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zisI5Fr7c6c&feature=youtu.be
2019년 송구영신 설교영상
어느덧 2019년 마지막 송년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다사다난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 많은 날들을 어떻게 헤쳐 나왔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예배에서 무슨 말씀을 나눌까 생각하다 본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우리 은혜자매가 병명도 밝혀지지 않은 채 병상에서 진통주사를 맞아가며 버티고 있습니다.
삼주일째 그 곁을 지키고 있는 권사님 마음은 또 어떠시겠습니까?
제가 문병을 갈 때마다 저렇게 젊은 자매가 누워있는 데 나이 먹은 제가 건강하게 다닌다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도 고통의 병상을 감사로 이겨내길 바래봅니다.
우리도 올해 주저앉고 싶고 힘든 시간들이 많았지만 지금 여기 나와 예배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바울사도 역시 예수님을 위해 살았던 매일이 고난이었지만 오늘 이렇게 감사에 겨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를 살펴보며 우리도 같은 감사의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시길 축복드립니다.
1. 바울사도와 데살로니가교회에는 큰 환난이 있었습니다.
7절에서 알 수 있죠.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 있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한 순간부터 바울사도의 생활은 한마디로 궁핍과 환난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바울의 재정을 도운 교회와 개인들이 있었지만 바울은 대부분 스스로 일해서 선교비를 충당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경우 바울이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지만 그 도시의 유대교인들의 지독한 방해로 몇 달 머물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온 곳입니다.
그런데도 앞에 보면 바울이 그 와중에도 부지런히 일을 해서 체류비를 감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만해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만큼만 일해야 했을 것입니다.
또 바울의 일이 천막제작이었는데, 가는 곳마다 항상 일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겠죠.
이렇게 항상 재정은 궁핍했고 복음을 전하며 수모와 박해를 당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사도에겐 매우 마음을 졸이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도망치듯 두고 온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에 바로 서있을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바울은 아주 짧은 시간에 데살로니가교회를 세우고 떠나야 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선 일년 반, 에베소교회에서 삼년 정도 머문 것에 비할 때 데살로니가 교회가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믿음이 쉽게 세워지지 않잖아요?
이 염려를 떨쳐 버릴 수 없었던 바울은 동역자인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냅니다.
디모데가 돌아와 전한 것은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난 중에도 바른 진리 안에서 잘 세워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서 이렇게 바울이 기뻐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바울사도의 기쁨이 생생히 느껴지는 대목이죠.
그 기쁨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써 보낸 것이 바로 데살로니가 전서입니다.
바울 같은 큰 믿음의 사람도 궁핍과 환난 속에 살고 때로 뼈를 깎는 듯한 걱정 근심에 휩싸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 당사자는 그 일에 대해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질 않습니다.
오히려 데살로니가교인들이 당하는 환난에 대해서도 3장4절에서 이렇게 예고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바울이 새신자들에게 ‘너희가 이제 구원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분명히 고난을 당할 것이다’라고 예고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심 믿음의 보상을 기대하기에 이런 말씀들은 피하고 싶죠.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마주 해야 할 현실입니다.
저녁 뉴스를 켜면 매일 수많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걸 봅니다.
누군가는 구사일생으로 사고를 피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왜 하필 그 시간에 거길 지나다 불행을 당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큰 불행이 아니더라도 믿음이 없다면 우리 나이만 되도 사는 것 자체가 환난입니다.
게다가 신앙생활은 남이 안 지는 짐도 자청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마음 졸이고 있던 일도 결국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 문제잖아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경우도 당시 사회에서 왕따 당한 이유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올해 수고하고 근심했던 일 중엔 믿음으로 인한 부분이 많았잖아요?
믿음이 성장할수록 내 근심보다 주의 일로 인한 근심이 더 많아집니다.
달리 말하면 내 문제로 인한 근심은 적어진다는 뜻도 되죠.바울은 1장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 때 아첨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종교의 힘까지 동원해 환난을 피하려는 그런 게 우리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세상에선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에서 여러모로 힘들게 사는 건 기정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단 모든 시련에 우리는 담대히 맞서야 하고 예수님의 힘을 의지해서 세상을 이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시련은 죄와 사탄에 맞서는 것이기에 재앙이 아니라 싸워야 할 전투입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내 잘못인가 돌아보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궁지에 몰린 일에는 내 실수와 문제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모든 고난이 불행이 아닙니다.
그러니 내 힘으로 대처할 수 없는 환난이 올 때 함부로 판단하고 불평하고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삶의 시련은 우리가 주제넘게 판단할 만큼 가벼운 게 아닙니다.
바울사도가 그랬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랬듯이 우리의 좋은 일뿐 아니라 나쁜 일도 하나님의 인도아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무너지면 시련이 삶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특히 상상치도 못한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은혜자매와 권사님, 여러 가지 어려움 중에 있는 성도들께서는 꼭 믿음에 굳게 서시길 바랍니다.
또 올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기대이상 잘 되었다 해도 얼굴을 가리고 있는 미지의 새 날을 무조건 낙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무조건 낙관하는 게 믿음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바울사도는 8절에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섰다고 데살로니가성도의 믿음을 확신했지만 13절에 다시 기도하잖아요?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지금 믿음에 굳건히 서있지만 1분 뒤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사탄은 누군가의 눈빛 하나, 단 한마디 말로도 우리를 넘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경고했잖아요?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새해에도 좋은 일과 나쁜 일들이 뒤섞여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 결말을 미리 볼 수가 있기에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2. 바울사도의 모든 근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큰 근심이었지만 그 짐이 벗겨지고 큰 기쁨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런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처음부터 다 잘되면 당연한 걸로 생각합니다.
당연한 일에 감동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힘써 도와주고 가장 맥빠지는 게 어떨 때입니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로인한 감사도 기쁨도 없을 때입니다.
바울의 큰 기쁨은 큰 근심에서 온 것입니다.
큰 근심이나 작은 근심이나 우리는 이겨낼 것입니다.
그러나 큰 근심이 사라질 때 그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걸 덤으로 알게 됩니다.
바울이 그걸 알았기에 하나님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죠.
데살로니가교인들은 짧은 기간 바울이 가르쳤던 구원의 복음을 듣고 학대와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예수님 안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바울이 잘 가르쳐서 그랬을까요?
사람의 믿음이 가르치는 사람에 달렸다면 예수님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이 회개했어야 맞습니다.
그렇지 않았잖아요?
설교자, 복음을 전하는 자, 양육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대로 말씀을 위해 봉사하지만 뿌린 말씀이 열매를 맺는 것은 그들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바울사도는 열심히 말씀으로 양육한 뒤에 12절, 13절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길 바란다. 너희 마음을 굳건히 하길 바란다. 너희가 흠없이 거룩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한다.
올해 우리가 시련에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절뚝거리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넘어져 피가 철철 났는데도 다시 일어서서 여기까지 왔다면 그것도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제 개인적으로도 큰일을 많이 치른 한 해였습니다.
우리 딸이 결혼해서 미국으로 떠났고, 집도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교회도 이전했죠.
이 큰 일이 한 해에 다 일어났더군요.
얼마전 인터넷 기사에서 엄마를 잃은 해리라는 영국 아이의 마음 아픈 이야기가 올라왔습니다.
해리의 엄마는 서른 넷의 젊은 나이에 뇌졸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해리는 비뚤어진 행동으로 이 혹독한 현실에 저항했습니다.
보다 못한 아빠가 상담사를 만나게 하고 상담사는 해리에게 네 마음을 편지로 써서 엄마에게 보내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편지를 받지도 못하는 걸 알았지만 천사가 가져다 줄거라는 아빠의 말을 믿고 해리는 정성껏 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이고 편지를 공원벤치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공원을 산책하러 나온 사람이 편지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소년이 비뚤비뚤한 글씨로 써내려간 잃어버린 엄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중에 제가 참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가 이렇게 말한 부분입니다.
‘나는 다시는 예전의 행복한 해리가 되지 못할 거예요’
엄마를 잃어버린 슬픔이 얼마나 큰지 이 말 속에 다 들어 있잖아요?
저도 서원이를 미국에 보내고 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말을 속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좋은 날은 없어. 이제 행복한 시간들은 더 이상 없을거야’
애 결혼 시켜 놓고 저 같이 바보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또 행복한 시간이 오더라구요.
애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게 새로운 행복이이더군요.
교회를 통해 기쁨을 느낍니다.
지난 번에 영규형제가 금요기도회에 나오고 싶다는 말을 듣고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성도님들의 믿음이 주님을 향해 자라는 걸 보는 게 정말 큰 기쁨입니다.
이젠 다시 작은 일에도 웃고 즐거워합니다.
지난 성탄극 때는 눈물까지 흘리며 폭소가 터지더군요.
우리 교회 이전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교회 건물이 팔려서 나가야 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둔기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멍해 졌습니다.
저는 교회가 그 자리에서 떠난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습니다.
워낙 건물주 권사님이 우리교회를 막강하게 지원해 주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어디로, 어떻게 교회를 옮겨야 될지를 생각하니 막막하다는 게 무언지 알 것 같더군요.
그런데 하나님이 사흘 만에 여기로 계약하게 하시고 교회이전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어느 날 기도하는 데 하나님을 올려다 보며 딱 이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저 새 교회 준비 정말 잘 하고 싶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두의 마음을 감동하셨고 이렇게 편안하고 은혜롭고 아름다운 교회가 된 것입니다.
제가 다시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본당이 좀 좁아서 뒷 쪽으로 한 세 줄 정도라도 늘릴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옆 사무실 전체를 쓴다면야 좋겠지만 우리 교회 사정에 맞춰서 주시겠죠.
필요한 때, 여건이 맞을 때 하나님이 들어주시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올해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 달려왔지만 험한 등성이를 어떻게 넘고 기쁘게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돌부리를 치워주고 우리 발을 평탄케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도 그런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와 반드시 함께 하셔서 근심이 기쁨이 되게 하심을 믿고 담대히 새해를 맞으시길 축복드립니다.
3. 그렇게 되도록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과 자신의 내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바울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1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바울은 하나님아버지와 주 예수께서 길을 인도하셔서 데살로니가교회를 다시 방문하게 해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새해 어떤 소망들, 어떤 계획들을 갖고 계십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구주 예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사도는 그 기도제목을 갖고 이미 간절히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데살로니가로 가는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앞에 2장 17절, 18절을 보면 그 이유를 바울이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우리가 하려는 선한 일, 성도들의 영과 육이 복되고 풍성해 지는 일들을 사탄이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선한 일인데도 사탄이 방해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요?어쨌든 하나님은 우리가 당장은 이해할 수 없다 해도 그렇게 하는 게 더 유익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지 못한 바울은 이렇게 데살로니가서를 편지로 써서 보냈고 그게 지금 우리 손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서신서가 대부분 직접 찾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씌어진 것들입니다.
옥중에 갇혀서 쓴 편지도 많잖아요?
바울은 워낙 역동적이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타입입니다.
감옥이 아니었다면, 원하는 길이 막히지 않았다면, 구원의 진리와 믿음의 원리가 이렇게 완벽하게 정리된 신약성경을 가질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당장 원하는 게 이뤄지지 않는다고 낙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오늘 또 기도하잖아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가도록 해주시오며
결국 바울의 기도는 응답이 되었을까요?바울은 이 편지를 쓴 뒤 약 십여년 뒤에 삼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디모데서1장3절을 보면 바울은 ‘내가 마게도냐로 갔다’고 합니다.
바울이 그의 편지에서 항상 자랑스럽게 말하던 마게도냐 교회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교회입니다.
바울은 너희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어 줄 수 있다고 말했던 사랑했던 데살로니가교회를 방문해 성도들과 기쁨의 재회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렇게 전해주길 원했던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구원의 진리를 나눠주기 위해 몇 날 밤을 지샜을 것입니다.
이런 게 교회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게 미뤄진다고 해도 한 걸음씩 따르다보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더 좋은 방식으로 반드시 이뤄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말씀을 듣고 120년 동안 배를 만들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긴 세월 묵묵히 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노아가 처음 한 일은 배를 만들 나무를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꼭 맞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주님의 계획을 따라 살아가야 하고, 꿋꿋하게 한 걸음씩 가야 하는 것을 교훈으로 삼을 만 합니다.
하나님은 꿋꿋이 가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믿음으로 견디지 못해서 하나님의 축복에 이르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을 것입니다.
내년 새해의 모든 기대와 계획들은 기도를 심으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사도처럼 끈질기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의 소망과 계획을 이뤄주심을 믿고 꿋꿋이 살아가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중국의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를 창업했고 아시아 재산순위 1위인 마윈 전회장이 최근 이런 인터뷰를 했습니다.
‘올해 중국 기업인들은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연말인데 하루에 다섯 번이나 돈을 빌려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마윈은 세계가 큰 변화의 시기에 접어 들었고 중국 경제가 조정국면을 맞아 수년간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우리 나라도 올해 경제지표가 역대 최악으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십년 차 은행원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올해가 불황인 증거는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동전을 교환하러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자녀 명의 통장을 해지해서 본인 통장에 입금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이런 게 다 경기가 좋지 않은 증거라고 합니다.
내년에 경제가 서서히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회복세를 체감할 수 없는 정도의 낮은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사업체와 직장과 가정 경제가 우려되지만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으시길 바랍니다.
또 건강의 문제, 자녀들의 진로 문제, 구석구석 기회를 엿보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미리 미리 기도하며 지혜를 구해 잘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어려움에 불안해하고 염려하기보다 올 한해의 모든 근심을 기쁨으로 바꿔주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새해에도 구하는 것마다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으시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해 아래서 아직 멋지고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새 날을 주심에 감사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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