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마태복음8장28절-34절 (산 아래 하나님의 나라 3-쫒겨나는 사탄의 나라)

남수연 2020. 12. 11. 16:16

www.youtube.com/watch?v=B11TTHCPlHY&feature=youtu.be

 

이 땅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정부가 아니지만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시죠.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속했는지 알 수 있는 시금석은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고 있느냐 일 것입니다.

그것은 막연한 게 아닙니다.

이 땅 대한민국 법에 의해 세금도 내고, 법규도 지키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듯이 천국법이 내 생활을 규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규정되어 있기에 오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도 대한민국 법만 지키며 살았는지, 하나님나라의 법을 지키며 살았는지 돌이켜 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동안 산아래 하나님나라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시민이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지난 주 광풍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은 그 강을 건너 오늘 가다라 지방에 도착하셨습니다.

거기서 만난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신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이 사건은 산 아래 하나님나라가 시작됨은 곧 사탄의 나라가 쫓겨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사로잡혔던 인질들을 예수님이 구출해 내시는 것이죠.

이 땅 하나님나라에서의 구원은 이중적입니다.

하나님과는 진노하시는 죄인에서 천국의 유업을 누릴 자녀가 된 것이고, 마귀에 짓눌려 고통당하던 마귀의 종에서는 자유를 얻는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 것이죠.

세상에 있는 이 사악한 인격체, 사탄과 귀신들에 대해 성경만큼 정확하게 진술해 주는 곳은 없습니다.

사탄과 귀신들은 인간처럼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역한 영적인 존재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배신과 반역마저도 가능한 완벽하게 자유로운 인격체를 만드셨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신비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의 얕은 지식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부터 서서히 실체를 보여주기 시작했던 이 사악한 존재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완전히 정체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악의 존재들에 대해 모르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성경에서 악한 영에 대해 배우고 잘 대적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의 삶을 승리로 이끌어 주실 귀중한 말씀을 허락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마태사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다라 지방으로 오셔서 이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일련의 사건을 정확히 파악해서 이 부분을 썼습니다.

우리도 이것을 배우고 믿어야 합니다.

1. 본문의 사건은 마귀에게 장악된 인간의 처참함을 한 눈에 보여주십니다.

28절,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가 없을 지경이더라

이 귀신 들린 사람의 이야기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귀신들린 사람의 상태를 더 자세히 진술합니다.

거기 보면 이 귀신들린 사람의 상태는 무섭고도 끔찍하고도 가련합니다.

무덤과 산에서 늘 소리를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어떻게 좀 해보려고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보았지만 귀신들의 괴력으로 다 끊어버려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불쌍한 것은 자기 인격이 산산히 부서져 버린다는 것이죠.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귀신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군대’라고 대답합니다.

이 ‘군대’라는 단어는 로마시대 6천명의 군인으로 된 군조직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군대 용어로 하면 ‘사단’ 정도와 비슷하겠죠.

한 사람에게 수천명의 귀신이 들릴 수 있다는 것은 성경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입니다.

거라사인들이 귀신들린 모습은 끔찍하고 무서웠지만 사람들은 그냥 귀신 하나가 그에게 씌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수천의 귀신이 한 인간을 공유하고 있었다니 비참하죠.

막달라 마리아도 일곱귀신이 들렸었다고 하죠.

수천의 귀신이 들어왔으니 어떻게 이 사람이 온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흉측하게 귀신들린 사람을 통해 마귀에게 사로잡혀 장악당한 인간들의 실체를 제자들에게 보게 하신 것입니다.

또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 이천마리나 되는 돼지들이 줄지어 바다로 뛰어들어 몰사하는 장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겠어요?홍수에 돼지 한 마리가 물에 떠내려가며 버둥거려도 안타까운데요.

이 안타깝고 충격적인 장면은 마귀가 수많은 인간을 몰아 사망에 빠뜨리는 장면과 유사하죠.

이것이 이때 귀신들린 사람 둘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가는 것을 옛날 성경시대에나 나옴직한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경은 죄를 짓는 자들이 다 마귀에게 속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기에 모든 인류가 다 마귀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마귀가 시나리오를 쓰는 대로 파멸 시킬 수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든지 아니면 마귀의 통치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났더니 사악한 마귀가 낼름 가련한 영혼을 낚아 챈 것이죠.

이런 사실에 펄쩍 뛰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마귀나 귀신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겠죠.

그러나 마귀에 대해서 모른다고 마귀도 나를 모른 채 해주지 않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더 위험한 것이죠.

모든 귀신들이 오늘 거라사인에게처럼 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위협적이고 무섭게 지배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존재를 숨기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시대에 따라 컨셉을 바꿉니다.

악한 영들이 결코 우리보다 무지하지 않습니다.

귀신들은 사람들 중에, 그리고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고,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며 인간 파멸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목적을 위해 삽니다.

귀신들끼리 어디서 모여 사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인간사 속에서, 너와 나 사이에서 삽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잘 모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귀신의 음모에 속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지나치게 마귀의 일에 주목할 필요는 없지만 나를 방어할 수 있을 정도의 분별력을 갖고 대항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거라사 사람의 귀신을 쫒아주신 것처럼 우리는 내 힘으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마귀의 육중한 철창살을 벗어났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마귀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됨을 분명히 말씀하죠.

요한일서3장8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2장 14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우리가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면 일생 마귀에 매여 종노릇하며 왜 이렇게 괴로운지도 모르고 괴롭게 살았을 것입니다.

이 어둠의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빛에 나라에 속하게 된 것이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2. 성경은 이 사건으로 마귀에 대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1) 이 귀신들은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29절,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귀신들의 출신이 하늘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요한계시록12장9절도 하늘의 전쟁에서 지상으로 내 쫒긴 이 마귀와 귀신들에 대해 말해줍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그렇기에 귀신들이 하나님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더 두려운 분임을 압니다.

야고보서 2장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 도 믿고 떠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 아는 것, 예수님을 아는 것과 구원받는 것은 상관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죠.

귀신 스스로가 말합니다.

29절,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귀신은 예수님의 구원이 자기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그들에게 정해진 것은 무저갱으로 영원히 떨어지는 형벌인 것이죠.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말은 ‘왠 간섭이냐, 네 일이나 신경써라’ 라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마귀나 귀신들은 예수님과 상관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과 상관하고 싶지 않아서 반역한 무리들이잖아요?

귀신에게 사로잡힌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이 좋다고 그렇게 권유해도 상관하고 싶지 않다고 하죠.

우리가 예수님과 상관하고 싶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다면 그것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천국백성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지수가 멀어질수록 마귀가 더 우리를 상관하게 된다는 것을 지혜롭게 파악하시기 축복드립니다.

2) 마귀가 예수님의 복음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을 어떻게 총력을 다해 저지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주님 대신 복음을 전해야 할 제자들에게 이걸 미리 공부시키시는 것이죠.

31절,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쫒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었다고 하죠.

마가복음은 그 숫자가 이천여 마리 정도라고 기록합니다.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여 보내달라는 교활한 속셈이 무엇이겠습니까?

돼지 떼를 바다에 몰살시키려는 것이죠.

왜 그랬는지는 그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4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님이 오시자 엄청난 재산 손실이 난 걸 보고는 더 이상 우리 일에 관여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아는 이 귀신들린 자들이 멀쩡해진 이 기적을 보고 이 분이 대체 어떤 분이신지 모셔서 들어보자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기적보다 돈을 선택합니다.

마귀는 거라사인들의 주인이 맘몬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고 돼지떼를 몰살하는 계략을 낸 것입니다.

귀신은 우리처럼 타락했지만 여전히 뛰어난 지혜를 갖고 총력을 다해 하나님나라를 저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 한 사람을 전도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는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보다 귀신들의 노력이 항상 한발 앞섭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백성들이 모아진 뒤가 자신들의 종말의 날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29절,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3) 마귀는 그 때까지 사람들의 구원을 저지하고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제한적으로 마귀가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마귀의 장악과 영향에서 벗어났지만 이 땅 귀신의 영향권을 완전히 벗어나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설령 지금 내가 귀신의 영향을 안 받는다 해도 나와 관련 된 저 사람이 지금 받고 있기에 엮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활동을 살필 매의 눈이 필요합니다.

귀신들의 활동들이 예수님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1) 예수님께서 귀신에 들려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는 경우가 있었죠.

맹인과 귀머거리와 벙어리, 간질 같은 질환, 몸이 비틀리고 꼬부라진 병, 이런 질병을 일으키는 귀신들을 쫒아내 치료해 주셨습니다.

마귀가 조작 가능한 질병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병을 주기도 하고 낫게도 합니다.무당도 병을 낫게 하는 경우가 있죠.

우리도 이런 질병에서 귀신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귀신들이 관여한 병은 의술로만은 잘 낫지 않습니다.

마귀에 의한 병들은 특히 기도하는 중에 치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인 모를 두통, 불안증, 우울증, 무기력증 많은 병들이 믿음이 강화되면 많이 낫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병에 걸렸거나, 아픈 데가 생기면 반드시 기도와 함께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마귀는 사람들의 진로와 환경을 가로막습니다.

충분히 될 것 같은 데 안되고, 자꾸 앞이 막힌다고 생각될 때가 있죠.

오늘 본문에서도 사실 마귀들이 예수님의 계획을 가로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를 보면 마귀가 제자들의 앞을 가로막은 내용이 종종 나옵니다.

이럴 때는 귀신이 막고 있는 것을 열어 주시길 기도로 돌파해야 합니다.

마귀가 막고 있는데 아무리 용을 써도 그런 건 쉽게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3) 또 마귀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성경에는 마귀가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넣어주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랬고, 가룟유다가 그랬죠.

다윗도 마귀의 충동을 받고 인구조사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 앞에서 사탄의 미혹을 받고 자기 생각인 것처럼 말했죠.

어떤 게 우리 생각이고 어떤 게 귀신이 주는 생각인지 분별하려면 성경의 기준을 따르면 됩니다.

간단 간단하게 짚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28절을 보면 귀신들린 경향을 보여주죠.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깊이 생각하고 따를수록 조금씩 주님의 선하심과 온유함을 닮아가게 됩니다.

항상 화가 나있고 사나운 기세가 등등해 있는지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 야고보서3장을 보면 귀신에게서 난 대표적 성향을 독한 시기와 다툼이라고 말씀합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사람이 시기심이 생기죠.

자고 일어나면 다른 사람이 가진 집값이 오르는데 시기심이 안 생길 사람은 없습니다.

내 아이는 공부를 못하는 데 내 친구 아이는 항상 상위권에 있으면 겉으론 아닌 척 해도 시기심이 마음을 괴롭힙니다.

그러나 우리 본성에서 나는 이런 시기심과 다투는 마음이 조절하기 힘들 정도가 된다면 귀신의 지속적 공격을 받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바른 믿음으로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나 자신도 항상 의심해야 합니다.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은 대표적인 마귀의 경향입니다.

-또 교만이야말로 분명히 마귀적인 것입니다.

남을 자꾸 멸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언행이 잦아진다면 귀신이 나를 시험하고 있는지 의심해야 합니다.

-자꾸 불안과 염려에 빠지고 부정적이 되는 마음도 관찰해야 합니다.

-미움과 분열도 뚜렷한 귀신의 징후입니다.

이런 것들은 누구나에게 있는 죄의 경향들이고 일상에서 다 겪는 감정들입니다. 다 내 얘기구나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지속적으로 이것을 자극받고, 상처받는 환경에 노출된 경우, 더 취약해집니다.

염려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빠진 경우가 있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고, 교만해질 수밖에 없이 잘 난 게 문제일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환경은 빠져나갈 수없이 우리가 갇힌 상황이잖아요?그렇기에 더욱 마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면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더 힘들어 집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맹수들끼리도 상처 나고 다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서 넘어뜨리는 걸 보게 되죠.

우리의 상처, 약점, 어려운 환경들이 귀신의 공격 포인트가 되지 못하도록 그 부분을 믿음으로 단단히 무장해야 합니다.

특히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문제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말 꿋꿋하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길게 싸우고 버텨내야 합니다.

오래 시달린 문제로 지쳐있으시다면 자꾸 원점으로 돌아가지 마시고 믿음으로 계속 차고 나가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에겐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에 거라사인에게처럼 마귀가 들어와 집을 짓고 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귀신이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걸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귀가 들락거릴수록 우리의 인격이 마귀적인 경향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오늘 가다라의 귀신들린 사람이 처음부터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말씀에 자꾸 내 자신을 비춰서 보아야 합니다.

저 사람이 미운 짓을 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내게도 지금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드려다 봐야죠.

우리 안에 귀신들의 자취가 드러나기만 해도 그 영향을 벗어나기가 훨씬 수월해 집니다.

문제가 느껴지면 기도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힘껏 떨쳐내는 적극적인 조처를 꼭 해야 합니다.

 

3. 예수님께서 이 가다라의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시는 과정은 구원의 가치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거라사인을 구하시는 과정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이 있죠.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는 것을 주님이 허용하셨다는 것입니다.

돼지 2천마리를 한 마리 30만원 정도로 계산해도 무려 6억입니다.

어쩌자고 예수님은 양돈업자의 재산상에 엄청난 피해를 주신 것일까요?

마귀의 그 계략을 다 아실텐 데 왜 요청을 들어 주신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를 우리가 좋아하는 돈으로 계산해 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8장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려 처참해진, 모두가 포기한 이 영혼이 6억의 가치보다 귀하다는 것을 실물 교육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얼마까지 사용해 보셨습니까?

예수님께 돼지의 생명은 하찮은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돼지도 사랑하신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요나서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이 가축을 아끼지 않은 게 아니고, 재산을 잃은 사람의 절망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것보다 구원받는 게 더 중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물론 귀신들린 한 영혼을 위해 2천마리의 돼지떼를 버리신 것은 영혼의 가치를 정확히 계산하신 건 아닙니다.

한 영혼의 정확한 가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신 목숨의 값하고 같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부모 된 우리는 내 자녀의 목숨의 가치가 내 목숨의 가치와 같다고 느끼잖아요?

그렇기에 자녀의 목숨이 위태로움을 느끼면 내 목숨으로라도 대신하고 싶은 것이죠.

전에 차승원배우가 그런 말을 했잖아요?

딸을 하나 키우다 보니 ‘그 애를 위해서는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그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주님의 모든 피를 다 흘려서 값 주고 사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다 마귀와 함께 영원히 파멸의 운명을 맞았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이 수천의 귀신을 단숨에 내 쫒으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볼 때 신기할 일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마귀에게 사로잡힌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죄값을 치르셨다는 것이 영원한 신비이고 기이한 사랑입니다.

오늘 거라사인이 그랬듯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엔 누구도 마귀의 덫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마음을 활짝 열어 예수님을 환영하고 내 집에 모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성령께서 지배하시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제일 좋은 방어입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내 생각이고 내 성격인 줄 알고 계속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은혜와 좋은 것이 들어오는 길을 다 막아버립니다.

우리는 알든 모르든 매일 영적 전투에 가담해 있습니다.

승리하면 영과 육이 강하게 세워지고 실패하면 인격과 삶에 구멍이 나고 조금씩 무너져 내립니다.

우리가 사는 것도 힘든데 마귀에게 까지 내 행복을 뺏기지 않도록 오늘 말씀 잘 기억하고 항상 깨어서 우리 자신을 지키도록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