보다 더 일찍 일어나 교회로 향할 때 힘들기도 했지만 작은 봉사에 충성 된 저에게 젊은 날의 서원을 기억하셔서 이렇게 목회자로 불러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중등부 수련회로, 기도회로 쫄쫄 따라 다녔던 우리 딸 서원이에게 지혜와 명철로 축복해주셨고 종의 사명을 주심은 하찮은 봉사에 대한 하나님의 과분한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가 주를 위해 드린 작은 냉수 한 그릇을 잊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1절에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권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하루 하루 거룩한 하나님의 제물임을 생각하며 주님과 함께 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축복인 줄 믿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성결되게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다보면 세상에서 뒤처지는 것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우리를 그런 마음이 들도록 미혹하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마십시오.

배후에 있는 악의 세력을 쏘아보며 대적하십시오.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을 때 오히려 우리는 시시한 자들이 아니요 태초에 우리에게 주셨던 이 세상을 정복 할 능력을 회복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은사를 따라 봉사하시길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쁨과 축복으로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