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한 일로 인해 백성들이 혹독한 징벌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성경 사무엘서는 이 사건으로 끝을 맺습니다.
사무엘서는 어머니 한나의 기도를 통해 사무엘선지자가 태어나며 시작되죠.
이스라엘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던 사무엘선지자가 했던 가장 중요한 사역은 다윗을 발탁해서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대중의 지지와 인정을 받았던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선언한 것과 같은 의미죠.
사무엘서의 핵심적 주제는 다윗의 왕권과 통치가 영원할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역사적인 성경을 읽을 때는 왜 이런 내용이 기록되었는지 먼저 큰 틀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범죄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성취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아브라함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장차 아브라함의 족보로 오셔서 만민을 구원하실 예수님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죠.
사무엘서는 그 과정의 진행 중에 다윗의 등장으로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의 영원한 통치에 대한 서막을 올리는 셈입니다.
좀 더 예수님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사무엘서의 마지막이 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한 징벌과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의 속죄의 제사로 막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의 속죄제사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겠죠.
이 사건 역시 예수님의 구원을 조명해 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본문은 다들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의력을 갖고 잘 들어야 뇌가 기억한다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동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잠깐 보았는데, 아이 다섯을 키우며 힘겹게 살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였습니다.
불행히도 위에 두 아이는 지적장애를 가졌더군요.
여덟살 먹은 셋째 민지가 언니, 오빠와 동생까지 돌보는 모습이 참 대단하고 대견했습니다.
살림을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저녁이 되면 아홉 살 언니한테 공부를 가르치는 거예요.
하나라는 단어를 가르치면 매일 나나라고 읽는 언니를 민지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르칩니다.
PD가 왜 언니를 가르치냐고 물으니까 언니가 공부를 안배우면 안 똑똑해지기 때문에 가르친다는거예요.
정말 우리는 회개하고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신앙도 좀 똑똑한 신앙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구약성경의 긴 역사를 거쳐 우리에게 찾아온 구원에 대해 잘 이해하고 모두가 똑똑한 믿음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아멘.
먼저 이 사건의 내용을 간략하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은 정권 말기에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요즘 인구조사와 다른 점은 전쟁에 나갈 만한 남자들의 인구만을 집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의도는 군사력을 점검하고 싶었던 것이죠.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7만명의 국민들이 전염병으로 죽게 됩니다.
그런데 심판의 천사가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심판을 멈추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천사가 서 있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아라우나에게서 타작마당과 소와 기구들을 사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거기서 종결된다는 내용입니다.
1. 왜 하나님이 이런 재앙을 내리셨는지 원인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여기서 먼저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셨다고 합니다.
왜 진노하셨겠습니까?
이스라엘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는 뜻이죠.
결국 이스라엘의 죄가 뼈아픈 징계의 발단이 된 것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지만 그들이 당연히 죄를 지었겠죠.
사람이 살면서 죄 짓는 것 말고 뭘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기막힌 게, 우리는 그냥 살았는데 그게 사실은 다 죄라는 것입니다.
그냥 살면 죄입니다.
그냥 살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게 신앙의 삶인 것이죠.
우리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 삶은 죄악스럽고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킬만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진노가 될 만 했던 이스라엘의 큰 죄를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무엇보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서 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왕을 배신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압살롬 편에 붙었습니다.
압살롬이 반역에 실패하고 죽은 뒤에도 다윗에게 돌이키지 않고 세바라는 또 다른 반역자를 옹립하고 따랐습니다.
이건 다윗왕조를 통해 영원히 지속된다고 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큰 죄입니다.
또 이들은 율법을 배우고 지키는 일에 턱없이 미흡했을 것입니다.
일례로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령하셨던 유월절 같은 중요한 절기를 다윗왕조 시기에 지켰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다윗의 먼 후대 요시야왕 시대에 가서야 처음으로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지켰다고 열왕기하23장이 기록하거든요.
다윗이 그런 면에서 볼 때 백성들을 신앙적으로 세우지는 못한 것이죠.
이런 여러 가지 죄악들이 점점 쌓였고 하나님의 징계의 수위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악에 대해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심판은 구약성경 시대에만 존재할까요?
신약시대 우리는 사랑받는 자녀라 어떤 죄를 짓고 살건 무조건 용서받고 징계는 없는 것일까요?
신약성경 히브리서 12장에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신약시대에도 성도들은 죄에 대한 징계를 받습니다.
설령 회개하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이 용서해주셨다 해도 죄가 빚어 낸 결과는 자기가 감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늘 힘든 것입니다.
위기를 넘기려고 거짓말을 했다면 언제든 발각 나서 망신을 당할 조건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검은 돈을 받았더니 그 돈이 결국은 줄줄이 구치소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반복성이 있기에 하나님은 근실히 징계하십니다.
죄의 위험성은 사탄이 크게 개입한 오늘 사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죄는 사탄이 끼어들 여지를 만든다는 것이죠.
다윗의 인구조사가 역대상21장에도 나오는데 거기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여기서는 사탄이 다윗을 충동했다고 하죠?
사탄이 죄로 인해 믿음이 취약해진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입니다.
믿음이 취약해지면 시험에 잘 넘어갑니다.
사탄은 다윗을 충동해서 왕과 국민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 치명적인 죄를 짓고, 버려지도록 회심의 일격을 가한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를 짓게 되면 그 틈으로 사탄이 비집고 들어와 더 큰 곤궁에 빠뜨린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 뒤 나중에 침상이 젖도록 울며 회개했지만 나단 선지자가 뭐라고 합니까?
이 일로 사탄이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했기에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사람의 죽음까지에도 관여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것을 은폐하려고 충직한 남편 우리야장군을 죽인 사실을 모르는 국민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저 다윗왕, 여자 때문에 자기 심복을 죽인 인간’ 이런 생각을 안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압살롬의 반역 때 압살롬 편에 서는 죄를 짓게 사탄이 부추길 여지를 준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까짓 죄도 안 짓는 사람이 누가 있어’ 이렇게 가뿐하게 죄를 짓는 태도를 심각하게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반드시 죄의 댓가를 받아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1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진노하셔서 벌주실 목적으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시키신 것 같이 이해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인구조사를 한 것은 하나님 탓입니까?
하나님이 죄에 빠지도록 조장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이런 걸 보면 성경이 참 융통성이 없습니다.
굳이 하나님이 다윗을 격동시켰다는 말을 꼭 써야 했냐는 것입니다.
성경의 이런 당당함에 우리는 당황스럽고, 어떻게 그 정당성을 변호해야 하나 난감함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뒤로 빠지신 적이 없으십니다.
아담의 범죄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독생자를 내어 주심으로 책임을 지신 것이잖습니까?
그리고 인간의 죄와 사탄의 활동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마음에도 없는 죄를 짓도록 하신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탄의 격동으로 속에 있는 죄가 드러나게 하신 것이죠.
사람은 죄를 은혜하려고 하잖아요?
죄가 드러나야만 용서와 구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죄가 드러나게 하신 것도 단순한 징계를 넘어선 하나님의 의도 된 목적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부각된 것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과 속죄 제사입니다.
모두를 바로 그 곳으로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택한 민족도 실패하고, 그토록 하나님을 경외했던 다윗왕도 결국 죄에 넘어질 수 밖에 없으니 누가 자신의 온전함으로 구원을 받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오직 속죄제물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필연성을 점점 명료하게 드러내시는 것이죠.
2. 그렇다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왜 죄가 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는 세속적 인구조사와 달리 구원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다윗의 인구조사가 죄입니다.
당시 세속적 인구조사의 목적은 대개 세수확보와 군사력 정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에 있어서는 목적이 다릅니다.
계수 된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에 편입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차례 이스라엘이 인구수를 조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인구조사는 모두 하나님이 시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인구조사는 애굽에서 해방 된 뒤 시내산에서 실시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졌고, 조사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인구조사는 이들이 다 광야에서 죽고 다음세대가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직전에 실시했습니다.
다시 하나님나라에 속할 백성들을 계수했던 것이죠.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보면 바벨론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이스라엘이 재건되었을 때 인구를 조사해서 기록합니다.
거기도 보면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조사해서 돌아온 백성들의 숫자를 얻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수를 셀 때는 이런 목적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명령도 없었고 그 목적도 세속적 인구조사와 똑같았습니다.
자기 왕국이 얼마나 번성했고 전쟁에 동원할 군사력이 얼마나 되나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죠.
이런 인구조사가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던 요압장군도 명령을 받고 반대하는 것이 본문에 나오죠.
다윗은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도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했던 것입니다.
또 인구조사를 할 때는 계수 된 모든 국민이 반드시 반 세겔의 속전을 내도록 모세를 통해 명령하셨습니다.
속전은 속죄받는 댓가로 내는 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오려면 죄값을 내라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려면 돈 내고 들어오라는 것이죠.
요즘은 교인들의 몸값이 너무 올라서 교회에 나와 주고 하나님을 믿어주는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관점은 다릅니다.
죄인들이 감히 하나님의 백성에 들어오려면 빈손으로 오지 말고 죄값을 내고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윗도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 않겠다고 하잖아요?
죄 값, 보석금, 속전, 이 말씀들이 갖고 있는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디모데전서 2장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시민이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예수님을 속전으로 들고 나와야 합니다.
다윗의 인구조사에서 속전을 걷었다는 말이 없죠.
하나님이 시키신게 아니니 백성들에게 돈을 걷을 명분이 없었던 것이죠.
모세의 율법에서 속전을 걷으라고 하실 때, 이유가 붙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0장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속전도 없이 하나님백성에 들어오려고 하면 온역에 걸려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범죄로 진노아래 있는 이스라엘국민들이 속전도 없이 조사됐으니 결과는 뻔한 것이죠.
하나님은 죄인이 속전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눈 앞에서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어 나가는 것을 통해 충격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안 받고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속전이 되신 예수님을 챙기지 못하고 교회만 다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드시 예수님이 내 죄의 대속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다윗의 실패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33편 16절은 이렇게 선포하죠.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아둘람 굴의 오합지졸로 사울의 군대를 막았고, 빈곤한 약소국에서 가나안의 맹주국이 되는 것이 누구의 힘이었는지를 다윗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노년에 군사력을 의지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약해졌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믿음이 굳세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강해지면 환경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상대적으로 약해집니다.
믿음이 강할 때는 이상하게 다 이겨지잖아요?
영과 육의 승패는 다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평범한 신앙생활을 해 나가다보면 그렇게 매주 열심히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그런대로 살아갈 것 같은 안일함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매주 열심히 성경을 배우고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기 때문에 이렇게 평범한 매일을 살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속전이시라는 것을 오늘 잘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또 삶에 대한 근심과 두려움이 커져있다면 우리의 구원자시고 보호자 되신 하나님을 다시 주목하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가진 의미는 무엇인가입니다.
드디어 예루살렘이 심판당할 순서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천사를 중지시키십니다.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나님이 정해진 심판을 다 행하시기 전에 심판을 끝내신 곳이 바로 예루살렘성읍 높은 곳에 있던 아라우나라는 사람의 타작마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곳에 이르러 이 재앙을 내리심을 뉘우치시고 심판을 즉각 중단시키셨을까요?
이곳이 어떤 곳이기에 바로 여기에서 속죄와 화목제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역대하 3장 1절에서 이 장소에 대한 비밀이 단숨에 풀립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솔로몬이 다윗의 말대로 훗날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성전을 건축합니다.
모리아산이 바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과 동일한 곳이라는 것이죠.
모리아산에서는 과거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올라갔던 산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할 때 하나님이 급히 제지하셨고, 거기서 숫양을 발견해 번제를 드렸죠.
그 때 아브라함이 그 산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준비되리라’ 라는 뜻입니다.
무엇이 준비되었다는 것입니까?
이삭 대신 죽을 양을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산이 지금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라는 것이죠.
여기를 다시 이스라엘백성들을 속죄하는 제단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심판을 중단시킨 이 타작마당이 바로 성전을 지을 곳임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지만 어디에 지을지는 몰랐습니다.
기브온에 성전을 지었다면 자연스러웠겠죠.
광야 40년간 하나님이 임재하셨던 그 성막과 번제단이 기브온산당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 다윗이 기브온제단에 나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이유가 나옵니다.
다윗이 기브온성막에서 하나님께 묻지 못했으니 이는 천사의 칼을 두려워함이더라.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하신 공의 앞에 두려워 떠는 것은 영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누가 죄로 더럽혀진 자신을 볼 때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자신있게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공의를 접으신 하나님의 심중을 안 것입니다.
바로 ‘ 이곳이 내가 죄 많은 인간을 속죄할 장소이다’ 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셨던 그 곳에서 오늘 다시 말씀합니다.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그 곳이 어디기에 하나님은 거기에만 이르시면 칼을 거두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왜 이렇게 이 장소에 애착하실까요?
그곳 성전 옆 갈보리 언덕에서 예수님이 속죄의 제물로 바쳐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성전의 터가 정해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곳 갈보리언덕에서 예수님께서 속죄의 제물이 될 것을 예고하시며 점점 구원의 윤곽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심을 뉘우치셨다는 부분에서 생각했습니다.
사는 게 저절로 죄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징계하다 하나님이 오히려 안쓰러워 한 숨을 쉬시는 것 같았습니다.
애들 키우다보면 항상 고치지 못하고 잘못하는 일 때문에 실갱이를 한 적이 다 있으실 것입니다.
혼내고 또 혼내다 나중엔 그런 자식이 안쓰럽게 보일 때가 있잖습니까?
이스라엘백성들도, 다윗도, 모두가 죄에 빠져 구덩이에 떨어질 판에 하나님이 인간의 죄인 됨을 한탄하시며 속죄제사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각자 죄의 길을 가며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벗어난 우리를 지옥에서 끌어내기 위해 예수님을 대속제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욥기33장24절 말씀이 이런 사실을 실감나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이렇게 어렵고 긴 역사를 써 오셨습니다.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물을 드리고 속죄를 받았듯이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를 의지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구원의 큰 기쁨을 확인하고 풍성히 누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017년11월12일 주는나의산성교회 남수연목사
'사무엘상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무엘상15장1절-9절 (아말렉을 진멸하라) (0) | 2018.06.27 |
|---|---|
| 사무엘하9장1절-13절 (다윗과 므비보셋) (0) | 2018.04.18 |
| 사무엘상27장1절-7절 (거짓 피난처 시글락) (0) | 2017.06.21 |
| 사무엘상25장1절-8절 (나발과 아비가일) (0) | 2017.06.16 |
| 사무엘상23장1절-14절( 다윗과 그일라) (0) | 2017.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