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DW6AgyPUdFw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에스더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 온 세속나라 페르시아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면 다들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세상은 바벨론 같고 페르시아 같습니다.
종일 일하고, 공부하며, 밥을 같이 먹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지만 아무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 입이 예수님을 말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옵니다.
어떤 분들은 그 가정마저도 세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늘 본문에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자기 민족이 유대인임을 밝히지 말라고 하는 게 우리를 당황케 합니다.
비슷한 시대, 같은 나라, 같은 포로세계에서 살면서 열혈 신앙으로 세상과 한판 승부를 벌였던 다니엘서의 인물들과는 좀 결이 다른 게 에스더서입니다.
그리스도께로부터 보냄을 받았지만 종일 한번도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사는 세상 속 그리스도인들.
에스더서는 그렇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대변합니다.
그러나 그런 성도들을 통해, 그런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은 막후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착착 완공해 가십니다.
에스더서는 이렇게 샤이하는 성도들의 믿음일지라도 세상과 악에 대해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석 같은 믿음의 요소들을 잘 발견하고 그런 믿음을 장착하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1. 오늘 말씀은 폐위 된 왕후의 자리에 에스더가 앉게 되는 내용입니다.
1절,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
1장과 2장 사이를 성경은 간단히 ‘그 후에’라는 한마디로 기록합니다.
그 사이엔 아하수에로왕이 그리스 정복을 떠난 전쟁사가 있는 것이죠.
스파르타군대 300명이 페르시아군대를 대항해 맹렬히 싸우다 전사하지만 이것이 발판이 되어 살라미스해전에서 그리스연합군이 아하수에로왕에게 최종 승리를 거둡니다.
지난 주 왕의 잔치가 즉위3년에 일어났고, 오늘 2장에서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16절에 보면 즉위 7년이라고 합니다.
긴 전쟁 준비와 전쟁으로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야심찬 전쟁에 철저히 패배한 아하수에로왕은 침통한 기분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4년 전 폐위시킨 아름답던 와스디왕후가 떠오른 것이죠.
그때 측근들의 말을 듣고 성급하게 왕후를 폐위시킨 게 후회되었을 것입니다.
왕의 이런 기색을 살핀 측근들이 위기를 느끼고 다시 비상하게 움직입니다.
이러다 와스디가 재위하게 되면 자기들은 죽은 목숨인 것이죠.
그들은 이번에도 야심찬 제안을 했고 이번에도 왕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광대한 페르시아 제국 모든 지방에서 아리따운 여자들을 모집하고 그 중에서 왕이 제일 맘에 드는 여자로 왕후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본래 페르시아제국에선 7대 귀족 집안에서만 왕후를 간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와스디보다 더 미모의 왕후를 뽑기 위해 간택 대상을 페르시아 전국모든 여성으로 확대시킨 것이죠.
페르시아는 정복한 나라가 너무 많고 포로민들이 뒤섞여 살던 터라 출신도 상관치 않는 블라인드테스트가 이뤄졌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에스더에게도 기회가 왔던 것이죠.
우리 인생도 돌아보면 절묘하게 바뀐 상황이나 법령 때문에 특별한 시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이 이야기를 종종합니다.
제가 순위고사 지원했던 때에 당시 중학교에 주당 1시간이었던 미술시간이 2시간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해 전례 없이 80명의 교사를 선발하게 된 덕에 얼떨결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수년간 미술교사를 뽑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특별히 크고 작은 기회를 만들어 주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 젊은 세대는 이렇게 하나님이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시길 항상 기도하고, 그 기회를 잘 붙잡길 축복합니다.
기도하면 내게 유리한 우연이 자꾸 발생한다는 것을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주 경험합니다.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죠.
2. 이 간택령에 의해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과정을 오늘 본문이 아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2장에서 드디어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무대에 등장합니다.
모르드개에 대해서는 이렇게 소개합니다.
5절,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6절,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여기서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주며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의미심장한 복선을 깔아 줍니다.
그것은 모르드개가 베냐민 지파라는 것과 조상 중에 기스, 시므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걸 통해 사울왕가의 후손이라는 걸 암시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전개 될 중대 사건의 도화선이 됩니다.
에스더에 대해서는 7절에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역시 전쟁포로인 에스더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나이차이가 많은 사촌오빠 모르드개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유대 포로소녀가 꿈도 꾸지 못했을 왕후 등극의 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에스더가 자발적으로 지원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간택령을 위해 지방 관리까지 두고 여자들을 모집하게 한 왕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뽑혔다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에스더를 통해 민족의 중대 위기를 해결하실 계획인 하나님은 왕후가 되기까지 과정 중에서도 일하십니다.
그 때 각 도에서 뽑혀 온 미인들은 400명이었다고 역사가 헤로토투스는 기록했습니다.
인생 최대의 기회를 잡으려고 달려든 날고 기는 미녀들 가운데서 순박한 처녀 에스더가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왕궁에 이끌려 들어간 에스더는 후보자들을 관할하는 내시 헤개의 손에 맡겨집니다.
9절입니다.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수많은 여자들 중에 내시 헤개의 눈에 에스더가 들어왔습니다.
헤개는 당장 실력 있는 일곱 명의 궁녀를 붙여 주고 후궁 중에 제일 좋은 방을 배정해 줍니다.
400명이 전부 미인인데 그 중에서 어떻게 에스더가 눈에 띄었을까요?
2장에서는 에스더가 이렇게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모습이 세 군데서 강조됩니다.
15절에도 나오죠.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왕에게 나갈 때 모든 여자들이 자신을 더 돋보일 화려한 장식품과 용품들을 구할 수가 있었지만 에스더는 기본만 치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하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17절입니다.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매력 있는 사람이면 사회생활에서 유리한 대우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에스더는 모습도 예뻤지만 사랑받을만한 성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사랑받을만한 인격을 갖춰야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종종 남들의 눈에 우리를 호감 있게 비취게 하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청춘남녀가 매력을 느껴 결혼을 결심하겠어요?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얼마나 힘든지, 짝사랑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얽힌 힘든 사람과의 관계도 기도해야 풀립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풀게 된 관계가 나옵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20년 세월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장자권 문제를 놓고 야곱과 감정이 안 좋던 형 에서가 4백명을 데리고 맞서 나옵니다.
이때 야곱이 두려움에 빠져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기도를 하잖아요?
그 밤에 하나님이 에서의 마음을 돌이켜 야곱과의 극적인 화해가 이뤄졌죠.
또 잠언에서도 교훈합니다.
잠언 16장7절,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 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물론 결국 싸우고 헤어져야 할 관계들도 있습니다.
성경의 일반적인 원리가 수학공식처럼 적용되는 건 아니죠.
바울과 바나바도 대판 싸우고 헤어졌고, 사울과 다윗도 결국은 화해 없이 끝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생활, 그리고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항상 관계를 원만하게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한다면 에너지를 소모하는 많은 갈등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고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처신도 바르게 하며 사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렇다면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왕후가 된 것은 현실적, 신앙적인 측면에서 어떨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게 좀 외람 된 비유 같지만 유관순열사가 나라를 구하겠다고 천왕에게 시집 간 형국처럼 애매한 스토리일 수가 있는 것이죠.
많은 미인들을 물리치고 왕후가 된 것은 에스더의 인생역전이고 성공일까요?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제국 페르시아의 왕후가 되어 다스리게 되었으니 여자로선 최고의 성공이겠죠.
신앙의 관점에서도 그럴까요?
그동안 성경이 가르쳐 온 관점에 있어서는 뭔가 석연치 않죠.
결과가 좋다고 과정 전체가 완전하고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에스더를 구약시대의 성도로 뜯어 봐야지 동화 속의 신데렐라로 보면 안됩니다.
시대가 달라도 변하지 않는 게 성경이라는 절대적 표준입니다.
성도들은 무엇이든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의 눈이 어떻게 보느냐는 사실 무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이시잖아요?
우리는 항상 이 믿음과 신앙의 관점에서 사실을 분별해야 합니다.
과연 에스더가 무모한 정복욕에 불타고, 줏대 없고, 수많은 비빈 속에서 향락에 빠져 살던 아하수에로 같은 사람을 남편으로 맞는 것이 축복일까요?에스더가 야심 찬 여성이었다는 근거는 에스더서에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에스더는 일찍 고아가 되어 친척 집에서 컸습니다.
어쩌면 에스더는 평범한 남편을 만나 자녀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꿈을 꾸지 않았을까요?
암살과 암투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은 게 왕궁입니다.
오늘 2장 끝에 보면 왕을 암살하려는 두 내시를 모르드개가 발견해 왕에게 알리고 모반한 자들이 결국 사형당하죠.
이때는 모면했지만 결국 남편 아하수에로왕은 침실에서 암살되어 생을 마칩니다.
어쩌면 에스더는 포로 신분의 어린 시절, 조실부모, 친척 손에서 양육된 것, 마지막에 전혀 꿈꾸지 않았을 왕궁의 결혼생활까지.
모든 것이 자신이 원치 않았던 일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 내 삶이 원했던 대로 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죠.
에스더의 왕후 등극은 어느 모로 보나 하나님이 개입하신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온전하고 완벽한 상황만을 엮으셔서 그 뜻을 이루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한가지인들 이루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죄인들이 얽히고 설킨 게 성도들의 삶인데요.
제가 최근에 두 개의 영상을 보면서 에스더에게 좀 적용을 시켜 보았습니다.
하나는 스티브 모리슨 장로님의 이야기인데, 미국 우주항공연구소 수석연구원인 분입니다.
인공위성을 만들고 네비게이션 같은 것도 계발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 분은 다섯 살 때 부모와 헤어져 거리를 헤매다 고아원, 홀트복지원을 거쳐 청소년기인 14살에 극적으로 미국인 가정에 입양이 됩니다.
홀트에 있을 때 성경을 배우다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미국으로 떠날 때 단촐한 짐 가방엔 성경책이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신앙이 좋고 사랑이 많은 양부모 밑에서 대학을 나와 나사에서 인공위성을 계발하는 과학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해 ‘왜’라는 질문이 항상 있었습니다.
‘왜 나는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일찍 가정을 잃어버렸나, 왜 거지처럼 거리에서 살아야 했나, 왜 8년이나 고아원 생활을 해야 했나’.
‘왜 하나님은 내게 이런 인생을 주셨나’.
이렇게 상처가 남긴 질문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이런 깨달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너의 상처 난 인생이 인간의 잘못에 의해서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서 나는 너를 택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인간의 죄의 결과로 온갖 종류의 고통이 인생을 덮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인생에 그 무수한 고난만 있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과거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선택하시기 위해서 신으로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될 가장 큰 아픔과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시기 위해 하나님 편에서 치르신 것은 그 실상을 다 알 수도 없고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 들은 CCM중에 ‘내가 너를 선택한다’라는 찬양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너를 선택 한다
어떤 이가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나는 언제나 너를 선택 한다
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해도
나는 언제나 너를 선택 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버려 나를 선택했다는 것은 우리의 이 선택된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이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될수록 나의 고난의 과거가 억울하고 부끄럽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사명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스티브 모리슨장로님은 한국입양홍보회 이사로 고아들의 입양을 위한 사명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영상은 잠비아선교사로 사역하다 강도에게 피습 당했던 김용0선교사님에 대해서입니다.
김용0선교사님은 어느날 한 밤중에 침입해 돈을 요구하는 강도에 의해 테러를 당합니다.
영상을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얼굴은 만신창이였습니다.
머리를 맞고 얼굴의 모든 뼈는 함몰되고 부서진 상태라 잠비아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급히 한국으로 이송되어 옵니다.
뇌와 얼굴을 촬영한 사진을 본 한국 의사가 말하기를 ‘이것은 기적이다 모든 뼈가 다 부러졌는데 단 한군데의 신경도 다치지 않고 다 피해갔다’고 놀랐습니다.
그렇게 김선교사는 정말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잠비아로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기도를 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뜻이 아주 선명히 깨달아졌습니다.
‘잠비아에 가면 네가 그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
네가 죽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네가 살아난 것을 보여 줘라.
그들이 네가 어떻게 살았니 라고 물으면 이 말을 해라
‘예수그리스도의 힘으로 내가 살아났다’
그 말만 하면 된다.
할 일이 있다고 하시니 그럼 가야지, 그렇게 잠비아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처음엔 너무 두렵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힘으로 살아났다. 이 얘기를 하다 보니 다시 성경을 가르치게 되고 어느새 그 테러의 트라우마가 씻겨 나가더랍니다.
지금도 잠비아에서 사역하며 그때를 간증하며 ‘예수그리스도의 힘으로 내가 살아났다’ 말을 하고 다닙니다.
아무도 그렇게 아픈 과거와 현재의 나를 원했던 사람은 없습니다.
에스더도, 모리슨장로님도, 김용0 선교사님도, 우리들도.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런 가운데도 나는 너를 선택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며 너를 통해 일하고 너는 나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오늘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에스더에게 최선의 삶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원하는 인생을 골라서 살 수 없습니다.
인생 지도 안에는 장미정원도 있지만 눈물의 골짜기도 있고, 배신의 가시밭도 있고, 실패의 늪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완벽한 조건들로만 일하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성도들이 최선이 아닌 일을 만나게 되지만 그것은 사명을 위해 허용된 차선일 것입니다.
대개는 원치 않는 고난과 시련과 죄의 결과들이죠.
우리는 오히려 이런 차선의 삶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상한 마음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주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실 수 있겠냐며 반문합니다.
우리의 사명적 차선이 주는 첫 번째 사명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끝까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사명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겐 하나님나라를 위한 두 번째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에스더의 왕후등극은 우리가 알아왔던 신앙의 삶에서는 최선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몰살 위기에서 구원하기 위한 사명적 차선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시련, 그리고 완벽한 신앙의 표준을 벗어난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셔서 구원을 이루시고 하나님나라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에스더의 인생을 모든 게 좋았다고 보지는 말아야 합니다.
에스더는 원하는 게 한 가지도 이뤄지지 않은, 철저히 희망에 배신당한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에스더는 자기가 원했을 평범한 여인의 행복을 포기해야 민족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도 어느 정도 평범하게 즐길 수 있는 세속적인 삶을 포기해야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좀 더 갖고 누리려는 것들이 그래봤자 구질구질합니다.
구질구질한 것을 못 끊고 집착하며 내게 주신 사명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움이고 고뇌인 것 같습니다.
성도에겐 사명이 축복입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 성도들에겐 비로서 참 기쁨과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끝까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 목록에 여러 사람을 정하고 끊임없이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게 어떤 사명을 주시는지 기도하며 그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은 마음이 웅장해지는 바울사도의 사명에 대한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 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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