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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10월20일 설교영상> 오늘 초대를 받고 예배에 함께 하고 계시는 가족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으니 은혜와 축복도 주시리라 믿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은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내용은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많고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죠. 철없는 부잣집 막내아들이 아버지 돈을 들고 해외로 나가 흥청망청 쓰다 빈털터리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들을 그리던 아버지는 달려가 거지꼴이 된 아들을 끌어안고 기쁘게 집으로 영접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사람들에게 해 주신 한 이야기입니다. 그때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들은 분명 고민에 대한 답을 얻었을 것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키를 발견하고 소망과 위로를 얻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가장 소중하고 복된 것을 발견하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1. 먼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던, 안 믿던,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갑니다. 왜 사람들이 점을 보고 사주팔자, 궁합 이런데 관심을 갖습니까? 내 운명을 움직이는 어떤 절대적인 힘이 있다는 걸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연구했지만 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하나님은 신이시기에 인간의 지각을 넘어서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확실한 건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서 자신을 보여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시고, 말씀하시고, 실제 역사 속에서 권능을 행하시고, 자신을 계시하신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물의 기원과 사람이 무엇인지도 성경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시고 특별히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자신을 대단치 않은 존재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 주신 신의 자손들입니다. 우리 모두에겐 희미하지만 하나님의 영광, 신의 형상이 남아있습니다. 만물은 수한이 있고 끝이 있지만 사람만은 신처럼 영원불멸한 존재입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일 것 같은 생각이 다들 안 드시잖아요? 그래서 윤회도 생각해 내고 환생도 생각해 내고 그런 것입니다.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부모의 자식사랑도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자식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믿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실제 삶에서 그 사랑이 주시는 혜택과 선물을 누리며 삽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죠.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사랑한다면 사람은 저절로 선물을 생각합니다. 사랑하면 무언가 주고 싶어 합니다. 아무 선물이 없는 관계는 대체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관계라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 딸과 사위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사귀는 걸 제가 보았습니다. 어느날 태평양을 건너 무거운 소포 박스가 배달되더군요. 우리 딸도 방구석에 아예 빈 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사위한테 주고 싶은 게 있으면 사 모았다가 택배로 보내려는 것이죠. 해외 택배비가 아무리 비싸도 그 어려운 걸 해내더군요. 부모 자식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나중에 보내주려고 가을에 나온 햇고추가루를 사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주신 선물은 눈을 들어 자연 만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가 누리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생존의 필수요소들은 다 무상으로 주시잖아요?햇빛과 비를 모두에게 내려주시고 식물을 기르면 수확을 주시고 사람이 수고한대로 물질을 얻어 만족하게 누리게 하십니다. 전도서 3장 13절에서 말씀하시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2. 그런데 오늘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큰 문제가 생겼음을 보여줍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떠났듯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왜 아버지를 떠났습니까? 더 이상 아버지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그렇잖아요?아들은 아버지를 영원히 떠나려고 유산분배를 요구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끈질긴 요청에 못 이겨 유산을 나눠 주죠. 아들이 재산을 말아먹을 줄 아버지가 몰랐겠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모르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버지가 재산을 주지 않고 막았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이 아들은 같이 있어도 이미 아버지를 떠난 자식입니다. 사람이 곁에 있어도 마음이 떠나면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 아시잖아요?마음이 떠난 자식을 억지로 끼고 있어봤자 그 마음을 잡을 수 없습니다. 아들은 땅문서를 훔쳐서라도 아버지를 떠날 것입니다. 그러니 아들의 소원대로 네 식으로 한번 살아보라고 재산을 나눠준 것이죠. 세상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님이 필요치 않다며 등을 돌렸고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삶을 나눠주시고 내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과거엔 다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믿고 나서도 우리는 매일 탕자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다 저녁마다 아버지께 돌아오고, 주일마다 돌아오고, 어려움이 닥치고야 돌아옵니다. 그래도 우리가 매일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께 오는 것이 나한테 가장 좋은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낭비와 궁핍과 고통이라는 것을 경험상 알거든요. 하나님을 떠난 삶이 낭비라는 걸 오늘 비유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고 호기 있게 떠난 아들은 혹독한 인생수업을 치러야 했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가 큰돈을 손에 쥐면 결국 허랑방탕하게 되기가 쉽죠. 아무리 많은 재산도 없어지려 하면 날개 돋힌 듯 다 떠나버립니다. 지난 주 장을 보고 마트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에 있는 한 어르신께 말을 건넸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신상을 털어놓기 시작하시더군요. 요지는 대수술을 세 번 받고 투병생활 하는 중에 수백억 재산이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연예인들 중에 종종 사업에 투자했다 망해 지하 셋집을 전전했다는 얘기들 하잖아요?한 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중 하나였던 사람이 마이클 잭슨입니다. 그런데 2천억의 빚 때문에 경제적으로 늘 압박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결국 죽을 때 이천억 빚을 그대로 남겼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죽기 직전까지 월세 1억짜리 호화 주택에서 살았다고 하죠. 사람이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탕진할 수 있는 지 신기할 뿐입니다. 방탕한 아들이 재산을 다 날린 뒤 하필이면 그때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천재는 우리가 막을 수 없지만 인재는 막아야 삶의 고통을 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풍성해도 매일의 삶을 깔보지 말고 정직하고 신중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죠. 아들은 졸지에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서 그 나라 사람에게 붙여 살게 되었습니다. 냄새나고 더러운 돼지농장에서 일했지만 흉년에 배불리 먹지도 못합니다. 그때 아들이 드디어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들은 무엇을 뉘우쳤을까요? 재산을 낭비한 죄 이전에 자식의 죄는 아버지를 영영 떠난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존재하게 하고 사랑으로 키우고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 아버지를 다시 찾지 않겠다고 떠난 것이 아버지와 하늘에 죄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또 아들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야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아버지가 자신의 모든 풍요의 원천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의 풍요는 바닥이 있습니다. 기업주가 고용인들에게 정당한 월급을 주지 않고 착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가난해서 그렇습니다. 많이 가져도 자기를 보호해 주기엔 돈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기에 그건 가난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얻은 것은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늘 부족하고 불안한 것이죠. 이 땅에서 얻은 것은 혹 이 땅에서 나를 보호해 줄지 모르지만 인생여정을 끝낸 뒤까지 나와 함께 할 수는 없잖아요? 노년만 되도 점점 그걸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기업의 회장님도 결국 말년엔 병상 한 자리 차지하고 몇 년째 누워계시니 평생 번 돈이 몇 조가 되든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아버지을 떠난 삶은 가난하든 부자든 건강하든 병들었든 해결되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이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회복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아들은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용서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우리가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는 용서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시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정말 한 구절 한 구절이 너무나 깊고 은혜로운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멸망하지 않게 하시려고 유일한 아들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자연적인 지각으로는 이해하기도, 믿기도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일평생 하나님을 거역하며 지은 죄가 하나님께 돌아갈 길을 막는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 죄의 값을 속죄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셨다고 말씀했고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등 종교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다음 생애에 좋은 곳에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신앙을 사람들이 만든 종교와 구별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보는 대로 종교의 측면으로 본다면 기독교만이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받지 않는 유일한 종교입니다. 우리는 착한 일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착한 일로 구원받습니다. 주님이 내 모든 악한 행위에 대한 형벌을 십자가에서 다 대신 치르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죠. 사람이 착한 일을 해서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착한 일하는 것이 죄 짓는 속도를 따라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죄 짓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데요. 절대로 착한 일로 지은 죄를 까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간디에 대해서도 요즘 재평가 되고 있죠. 과거 간디의 인종차별 문제를 포함해서 그의 삶이 결코 알려진 만큼 성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디의 노년에 자신을 시험한다며 늘 벌거벗은 채 어린 손녀딸을 데리고 잤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또 손녀 딸 입장은 생각 안합니까?사람들이 추앙하는 성인이어 봤자 사람이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으로 안되는 것을 하나님이 스스로 해결하시기 위한 방법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들이 탕진한 아버지의 재산을 찾아올 수 없듯이 우리도 쌓여가는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가 없습니다.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버지가 무조건 아들을 용서했듯이 하나님은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를 예수님께 물으시고 우리를 무죄한 자로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아들은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아들은 아버지께 사죄할 말들을 생각하며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아직 먼 마을 어귀에 초라한 행색의 아들이 들어선 모습을 아버지가 이미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에 달려가서 아들을 끌어안습니다. 집 나간 아들을 걱정하고 그리워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죠. 부모라면 집나간 자식을 두고 발 뻗고 자지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지난 주 기사를 보니 시장에서 사 준 꽃신을 신고 나가 놀던 일곱 살 딸을 잃어버렸던 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집밖에서 놀다 사라진 딸을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 유전자 등록을 통해 부모를 찾고 있는 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딸은 그동안 보육원을 거쳐 미국으로 입양 가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가 얼마나 잃어버린 딸을 찾아 헤매고 다녔는지 당시 발가락 열개가 발톱이 다 빠졌다고 하더군요. 성경은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식들을 찾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잃어버린 자식들을 찾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잃은 자를 찾기 위해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신 것이잖아요? 잃은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들려주시는 이 시간 모두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돌이켜 하나님아버지를 향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기뻐하며 종들에게 명령하죠. ‘제일 좋은 옷을 가져다 네 주인에게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새 신을 신겨라’ 이 의미가 무엇일까요? 아버지께 돌아가면 세상살이의 애환으로 헤어지고 후줄근해진 옷을 벗기시고 새 옷을 입혀주십니다. 예전엔 초라한 내 자신에 자신감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나면 왠지 당당하고 담대한 건 우리에게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혀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옷은 보이지 않지만 신기하게 우리 심령은 좋은 옷을 입은 것을 압니다. 아들의 손에 끼운 반지는 신분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죠.그리고 신발도 없이 노동에 시달리는 노예와 같은 삶에 안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느날 문득 내 삶을 바라보며 놀라는 것이죠. 내가 언제 이렇게 편안해졌지? 그 많던 빚은 어디로 가고 그 많던 근심은 어디로 간거지? 언제 내 삶이 이렇게 풍요로워졌지?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이 제 말에 공감하실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살찐 송아지를 잡고 돌아온 아들로 인해 집안은 음악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 찹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돌아가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즐겁게 여행을 마친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래 전 제가 어떤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아주 즐거운 여행을 다니고 헤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서로 인사를 하고 모두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순식간에 저 혼자 남았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희한하게 제게는 돌아갈 집이 없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게 너무 슬프고 두려웠습니다. 모든 것이 하얀 공백 같이 막막한 중에 어쩔 줄 몰라 하다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가 꿈에서 생생하게 느껴보았습니다. 우리 인생의 여행을 마친 뒤 돌아갈 집이 있으십니까? 손을 벌리고 따뜻하게 우리를 안아 주실 아버지의 품이 있으십니까? 저희 형제들은 어머니가 암선고를 받으신 뒤 일년 동안 곁에서 어머니의 마지막을 힘써 지켜드렸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머니께 돌아가실 집이 확실히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암으로 통증이 오고, 사랑했던 자식들, 살아온 익숙한 세상과의 결별의 아픔이었지만 돌아갈 아버지 품에 대한 신뢰는 한번도 흔들림 없이 늘 확고하셨습니다. 지금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 행복을 누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초청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오늘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 영원한 집을 준비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처음 우리와 함께 하신 분들 설교가 잘 이해되셨나 모르겠습니다. 오늘 발걸음이 복된 아버지의 집을 향한 첫걸음이 되도록 제가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형편이 되시는 대로 우리와 함께 예배드리며 말씀을 배워가면 하나님께서 믿음도 주시고 은혜와 축복도 주시며 영원히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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