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X2s12xxuIvQ&feature=youtu.be
올해 추수감사예배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드리게 되어 예전과 좀 다른 느낌이 듭니다.
1. 누구도 예상 못한 이 한 해를 보내며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할까요?
어쩌면 기쁨과 감사보다 두려움과 염려가 마음을 짓누르는 가운데 감사주일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불황이 일년에서 일년 반 정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잠비아 같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은 코로나로 인해 곧 국가부도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 하더군요.
우리나라가 성공적인 방역을 하고 있지만 코로나로 인한 경제 피해는 상당하죠.
어제 뉴스에서 화장품 회사 아모레퍼시픽이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코로나 장기화로 기업들도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청년인구의 네 명중 한명이 실업 상태라고 합니다.
올 대학 졸업자 중 절반이 직장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내놓았습니다.
또 국민 열 명 중 여섯 명은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혹시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어쩌나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죠.
그게 나 혼자만 걸리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가족과 내가 소속 된 공동체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질병과는 또 다른 불안감이 있는 것이죠.
전문가들 중에는 코로나블루를 단순 우울감을 넘어 트라우마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보기도 합니다.
올해 우리가 참 힘든 해를 지나온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들 입장에서는 더 심각하죠.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교회현장 예배가 금지되는 이상한 해였잖아요?
게다가 사회적으로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거의 왕따를 당했습니다.
지금도 방송에 교회라는 말만 나와도 바짝 긴장이 되실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힘든 한 해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펴신 은혜의 손을 한번도 거두신 적이 없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힘든 일보다 감사할 일이 더 많아서가 아니라 힘든 상황 중에도 살아 낸 것이 더 감사한 것이죠.
올해는 고정 월급을 받는 사람들 외에는 대부분 수입도 줄었을 것입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죠.
누구보다도 혹독한 코로나시대를 보내고 계신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사가 물질의 부요, 세상의 형통함에만 있다면 결국 그것이 신이 되고 우리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비록 부요치 못해도, 여전히 불편과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해도 나와 함께 하셔서 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게 하실 하나님을 믿고 감사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감사가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뜻은 앞 유리로 보는 것보다, 지나 간 뒤 백미러를 통해 볼 때가 더 많지 않습니까?지금의 어려운 모든 상황들도 시간이 지나 백미러로 볼 때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였음을 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올해는 많은 교회들도 헌금 감소로 인해 말 못할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성도님들의 헌신으로 큰 어려움 없이 재정관리가 되고 있는 것이 목회자인 저에겐 말할 수 없는 감사 중 하나입니다.
최근 오랜 비대면 끝에 교회 문을 열었는데 어떤 교회는 성도들이 20%밖에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성도님들이 예배를 사모해서 공동체 예배가 회복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보에 나왔던 많은 기도제목들도 합심해서 기도하며 잘 헤쳐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작년 연말에 병을 얻은 우리 은혜자매 치료가 잘 되어서 이렇게 회복의 추수감사절을 맞이한 것이죠?
일년을 되돌아보면 굽이굽이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의 은혜를 되새기는 것은 현재 내 상황을 믿음으로 해석하는 열쇠를 얻게 해 줍니다.
오늘 우리가 힘들었던 일년을 돌아보며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도 그럴 것입니다.
코로나로 모든 계획의 틀어지고, 폐쇄 공포증을 느낄 만큼 갑갑했던 나날들이었지만 이렇게 일년을 잘 꾸려 오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들 잘 싸우셨습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보호자 되신 하나님은 항시 일용할 모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인도자 되시는 예수님과 성령님은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일 년을 돌아보는 감사주일 예배를 통해 앞으로의 도우심도 확신하는 믿음을 갖게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오늘은 또 하나님의 추수의 날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공부했던 산상수훈이 오늘 여섯 번째로 마치게 됩니다.
산상수훈은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선언이라고 말씀드렸죠.
산상수훈이 하나님나라라면 그 마지막은 무엇으로 끝마치는 게 맞을까요?
이 땅의 하나님나라가 천국에서 완성되는 모습이겠죠.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그 날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추수의 날로 비유합니다.
성도들의 구원의 완성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때가 되면 농사하신 모든 것을 추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산상수훈에서 쭉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부류로 등장했던 악인들에겐 심판의 날입니다.
팔복의 마음을 받아 예수님의 새계명을 따르며 살았던 우리에겐 구원의 날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나쁜 열매를 맺은 못된 나무를 심판하시고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를 천국에 들이신다고 하십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예수님은 구원과 심판에 대해 우물쭈물하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나쁜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를 단호히 심판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또 이런 비유로 그 날을 설명해 주셨죠.
마태복음 13장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일 년 동안 베풀어 주신 삶의 은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추수의 날에 알곡으로 영접 될 것이 더 큰 감사인 것이죠.
이 확신이 없다면 더 하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복음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진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추수에 대한 감사제 율법을 지정해 주셨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곡식을 수확한 후 첫 곡식단을 하나님께 바치게 하셨습니다.
추수감사절과 같은 것이죠.
그런데 곡식단을 드릴 때 좀 의외의 규정이 붙어 있습니다.
곡식단과 함께 반드시 숫양을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물은 속죄가 필요할 때 드리는 것이잖아요?곡식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속죄의 희생 제물을 같이 드리라는 걸까요?하나님께 드리는 곡식단에 속죄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곡식단이 다른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의미겠죠.
하나님께 바쳐지는 그 곡식단이 곧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추수의 곡식단과 희생제물에는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알곡으로 드려진다는 종말적인 구원의 메시지가 포함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물의 죽음이 필요한 것이죠.
오늘 우리는 일 년 동안의 피땀에 대해 일용할 모든 것으로 응답하신 하나님께 예배와 감사의 예물을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와 성경의 감사제를 생각할 때 그 이상의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추수의 날에 심판의 불에 타지 않고 알곡으로 천국에 저장 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곡식단을 올려 드리며 왜 숫양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 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을 게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이 완성 된 뒤에야 등잔빛에 희미하게 보이던 구약율법들이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 대낮처럼 명료하게 그 의미가 드러나게 된 것이죠.
성경 어디를 펴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가 물이 바다를 덮듯이 창일하게 일렁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예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종말적 하나님추수를 생각하며 우리의 구원받음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우리가 하나님의 추수의 날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서 예수님은 중대한 변수를 내 놓으십니다.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이십니다.
15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세상에 있는 적이 아니라 교회 안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결론에서 이 거짓선지자들을 경계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일군인 척 하고 많은 사람을 미혹해 구원의 길이 아닌 파멸의 길, 생명의 좁은 길이 아닌 사망의 넓은 길로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중세 천년 동안 천주교가 성경을 아예 자물쇠로 잠가 놓고 그 많은 신자들을 미혹해 멸망의 길로 끌어갔습니다.
언제고 참신앙을 변조하려는 거짓복음이 교회에 끊임없이 밀려들어왔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북이스라엘이건 남유다건 멸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신앙의 타락과 변질입니다.
변질 된 말씀은 반드시 신앙의 변심을 불러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많은 신자들이 변심하는 것은 변질 된 말씀을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무엇을 배우고 듣냐로 우리 신앙이 빚어져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격에 열매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순진해서는 안됩니다.
내 영혼을 거짓 선지자들에게 노략당하고 농락당하지 않게 삼가고, 분별해서 영혼을 지켜야 합니다.
사실 사람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 본성에 노략질 하는 이리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이라 해도 본성에 자기 이득을 생각하는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우리에게 좋은 지도자는 한 분 밖에 없으십니다.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으십니다.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그런 목자는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복되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으십니다.
그렇기에 죽어라고 예수님을 붙잡고 쫒아가야 합니다.
거짓 일꾼은 사람의 마음을 노략질해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양의 기름과 털과 고기를 약탈합니다.
예수님이 늘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고, 성령께서 자신을 가리시고 우리를 예수님께로만 인도하신 것을 보면 거짓 사역자를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을 갖고 우리 성도님들을 예수님께로, 성경으로 인도하기 위해 올 한해도 애를 썼습니다.
올해 우리 성도님들께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열매, 성경을 더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열매가 좀 더 맺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4. 하나님의 추수는 좋은 나무에서 결실한 아름다운 열매만을 거두십니다.
16절,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하나님은 나무도 보고 열매도 보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좋은 나무라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죠.
다들 좋은 나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인간은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못된 나무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될 수 있습니까?
못된 나무가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한 방법은 하나 밖에 없어요.
좋은 나무에 접붙여 지는 것입니다.
이 농사의 원리에 대해서도 성경에 종종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좋은 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여진 나무가 되어야만 좋은 나무가 됩니다.
못된 나무가 아무리 좋은 열매를 스스로 맺으려고 노력해도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맺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접붙여지면 포도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죠.
오늘 말씀을 잘 살펴보면 이 아름다운 열매는 곧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것이라는 공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래서 이 부분을 천주교에서는 예수님도 믿고 착한 행위도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개신교 가운데서도 일부 잘못 된 교회들이 행함이 없으면 구원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이미 산상수훈 서두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우선이고,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순서가 바뀌면 진리를 벗어난 행위구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22절은 하나님의 추수 때에 있을 대혼란을 예기케 하십니다.
나쁜 열매를 맺은 못된 나무가 그 사실을 심판의 순간에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리
이것을 여전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바로 못된 나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실체를 정확히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예수님께 제대로 접붙여진 나무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기준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 밖에 없습니다.
저 밖에 지나가는 점잖은 사람에게 성경의 계명을 몇 개 가르쳐서 지키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 뜻을 행한 게 아닙니다.
겉은 비슷해 보여도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른 게 팔복의 마음이었잖아요?
본성을 따라 행한 것은 정체를 밝혀 보면 모두가 다 죄입니다.
어제 잠시 동행이란 프로그램을 시청했습니다.
눈이 먼 아버지가 안마일을 하면서 어린 남매를 장성하게 키워 냈더군요.
시각장애인으로 두 아이를 저렇게 키우려면 그 인생이 어땠을지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참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저렇게 절망의 상황에서 지극한 부성애로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저 분은 무슨 죄가 있는 걸까?
하나님은 저 사람을 무슨 죄로 판단하실까?
세 가족의 삶이 너무 슬프고 아름다워서 제가 좀 헷갈릴 뻔 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로마서3장10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니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렇게 선량해 보이는 사람 안에 있는 죄를 하나님만 보시는 것이겠죠.
그렇기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저 고통 받은 삶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겠죠.
그 분에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그 분이 믿지 않고 죽어 심판을 받는다면 오늘 거짓 선지자들처럼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갔을 때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너는 평생 불법을 행하고 하나님 뜻을 행하지도 않고 죄만 짓다 왔구나.
천국 시민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주님, 제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평생 죄만 지었고 주님을 위해서 한다고 한 모든 것이 다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것만은 제가 믿습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서 거짓 선지자들처럼 평생 하나님을 위해 한 일들을 주섬주섬 꺼내 놓으면 큰일 납니다.
우리가 평생토록 좋은 일 한 걸 다 꺼내 놓아도 올 한 해 우리가 지은 죄 도 다 청산하지 못합니다.
좋은 일로 나쁜 짓을 까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행위 구원을 믿는 세상 종교들입니다.
불교의 업과 보시가 그런 것이고 천주교의 공덕신앙이 그런 것입니다.
사람이 죄짓는 속도를 누가 따라가겠습니까?마음 속에서 얼마든지 빛의 속도로 죄를 짓습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팔복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산상수훈 첫날부터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늘 죄를 짓는 연약한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 있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믿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올 한해도 그랬고, 앞으로도 평생,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이미 알고 있기에 실패하고 넘어지면서도 그 뜻을 따라 살아갈 것을 아시는 것이죠.
나 자신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그 뜻대로 행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그동안 살펴보았던 하나님의 뜻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팔복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하는 사랑 안에서 점점 더 행하며 주님을 닮은 열매가 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은 우리를 근심하게 하는 코로나 상황 중에 드리는 감사예배라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변치 않고 우리와 함께 이 코로나 상황을 뚫고 나가주실 것입니다.
그래도 현실에 낙망되고 힘들 때 우리를 천국 곳간에 사랑스레 거두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모든 고생이 끝난 영화로운 영생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주께로 인도하는 지도자들을 잘 분별하되 오직 주 예수님만을 뒤쫒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뭔지 모르겠다고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산상수훈에서 배운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잖아요?
그걸 행하며 겸손하게 주님과 동행한다면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예수님을 닮은 열매를 맺어 세상에 나눠주며 살다 하나님의 추수 때 주님께 기쁘게 영접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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