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빌립보서4장6절-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남수연 2018. 1. 24. 18:37

지난 한 주간 다들 평안하셨습니까?

정말 평안하셨습니까?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하루인들 마음 편하게 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살아가는 것도 염려할 일 투성인데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걸 가만히 보면 염려를 사서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당장 나하고 상관없는 염려까지 끌어 와서 염려에 빠지잖아요?
하다못해 해외 언론이 손흥민선수를 주목할 때는 오늘 꼴을 못 넣으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까지 제가 하고 있더군요.

그렇기에 지난 한 주도 편안한 시간보다 염려와 불안으로 산 시간들이 더 많았던 것입니다.

전에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전자책 이용자들이 어떤 내용에 관심을 갖고 밑줄을 쳤는지 조사했습니다.

성경을 이용한 미국인들의 경우 가장 많이 밑줄을 친 부분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미국인들도 염려에 시달리는 가 봅니다.

적어도 냉장고에 내일 먹을 음식이 있고, 한 달을 살아 갈 돈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내일을 염려합니다.

어미 새가 새끼를 키울 때 하루에 하루살이나 곤충을 칠천마리나 물어다 먹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어떻게 칠천 마리 먹이를 구하지염려하는 새는 없습니다.

사람 같으면 칠천이라는 숫자에 짓눌려서 새끼도 못 키우고 절망해서 죽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추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있는 새들의 숫자가 천 억 마리 쯤 된다고 합니다.

그 중 어느 새들도 먹이를 염려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먹이고 기르신다고 하셨거든요.

지난 주에 제가 칠레의 유명한 우유니소금사막에 대한 다큐를 보았습니다.

길이가 백킬로미터가 넘는 광활한 소금사막이 내륙에 펼쳐져 장관이더군요.

그런데 근처의 소금물호수에는 플라밍고라는 홍학이 살고 있었습니다.

비소와 납 성분이 들어있는 소금물에서 대체 무엇을 먹고 저 새들이 서식할까 의아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플라밍고들이 두툼한 부리로 바닥을 긁고 다니는 거예요.

부리에 거름장치가 있어서 불순물은 걸러지고 플랑크톤 같은 생물만 빨아들이며 먹고 산다는 것이죠.

플랑크톤만 먹고도 빨갛고, 노랗고, 하얀 옷을 눈부시게 차려 입은 플라밍고는 유유자적 잘 살아가더군요.

세상의 생물체 중에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며 살아가는 것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아담 이후 하나님께로부터 스스로 독립한 인간에게 돌아온 것은 오늘의 염려요, 내일의 염려요, 막연한 미래에 대한 염려뿐인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필연적인 염려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성도들에게 가장 큰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은혜롭고 위로가 되는 말씀은 바울사도가 감옥에서 쓴 편지 내용입니다.

바울의 투옥으로 교회들은 실의에 빠졌고, 선교활동에 차질이 생겼고, 바울자신의 신병도 위태한 상황입니다.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이 전염병처럼 번질 수 있는 상황에서 보낸 바울사도의 편지에는 놀라운 평안이 느껴집니다.

바울사도는 이 평강을 모든 성도들이 다 누릴 수 있다고 전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우리 자신을 잘 훈련 해 걱정, 근심, 염려들에 끌려 다니지 않고 오히려 다스리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복드립니다.

 

1. 먼저 염려할 수밖에 없는 빌립보교인들의 상황입니다.

바울이 염려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빌립보교회에 염려할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이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한 것을 보면 염려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병이 들까봐, 가난해 질까봐, 자식이 잘못 될까봐, 성적이 떨어질까봐, 결혼하지 못할까봐.

빌립보서 안에서와 고린도후서의 언급을 종합해 보면 몇 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당시 모든 교회들이 안고 있던 극심한 신앙의 박해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이 땅에선 믿음으로 인한 어려움이 늘 있습니다.

믿음에는 고난이 따른다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바울당시 박해시대가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믿음을 갖고 구원을 받았더니 과거엔 없던 고민이 생겼잖아요?

편안히 늦잠 자던 주일 아침이면 교회 가는 문제로 한동안 마음이 전쟁터입니다.
신실한 성도라면 하나님을 더 경외하고 말씀대로 잘 살려고 하는 과정에서 겪는 낙담과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해야지 하면서 못할 때 얼마나 부담이 됩니까?

신앙으로 인한 가족이나 직장 내의 불화와 참고 견딜 일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아직 믿음이 약한 분들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데서 오는 회의감도 겪어야 합니다.

성도들에겐 신앙으로 인해 생기는 염려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 빌립보교회에는 기독교의 진리를 위협하는 이단 사상들이 들어와 있었고 일부 교인들이 넘어간 상태입니다.

그런 중에 교회 내부에는 분쟁이 있었습니다.

2절을 보면 교회의 개척멤버였던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모두에게 염려거리입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사람관계가 안 좋아서 생기는 염려는 끝이 없습니다.

설상가상 빌립보교인들은 가난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난 한 주 염려한 많은 문제들 속엔 분명 돈 문제도 끼어 있었을 것입니다.

쓸 돈이 충분치 않다 생각하다보면 비트코인이 뭔지도 모르면서 왠지 나만 돈 버는 데 뒤처지는 것 같아 더 불안해지잖아요?

또 우리에겐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쇠약해 가는 신체와 질병과 노후문제도 떨쳐버리기 힘든 염려거리입니다.

이런 총체적인 염려에 빠져있는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바울사도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과연 이 말씀에 의지를 다해 순종해서 염려하지 않는 게 실현 가능할까요?
저도 지난 주 초에 걱정거리가 생기더니 거의 반나절을 그 생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거기서 빠져 나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해보고 애써 염려를 털어버리려 해도 잘 안됩니다.

밤에 누워도 잠도 안 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은 의지적으로 잘 통제가 안됩니다.

당장 일어날 일도 아닌데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해. 잊어버려

누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잊어버려지지 않잖아요?

혹시 의지가 강해서 그 생각을 억지로 눌러 놓았다고 합시다.

그게 걱정거리를 끄집어내서 마음껏 걱정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 심리학의 판단입니다.

또 대부분의 염려거리는 단순한 감정이나 막연한 미래의 문제라기보다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염려를 안 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사도가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그걸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사도야 말로 근심 걱정에 둘러 싸여 살았던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11장을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받은 고생의 목록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당할 때 마다 얼마나 큰 두려움과 염려에 빠졌겠습니까?

거기다 바울 스스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은 염려에 무감각한 비상한 믿음 안에 살던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염려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피를 말리고 삶의 의욕을 잃게 하는 지 너무나 잘 알기에 염려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염려에 사로잡힐 때 우리 힘으로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바울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빌립보교회의 염려들이 간단히 해결 될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런 상황을 벗어나 어떻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2. 염려는 우리의 의지와 결심으로 물리치는 게 아니라 기도로 물리친다는 것입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모든 염려의 순간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염려의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으로 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대개 소소한 걱정들은 걱정하면서도 그런대로 살아갈만합니다.

그렇기에 일일이 기도하지 않고 근심을 낀 채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작은 염려에서부터 이것을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작은 염려들은 대개는 기도를 조금만 해도 염려가 쉽게 물러갑니다.

이렇게 기도의 습관을 들이면 큰 문제를 만날 때도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큰 문제를 당해보면 아시다시피 기도하기가 더 힘듭니다.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고 기도도 입 주변에서만 맴돌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작은 염려와 걱정이 마음을 어둡게 하기 시작할 때 거기에 빠져들지 말고 기도하는 습관을 훈련해야 합니다.

유대격언에 당신이 죽으면 벌레가 먹고 당신이 살아 있을 땐 근심이 먹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염려를 이길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염려가 내 삶과 행복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기도로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하라고 바울사도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나요?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하고, 간구하고, 또 모든 것을 감사로 아뢰라고 합니다.

이렇게 기도와 간구를 구분한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간구 이전에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하나님과의 일상적인 교제이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다급하게 간구부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염려되는 상황이 되면 우선 그 기도부터 꺼내 놓기가 쉽습니다.

그래봤자 같은 말만 반복되고 기도가 진전이 되질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평소에 우리가 기도하던 대로 하나님께 대한 관계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땅의 문제로부터 고개를 들어 우리 마음을 하늘로 끌어 올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고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제 와서 나를 피하실 리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만큼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C. S 루이스는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이란 당신의 감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성이 받아들인 것들을 고수하는 기술이다.’

이렇게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실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을 경배하면 거의 감사가 나옵니다.

사실 감사거리와 염려거리는 비교가 안됩니다.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언제든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큰 감사인 줄 아십니까?

세계에 물 부족 국가들이 얼마나 많아요?

현재 세계인구의 1/3이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25년엔 2/3이 물 부족 국가에서 살게 될 거라고 합니다.

병원에 가보면 이렇게 두 다리로 걷고 활개치고 다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느껴지잖아요?

우리 곁에 가족이 있고, 일터가 있고, 따스한 잠자리가 있잖아요?

염려하고 있는 문제보다 훨씬 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먹이고 입히시는지를 잠잠히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로 기도를 드린 뒤에 비로서 염려할 문제들을 간구하되, 그때도 역시 감사함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구할 때 감사하며 구한다는 것은 받을 것을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저에게 백 만 원 만 좀 빌려주시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줄지 안 줄지 모르는 데 무턱대고 감사하다고 하면 이상한 것이죠.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응답하실 테니 기도하라고 먼저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 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마태복음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야고보서5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 시리라

성경은 기도하면 응답해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식언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감사함으로 우리의 염려들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놀라운 평강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 마음과 생각은 우리 의지대로 통제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이 통제해 주셔야만 됩니다.

염려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평강만이 다스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문제를 당장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과 생각에 평강이 깃드는 것입니다.

문제가 어떻게 당장 해결되겠습니까?

우리가 꾸준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문제든 맡으시고 해결의 주도권을 갖고 인도해 주십니다.

환경도 인도하시고, 사람도 움직이시고, 우리에게 지혜와 힘도 주십니다.

그 모든 일들이 완료되기까지의 과정에 평강이 없다면 매일이 갈등과 고민과 걱정근심에 파묻혀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애태우며, 진을 빼고, 고민에 잠겨 입맛도 잃고 고생하는 것을 빨리 벗어나도록 기도할 때 가장 먼저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은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에 대한 모든 사실과 지각을 능가합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도저히 답이 없고 헤쳐 나갈 길이 없는데 하나님의 평강은 그것을 뛰어 넘어 우리를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을 평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지난 주 고민하며 염려하던 문제들에 대해 저도 당연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시 뒤에 생각해 보니 어느 시점부터 그 문제를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걸 알고 신기했습니다.

다시 그 문제를 꺼내서 생각해 봐도 별로 걱정이 되지를 않는거예요.

걱정을 할래도 안되는 데 어떡하겠어요?

하나님의 평강이 염려로부터 저의 마음을 지키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만 하지 말고, 오늘 말씀대로 기도와 간구로 꾸준히 하나님께 아뢰면 그 문제들이 내 소관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깨닫게 됩니다.

또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거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맡으셨으니 어쨌든 결과가 나쁘지 않을 것이 믿어지게 됩니다.

염려는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되어야 한다는 집착에서 일어납니다.

기도하는 중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진다는 넓은 이해를 갖게 됩니다.

당장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해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당장의 현실보다 더욱 신뢰하며 평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평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집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가 평강의 핵심입니다.

분명히 바울사도는 못을 박고 있습니다.

너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여기에도 미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이 된 것도, 하나님의 모든 부요와 뛰어난 평강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흠 없는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을 뺀 신앙생활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붙드셔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연하고, 평강이 없이 마음이 불편하고, 믿음으로 인한 기쁨이 없다면 이유는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차원에서 그치지 말고 항상 모든 생활이 예수님 안에서 일어나게 하십시오.

반드시 좋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 표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안전하고 평안하고 복된 삶을 위해 다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염려 할 문제들은 끊이지 않고 마주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염려를 바울사도는 기도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염려의 목적은 기도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시련을 주시는 건 아니지만 염려거리를 허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며 간구하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설상가상 염려할 일들이 겹쳐도 너무 상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허용하신 일입니다.

큰 시련을 겪을 땐 오히려 여러 가지 염려거리가 함께 오기도 합니다.

한 문제에 너무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염려들로 정신이 분산되게 하시고 어느 한 곳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목적을 두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라고 할 때, 아뢴다는 단어는 계속해나간다는 뜻입니다.

기도응답을 받으며 사는 분들을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끈기 있게 오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단지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이 아닙니다.

실생활에서 지킴으로 누려야 할 실제적 교훈입니다.

매일 기도로 크고 작은 염려들을 주님께 맡기는 것을 훈련하시길 바랍니다.

염려가 고개를 쳐들때마다 기도해야 하지만 매일 일정시간을 정해 놓은 기도도 필요합니다.

가능하면 언제 기도할지도 정하고 어디서 기도할지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이 기도할 시간도 주지 않으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작아도 성령께서 기도를 안 도와주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작은 시간, 한 십 분 정도의 시간을 정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 시간은 예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생활의 모든 문제들을 말씀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면서 배우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결심하십시오.

훈련하십시오.

이 모든 것이 엄청난 보화라 해도 우리 죄성 때문에 쉽게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고, 끈기 있게 기도하며 살아간다면 많은 근심들이 어느 덧 사라지고 힘든 상황들도 점점 바뀌어 갈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이 평강 가운데 살아간다면 사람들은 우리 신앙에 호기심을 갖고 다가 올 것입니다.

평강이 없는 세상에서 참된 평강을 누리는 성도들의 모습은 기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평강이 성도님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고 가정과 사회생활 속에 충만히 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2018년1월21일 주는나의산성교회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