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에서 결혼식만큼 행복이 손에 잡히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곳이 또 있을까요?
하객들도 신랑 신부의 기뻐하는 모습에서 한 때 자기들 인생에 있었던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해 내며 괜히 들뜨는 게 되는 것이죠.
오늘 우리는 2천년 전 이스라엘의 갈릴리 가나에서 있었던 어떤 결혼식 장면 속으로 들어 가보려고 합니다.
한 평범한 결혼식 현장에선 인간이 되어 내려오신 하나님의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결혼식 풍경을 먼저 둘러 보겠습니다.
혼례식장엔 이미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가 초대 받아 머물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혼주가 마리아와 가까운 친척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삼십세를 넘겨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한 예수님과 제자들도 초대를 받았다고 2절은 기록합니다.
파티를 지휘하는 연회장을 두고 며칠에 걸쳐 치러진 꽤 성대한 결혼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객들이 취해가고 있을 때 그만 준비했던 포도주가 동이 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잔치에 술이 떨어진다는 것은 보통 낭패가 아니죠.
이미 잔뜩 취해있을 누군가는 분명히 얼른 술 가져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지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에 피로연장의 기쁨은 순식간에 사그러들고 잔치는 막을 내려야 될 판입니다.
성경에서 포도주는 인생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오늘 결혼식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을 상징하는 결혼에서 조차 기쁨은 사라지고 있는 게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죠.
사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우리 청년들도 앞날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평생을 함께 살 배우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입니까?
혹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났어도 부모님이 마음에 안들어 하시면 또 난감하죠.
32살 먹은 한 총각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왜 그렇게 결혼을 못하냐고 물었습니다.
맘에 드는 여자는 많았는데 엄마가 항상 반대를 해서 못했다고 총각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그럼 엄마와 꼭 같은 여자를 찾아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얼마 뒤 다시 만난 친구는 아직도 결혼을 못하고 있는 총각에게 여태 엄마와 똑같은 여자를 못만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총각은‘ 엄마와 똑같은 여자를 만났지, 엄마도 아주 좋아하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결혼을 못한거야?
이번엔 아버지가 싫어하셔. 그랬다고 합니다.
청년들 부모님께서도 인정하실 배우자를 만나시길 축복드립니다.
최근 보도를 보니 우리나라 결혼 평균연령이 남자의 경우 32.3세이고 여자는 30세라고 합니다.
서울에다 전셋집 마련하지 못한 남자하곤 결혼하지 않겠다는 어느 여성의 말은 청년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힘든지를 말해줍니다.
우리 땐 사랑하면 지하 단칸방에서도 용감하게 시작했는데 요즘 청년들은 사랑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현실의 장벽을 체감하고 있나봅니다.
힘들게 닻을 올리고 항해하는 장년 세대의 형편은 또 어떻습니까?
세상의 험한 파도에 배는 깨지고 물이 들어오는 데도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이죠.
춘원 이광수는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도 알기도 전에 결혼을 하고,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자식을 낳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죽는다‘ 고 말했더군요.
매일 잔치 날 같은 기쁨을 기대하는 게 인생이지만 자기 인생에 이미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내게 포도주가 떨어지고 기쁨이 바닥난 것이 남에게 알려지는 게 두렵죠.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 집을 떠나 듯 고통만 남은 사람 곁에 머물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우리 인생에 참 기쁨의 새 포도주를 공급해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때로 우리 삶에서 기쁨의 포도주가 바닥나고 불안과 염려가 다가온다 해도 우리 인생에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주님이 거기 계셨기에 가나의 혼례는 기쁨으로 막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간다면 문제를 예수님께 알리십시오.
하나님께 알려진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문제가 되는 줄 믿습니다.
아버지가 맡으시고 반드시 우리 인생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낭패한 혼례식에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것은 소망 없고 기쁨없는 우리 인생을 주님만이 회복시킨다는 메시지인 줄 믿습니다.
우리 청년들, 또 부모님들 자녀들 결혼과 장래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청년들 결혼을 위한 모든 준비가 부족하고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져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순간은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순간인 줄 믿으십시오.
젊음의 때 세상을 좇지 않고 주님을 열심히 섬기는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앞 날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만큼 주님을 성실하게 섬기고 말씀에 착한 마음으로 순종하며 미래를 준비할 때 반드시 우리 청년들과 자녀들의 앞길을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몇 가지 의문점을 갖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의문점을 갖게 하는 부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강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영적인 진리들을 배우고 깨닫길 원합니다.
첫 째는 어머니 마리아의 태도입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의 결혼식이라 해도 포도주가 떨어진 일을 예수님께 해결하라고 떠넘기는 마리아의 행동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신랑 쪽에 알려서 동네에 수소문을 해 포도주를 보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죠.
아직 한 번도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던 예수님께 이 문제를 덜컥 맡기는 어머니 마리아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럴 때는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마리아는 믿음이 강하고 용기 있는 여성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소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에 의해 세상의 구세주인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 알려줄 때 아멘이라고 했던 여인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졌을 때 당할 유대사회에서의 고충을 몰라서 그랬겠습니까?
몇 년 전 경기도 안성에서 15살 먹은 여중생이 영아살해 혐의로 입건되었습니다.
새벽1시에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은 뒤 아기 입에 화장지를 넣어 질식시키고 시신을 비닐 봉지에 담아 거실 창문 밖으로 던졌다고 합니다.
끔찍하고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여중생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너무나 두려워 개념을 완전 상실해 버린 것이죠.
마리아의 임신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엄청난 현실을 감내 할 결단을 내릴 만큼 준비 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어린 예수님을 키우고 장성하기 까지 지켜보며 항상 가브리엘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1장이죠.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는 무식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촌인 엘리사벳은 세례요한의 어머니였고 제사장의 아내였다는 것을 보면 마리아 역시 정통적인 신앙의 가문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낳은 아들 예수님이 구약시대부터 약속되었던 그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삼십 세 까지 아무 활약 없이 성장한 예수님은 바로 앞 장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드디어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지혜로운 마리아는 그 모든 것을 마음에 두고 눈 여겨 보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가브리엘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을 구원 할 메시야의 생애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던 것이죠.
그리고 바로 오늘 꽤 많은 유력자들이 모인 이 장소에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며 정치적인 출사표를 던지기를 원했습니다.
실제로 이 갈릴리 지방은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에 대한 항쟁이 가장 많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마리아 역시 예수님을 단지 유대인을 해방시킬 정치적인 왕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도주를 만들어 내는 기적을 통해 아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 영광스런 그리스도로 인정되기를 바랬던 것이죠.
그 뿐이 아닙니다.
똑똑한 마리아는 주님의 메시야 사역에 은근히 자신의 생각을 내세워 아들의 사역을 재촉하고 간섭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에게야 예수님이 30년을 키운 아들 아닙니까?
당연히 아들의 사역을 도와주고 조력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죠.
우리가 이 부분을 통해서 잘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오류는 하나님까지도 내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마음입니다.
오늘 마리아처럼 한마디로 예수님 하시는 일에 훈수를 두려는 것이죠.
사람이 오죽 훈수두기를 좋아하면 우리나라 속담 중에 뺨 맞으며 훈수둔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하시는 일에 훈수를 둘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내 문제를 오히려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의 지도와 인도를 받아야죠.
하나님은 우리를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자식을 낳아 독립시켜 연락도 없이 살게 하는 것이 쿨한 부모입니까?
사랑은 관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고 무한한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을 의존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갖게 하시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영의 아버지를 경외하며 기쁘게 섬기고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에게 만복을 내려주시는 것이죠.
말라기3장17절에서 그것을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도 하나님으로서의 전능함이 있었지만 모든 일에 철저히 아버지를 의존했고 그 뜻대로 행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내게 어떤 행동을 원하실까 생각하는 태도는 정말 축복된 신앙입니다.
그러면 화를 내야 할 상황에도 참아야 할 것을 알게 되고 슬퍼해야 할 상황에서도 기뻐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십니다.
내 인생의 좌절이 올 때도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믿음을 주셔서 인내하게 해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경영권을 하나님께 넘겨 드리시고 짐 다 내려놓고 염려 없는 복된 인생으로 인도받으시길 축원드립니다.
오늘 주님을 주도하려던 마리아는 그 계획이 거절당합니다.
그러나 이 때 마리아의 행동에서 우리가 또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5절에 보니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자신의 생각했던 뜻이 틀렸다는 것을 영리한 마리아는 예수님의 대답에서 순간적으로 눈치를 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예수님이 갖고 계시다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곤경에 처한 이웃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마리아는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돌풍에 무너진 옆 집 담장을 고쳐주려 망치를 들고 뛰어가셨을 것입니다.
마을 노파의 낡은 의자와 선반을 고쳐주기 위해 하루 일과가 끝나고 연장통을 들고 그 집을 찾아가시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어느 인간도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의 고통과 필요를 자신의 문제로 느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남을 크게 도울 것 같아도 결정적인 순간엔 발을 뺍니다.
우리 문제를 주님의 문제로 여기시는 것은 하나님만 가지신 절대적인 사랑의 성품 때문인 것이죠.
그렇기에 마리아는 당당하게 예수님께 문제를 떠맡기고 자리를 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갈 때도 기억해야 할 교훈입니다.
대개는 하나님께 내 뜻과 내 방식의 응답을 해달라고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 그 방법으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다 속으로 공감하고 웃으실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절이 아니었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제서야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예수님의 뜻대로 하라는 마리아처럼 방법과 시기와 모든 결과를 다 예수님께 맡기게 되는 것이죠.
결국 본문에서 예수님은 주님의 방법으로 그 일을 해결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원하던 대로 내 환경과 문제들이 풀리지 않을 때에도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시편37편5절은 말씀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리라
예수님을 믿는 삶이 얼마나 좋습니까?
모든 문제는 아무튼 기도로 주님께 맡기고 나는 결과에 안달하지 않고 안심하고 내 하루 하루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죠.
이런 확신과 믿음으로 매일 기쁘고 평안하게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뜻밖의 반응과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마리아의 요청에 대해 예수님은 4절에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말 번역으로 여자여 하면 냉정하게 들리지만 실제 원문에서 사용했던 여자라는 단어의 의미는 좀 다릅니다.
유대사회에서 귀부인을 높여서 부르는 정중한 용어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부르지 않고 혈육을 떠나서 한 여인으로 정중하게 상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메시야로서의 삶을 시작한 예수님은 혈육의 정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역에서 혈육의 간섭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는 하나님아버지의 일에 끼어들려는 인간 어머니의 생각을 단호하게 막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을 방해하는 과거의 자연적인 관계나 습관을 끊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할 때 놀라운 축복과 유익이 따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런 것을 깨닫게 하신다면 할 수 있는 믿음에 들어섰다는 뜻인 줄 믿으시고 순종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더니 결국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좀 모순 된 것처럼 보이시죠?
아직 주님의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요청에 의해 계획을 바꾸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늘 주님이 오신 목적을 첫 표적을 통해 보여주시려고 의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를 포도주가 떨어진 결혼식장으로 정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있어야 할 기쁨이 사라진 잔치 집과 똑 같기 때문입니다.
혼례식이 무르익고 사람들이 흥겨운 취기에 들떠 있을 때 예수님은 사람들 손에 든 잔에서 포도주가 서서히 바닥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 나이 정도만 되도 인생사에 어떤 기쁨이나 행복도 결국 바닥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식이 대학에 붙어 기뻐하는 것도 잠깐이고 늦게 들어오는 자식들과 또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이죠.
남편이 바라던 승진을 해 좋아했더니 명예 퇴직 순서만 앞당겼을 뿐입니다.
믿었던 집값마저 반 토막이 나니 정말 우리 인생에 이러다 남는 게 뭐가 있나 불안해지죠.
나이 들면 결국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바닥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자식 위해 집 팔아 재산 나눠주면 부의 평등이 오고 아무리 해도 나이는 막지 못하고 골골거리며 건강의 평등이 오지 않습니까?
인간에게 자연적인 삶은 뭔가를 이루어 가는 게 아니라 결국 모든 것이 고갈되는 것이라는 게 인생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실입니다.
요한사도는 11절에서 오늘 주님이 행하신 일을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은 저주받은 우리 인생에 영원한 기쁨의 포도주를 부어 주시겠다는 영적인 의미가 담긴 표적이란 것이죠.
주님은 본문에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다만 진짜 우리 인생에게 부어주실 기쁨의 포도주는 지금 만드시는 포도주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때에 흘리실 보혈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날 마지막 저녁식사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나눠주시며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피가 바로 나의 죄를 속죄한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셔서 영원한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새 포도주의 기쁨과 축복을 넘치게 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가수 0진아씨의 간증을 들으면 바닥난 인생이 하나님께 돌아와 어떻게 부어주시는 축복을 받았는지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그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그는 37개 직업을 전전하며 갖은 고생 끝에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수활동에 실패한 0진아씨는 미국행을 결심하죠..
그가 미국에 가서 한 일은 길거리 바닥에 선그라스를 늘어 놓고 파는 일이었습니다.
가난과 절망에 지쳐 술로 나날을 보낼 때 옥경이 노래의 주인공이 된 그의 아내가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 가는 문제로 매일 싸움만 걸던 0진아씨가 어느 날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 데 그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뒤 잠깐 한국에 들어와 0경이란 노래를 부르고 미국으로 돌아 갔는데 신기하게도 그 노래가 한국에서 엄청난 히트를 일으켜 한국에 돌아옵니다.
주님을 믿고 나니 부르는 것 마다 히트였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건져주신 기적 같은 은혜도 체험했습니다.
한번은 스케줄에 바빠 서해안고속도로를 과속으로 달리다 빗물에 미끄러지며 차가 세 바퀴를 돌고 언덕 밑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 시간 차 안에서 성경책을 읽고 있던 그는 사고 순간 아버지 살려주세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라고 외마디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절했다 깨어보니 차가 언덕 중간 나뭇가지에 걸쳐있었습니다.
간신히 기어나와서 보니 매니저가 에어백에 파묻혀 죽은 듯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또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는 데 갑자기 매니저가 얼굴을 번쩍 들더니 밖으로 걸어나오더라는 겁니다.
119가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멀쩡이 앉아있는 두 사람을 보고 이 정도 사고에서 살아날 사람은 없다며 혹시 죽은 사람을 어디 숨겨놓은 게 아니냐고 의심하더랍니다.
0진아씨가 성경책을 보여주며 내가 사고 순간 기도해서 하나님이 구해준 것이라고 막 해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던 구조대원들이 그 자리에서 갑자기 하나님께 막 기도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주일 하루 행사 뛰면 천만원을 벌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게 최우선이고 간증집회 요청이 있으면 스케줄을 바꿔서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게 목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보석을 다 줘도 믿음과 바꾸지 않겠다네요.
그가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힘만 믿고 살았다면 지금도 LA 어느 노점에 생필품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주셨습니다.
우리 마음을 열고 이 사실을 믿을 때 새 포도주의 기쁨과 축복이 우리 인생에 부어질 줄 믿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떨어져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다.
우리 문제와 고통을 주님께 간구하면 거절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이 반드시 우리 짐을 대신 져주실 줄 믿습니다.
내 고집과 방법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방법을 믿으시고 조급해하지 말고 늘 평안하고 견고한 믿음으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2012.9.16. 주는나의산성교회 주일설교.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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