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 둘째 날입니다.
어제에 이어 로마서 18절부터 30절까지 말씀을 해석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8절에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교회 성도들에게도 바울사도에게도 현재 고난이 있다는 말씀이죠.
인생에서 어떤 고난들을 감당하며 여기까지들 오셨는지요?
제 경우는 어린 시절 가난의 고통이 인생의 그림자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낭만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어린 시절 가난은 남에겐 참 창피했고 나에겐 참 무서운 존재감이었습니다.
또 처음 교직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빚 보증으로 인해 재정적인 고생도 했습니다.
결혼 생활에 따른 여러 가지 마음고생도 겪었고 수술로 장기 하나를 떼어내기도 했습니다.
전에 같이 근무하던 여선생님 중 수술로 비장을 떼어낸 분이 있으셨습니다.
둘이 만나면 나이 들어가니 장기도 하나 씩 사라져 간다며 우수개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고난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혹시 있다면 그건 인생을 너무 과소평가한 인생에 대한 모독입니다.
재벌 부모를 두고 생활과 미래에 대한 염려가 없다 해도 불화와 질병과 사고의 고난에서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헬스클럽 다닌다고 다 건강합니까?
건강도 노력한다고 지켜지는 게 아닙니다.
부와 명예를 거머 줬던 케네디가의 자식들이 얼마나 많이 사고로 요절했습니까?
케네디 자신은 달라스에서 암살되었고 동생 로버트 케네디 역시 대통령선거유세 중 암살당합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장남은 비행기 사고로 실종되었고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 역시 약물과다 복용으로 숨졌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형과 누이동생 역시 비행기 사고로 죽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우리나라 삼성가의 딸도 현대가의 아들들도 사는 게 고통스러워 죽겠다고 목숨을 버리지 않았습니까?그러니 인생이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고난과 맞대결을 벌일 각오를 하고 가는 것입니다.
고생을 생각만 해도 위축대고 싫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18절에서 복음을 위해 헤아릴 수 없는 고난을 당한 노사도의 담대한 진술이 흘러나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바울사도 역시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시기를 바울사도가 로마 감옥에 2차 투옥되었다 잠시 풀려난 때라고 봅니다.
아마도 그의 마지막 3차 전도여행 중이었고 여전히 박해와 고난이 그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편지를 받을 로마교회에도 몇 년 후 불어 닥칠 폭군 네로황제의 잔인하고도 무자비한 박해를 암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혼탁하고 다원화 된 세상에서 믿음을 갖고 살기 위해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과 불이익 정도는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죠.
런던올림픽이 시작되었죠.
올림픽을 대비해서 선수촌에서 훈련하는 대표선수들의 모습을 보니 참 안되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자 유도선수들은 남자후배들과 대결하며 땀을 비오듯 흘리는 걸 보았습니다.
매일 무거운 역기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장미0란 선수의 험한 손이 얼마나 안쓰럽습니까?
체조요정 손연0재는 또 얼마나 어린 학생입니까?
그런데 에어컨도 없는 텐트 연습장 과일식사를 하며 8시간씩 지옥사우나 훈련을 다녀왔더군요.
모두 금메달의 영광을 바라보기에 그 고통스런 훈련을 감당해 내는 것이죠.
바울사도가 그 고난 가운데 목숨을 내 놓고 복음을 전파한 것도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이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눈에는 이 땅에 모든 가치를 다 바쳐도 아까울 것 없고 오히려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하늘의 영광스러운 삶이 보였던 것입니다.
실제 바울사도는 천국에 다녀온 사람입니다.
그는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영광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기에 사는 것보다 죽은 게 더 낫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분명히 가장 큰 영광을 하나님 앞에서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의 고난과 단지 나와 가족을 위한 일상의 고생으로 헉헉대며 살아가는 우리를 비교하기도 부끄럽죠.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을 위해 받는 고난에만 면류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우리를 괴롭게 하는 소소한 시련과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주실 천국을 바라보며 불평 없이 잘 감당하는 것 또한 아버지께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평범한 성도들이야 얼마나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습니까?
대부분 내 잘못과 내 미성숙과 복잡한 환경에 얽혀서 받는 어려움들이죠.
그러나 이런 우리의 고난일지라도 하나님과 관계없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 중에 있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시는 줄 믿습니다.
누구나가 겪어야 하는 삶의 시련도 믿음으로 잘 감당하면 믿음의 맷집도 생기고 영적 근육도 생겨 어느새 강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늘 불평하며 고난을 통과한다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영적 유익도 없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종착역에도 바울사도와 같이 영원한 천국의 영화로운 삶이 있음을 확신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아멘.
19절부터 22절 까지는 이 땅의 모든 피조물도 탄식하며 장차 올 영광의 날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최근 세계적인 기상이변으로 땅이 갈라지고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자연도 탄식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죠.
인간의 탐욕과 과도한 소비가 결국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연의 역습을 받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잘 관리할 사명을 가졌던 이 아름다운 자연세계가 사람들의 죄로 인해 그 찬란함을 잃고 함께 탄식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도 심상하게 보아지지 않습니다.
난개발로 깎여나가 붉은 흙이 드러난 모습을 보면 꼭 사람들 상채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나더군요.
유출 된 기름을 덮어쓰고 죽어가는 새들을 볼 때도 그렇죠.
이 땅에서 피조세계도 그 영광스럽던 아름다움을 잃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무조건 비인격체로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물박사로 유명한 일본인 에모도 박사라고 있는 데 재미있는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한 번은 밥 두 그릇을 두고서 한 쪽 밥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수시로 말해줬습니다.
둘째 그릇을 보고는 “밉다. 너는 싫다”
보름 동안 그렇게 하고 난 다음 보니까 첫째 밥그릇은 아름다운 누룩이 되어서 향기가 훨훨 났지만 둘째 밥그릇의 밥은 썩어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자녀들을 향해 가족들을 향해 긍정의 말, 믿음의 말로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자연은 풀 한포기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로 인해 아름다움이 파괴되고 흉측한 모습을 보이게 되니 피조물도 싫어서 탄식하는 것입니다.
바다가 파도치며 일렁이며 얼마나 장엄하고 멋집니까?
창조 때 하나님께서 파도가 해안선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경계를 정해주셨습니다.
욥기38장11절에 이르시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그런데 자연의 순환계가 파괴되니 파도가 막 쓰나미가 돼서 자연과 인간을 공격하게 되니 어떻게 그걸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까?
바울사도는 우리가 영광을 회복할 때 모든 피조세계도 창조의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바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셨던 파괴되고 변질되지 않은 에덴의 그 아름다운 피조세계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23절에 그 뿐 아니라 또한 우리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매일 부족한 모습으로 죄도 짓고 의심도 하며 살지만 그런 내 모습에 속으로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이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인간성의 존엄이 상실되는 이 땅에서 살며 심령이 상해 탄식하게 되는 것이죠.
최근 일어나는 잔혹한 범죄들이 도대체 다 뭡니까?
좀비인간은 또 어디가 잘못 되서 그렇게 사람들 얼굴을 물어뜯는 답니까?
요즘은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나고 거북합니다.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영광스런 날을 고대하고 우리 몸이 영화롭게 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 사람들도 마음 깊이 죄와 고통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겉보기에 참 화려하고 사람들을 현혹하지만 사막의 신기루와 같다는 걸 다 느끼지 않습니까?
모래 위에 지은 누각처럼 타락한 세상 것을 긁어모아 지은 가정들이 흔들리고 삶의 목적을 잃고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현란한 야경을 보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나이드니 입 맛도 평준화 되는 것 같더군요.
이 세상 문화만으로는 더 이상 우리 영혼에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재충전하기 위해 떠났던 휴가의 즐거움이 얼마나 지속되던가요?
파김치가 돼서 돌아오면 여전히 피곤하고 지겨운 일상이 휴가 전과 똑같이 우리를 갑갑하게 하죠.
세상 사람들도 깊은 한숨을 내 쉬며 누가 이 고통스런 인생에서 살 길을 좀 보여주길 갈구하는 것입니다.
지혜서인 잠언은 사람 마음 속의 깊은 탄식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언 14장 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구원받고 성령을 받은 우리도 육신의 한계와 죄악 된 세상에서 탄식하며 간절히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가시가 우리를 찌르고 왜 이리 내 삶이 고단한지는 이 세상에서는 당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오실 때 주님의 영광의 몸 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히 회복된 새 하늘과 새땅에서 기쁨을 누릴 것을 고대하며 소망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고 24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증거를 믿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다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소망하라고 바울사도는 권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인내하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들입니까?
우리 힘만으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감당할 수 없기에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해 직접 기도를 해 주신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죄악 된 세상에서 탄식하며 고통당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 우리 안에 계시는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고난과 인내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은 모른 채 겨우 기도해도 당장 눈에 좋은 것을 구한다는 것이죠.
지금 좋아보였던 그것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우리 한계 아닙니까?
우리가 얼마나 엉뚱한 짓을 하다 함정에 빠지는지를 좀 보십시오.
분당에 사는 제 친구가 있습니다.
한 때 천당 다음이 분당이라고 할 만큼 선망하던 그 때에 살고 있던 아파트가격이 두 배로 급상승했습니다.
분당 중에서도 부자들만 모여 산다는 정자동 주상복합단지에 12억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계속 값이 오르고 있던 때인지라 빨리 사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반 이상을 대출을 받아 구입을 했습니다.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서 갚으려 생각했던 것이죠.
그때는 자고나면 아직 아파트 값이 오르던 때 였거든요.
그런데 급속한 부동산 침체로 갑자기 매매가 뚝 끊겼고 주상복합은 값이 폭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매달 이자를 5백만원 씩 내며 버티고 있습니다.
참 안됐더군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좀 더 신분이 높은 사회를 갈망했지만 엄청난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달라고 떼를 쓰는 게 우리에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아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정작 나와 우리 가족에게 다급한 것이 있는 데 기도로 준비하며 대처해야 할 것이 있는 데 그것은 모르고 엉뚱한 것만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성령께서
탄식하며 기도해 주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뜻대로 기도하지만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해주십니다.
우리 기도가 속히 응답되지 않는 것이 어쩌면 하나님의 뜻과 너무 달라서 인지도 모릅니다.
성령께서 반대로 기도하고 계시니 어떻게 내가 달라는 게 응답이 되겠습니까?
성령께서 해주시는 기도가 진짜 우리에게 유익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기도를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깊은 기도를 하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기도가 나오기도 하고 처음 구하던 것과 다른 것을 구하고 있는 것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마음껏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하면 성령께서 우리 기도를 인도해 주시고 또 진짜 필요한 좋은 것을 구해주시는 게 우리의 빽이고 비빌 언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도 안되는 거, 아무 느낌도 없고 할 말도 없는 거 뭐 하러 하나 생각하지 마시고 날마다 꾸준히 기도의 훈련을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어느새 성령께서 우리 기도를 인도해 주셔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줄 믿습니다.
28절입니다.
우리가 아주 좋아하고 잘 아는 말씀이죠.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의 신앙경험이 오래이건 아니 건 나름대로 하나님의 이런 선하신 인도에 대한 체험들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란 말씀 안에는 좋은 것도 불편한 것도 기쁨도 슬픔도 다 그야말로 어떤 것이든 성도들에게는 결국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낸다는 것입니다.
전SBS 예술단장인 김정0 장로님이 대학시절 미8군 연주자로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미8군 아르바이트는 대학생들에게 선망이었고 조용남이나 패티 김, 윤복희씨 같은 가수들이 다 이 무대를 발판으로 컸습니다.
최고의 명문대학에 다니고 못 다루는 악기가 없었던 김단장은 자신 만만하게 오디션을 보았습니다.
될 확률100%니 앞으로 술값과 당구비는 다 책임지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디션장의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악보가 하나 주어졌는 데 익히 아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였습니다.
이쯤이야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악보를 훑어 보는 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악보 상단에 원곡의 F키가 아니라 A플랫으로 조가 바뀌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등짝에서 식은 땀이 흐르고 연주를 시작한 지 30초도 되지 않아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한남동에서 이문동까지 걸어오며 참담한 기분에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하고 감정을 추스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교만한 눈과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겉 멋이 잔뜩 들은 부끄러운 자신이 보였습니다.
그날로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서점에서 구입한 악보집을 밤낮으로 연습해 즉석에서 조를 옳기고 자유롭게 모든 키를 넘나드는 연습을 완벽하게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미8군을 떨어진 것이 그의 연주실력을 독보적으로 끌어올려 준 것이죠.
그는 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또 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5년 전 분당샘물교회의 아프간 선교팀의 인질 사건으로 배형0목사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아버지인 배장로님은 제주의 교회에서 아들의 사망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들의 몸에 난 7군데 총상을 바라보며 그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었습니다.
순교5주기를 맞아 그 분이 처음으로 언론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지났다고 먼저 말씀하더군요.
처음1,2년은 하나님이 왜 형규목사를 그리 빨리 데려가셨나,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고 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아들의 유품을 하나 하나 살펴보며 아들의 일기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잘 몰랐던 아들목사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게 되었죠.
그가 얼마나 영혼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졌는 지.
자신이 장로이긴 하지만 믿음도 사랑도 부족하니 형규목사 같은 사랑을 주시길 기도하던 중 난생 처음 자기를 포근히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고 합니다.
그 분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예요. 합력해서 선을 이루십니다.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의미는 각자의 신앙의 깊이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의 입술에서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일을 망쳐놓아도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에서부터 우리를 위한 최상의 계획을 시작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어떤 슬픔 속에 빠져 있어도 하나님은 그 순간부터 놀라운 회복의 계획을 시작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한 숨이 가시지 않고 끝없이 계속되는 이 고통스런 문제들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29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부르신 이유는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믿음의 삶을 살고 있다면 어제 보다 오늘 조금 더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 믿음이 매일 그 타령이고 어제나 오늘이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에서 돌고 있는 것 같지만 일년 전의 나와 지금을 비교해 보십시오.
어느새 우리 믿음이 제법 탄탄해져가고 있다는 걸 다 느끼실 것입니다.
분명히 어느 순간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 것 같았는 데 어느새 일어났습니다.
한 번 넘어지고 나면 걷던 믿음에 좀 더 속도가 붙은 것 같고 가끔씩은 제법 점프도 하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
제가 확신하건데 우리 성도님들 모두 아름답게 성장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인격에서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닮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믿음을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은 성도들이 많으십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인격과 아버지를 향한 믿음과 순종이 어떤 것인지를 계속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은혜를 주셔서 말씀을 깨닫게 해주실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인품을 점점 흠모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와 오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은 어느새 그 사람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간 하나님을 대면하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 세상얼굴과 전혀 다른 광채가 났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세의 속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 그 영광의 빛이 우리에게 투영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는 주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우리가 인격의 훈련과 노력도 좀 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40대 부부를 대상으로 부부의 신앙생활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문항 중에 “배우자의 신앙에 대한 평가”를 하라고 했는데 전체 152명 중 배우자의 신앙이 ‘성숙한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4명밖에 없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4명이었습니다.
‘부족하면서도 노력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124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통계가 어쩌면 한국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세상의 판단을 받고 있는 게 무엇때문인지를 말해주는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셨음을 기억하고 늘 우리 삶에서 예수님의 삶을 배우고 진실한 마음으로 따르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마지막 30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단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29절 대로 우리를 아셨다는 것입니다.
시139편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가 세상 밖에 나오기 전에 이미 아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구원을 예정하셨습니다.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하신 우리를 주님 앞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긴 계획을 갖고 치밀하게 다가오셔서 우리 마음의 문빗장을 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적용시키시고 믿는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도록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아멘.
여러 말씀 중에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주무시기 전에 살짝 묵상하시고 앞으로 힘써 지켜서 믿음의 근육을 키워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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